소 잃은 미 민주당, 외양간 점검…‘해리스 왜 안뽑았나’ 여론조사

2024년 11월 11일 오후 2:57

미국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가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치솟은 인플레이션 때문이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낙태, 민주주의 등 해리스 캠프가 내세운 이슈는 유권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 여론조사 기관인 블루프린트는 대선 투표 하루 뒤인 6일부터 7일까지 전국 유권자 32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이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결과 링크).

이에 따르면 유권자가 트럼프를 뽑은, 즉 해리스를 지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인플레이션이었고 그다음은 국경을 넘은 이민자의 급증, 중산층보다는 트랜스젠더 같은 문화적 이슈에 너무 집중한 것 순이었다.

민주당은 여론 조사에서 ‘이민자’ 급증을 답했지만, 실제로 트럼프가 강조한 것은 ‘불법 이민자’ 급증 문제였다. 불법 이민자 문제에 관해 민주당과 진보 성향 매체는 ‘불법’이란 수식어를 떼고 이민자 전체의 문제로 몰고 가려 했지만, 유권자들은 불법 이민과 합법 이민을 구분했다.

프레임에 갇힌 민주당이 트럼프의 불법 이민자 대응을 이민자 전반에 관한 억압 및 배척으로 확대하고, 여기에 PC주의와 트랜스젠더, 성정체성 등 이념 문제를 대선 이슈로 부각하려 했으나 먹고사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와 중산층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불법 이민, 해리스의 트랜스젠더 집중에 이어 유권자들이 꼽은 세 가지 요인은 바이든-해리스 행정부에서 미국 국가 부채의 급증, 해리스와 바이든 대통령의 유사성, 해리스가 더 많은 불법 이민자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우려였다.

특히 경합주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국가를 운영하는 데 실패했다”는 항목을 많이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블루프린트 보고서는 “결국 해리스는 자신의 과거나 당을 따돌릴 수 없었다. 아마도 시간 부족이었겠지만,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분명했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해리스가 이스라엘에 지나치게 호의적이라고 걱정한 유권자는 매우 적었다. 이는 대학과 청년을 중심으로 펼쳐진 ‘반이스라엘,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실제 투표에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요란했던 거리 행진과 캠퍼스 시위에 비해 실속은 없었던 셈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대선 결과에 대한 충격을 나타내며 패배 원인, 특히 경합주 7곳을 트럼프가 모두 휩쓴 것과 관련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손가락질하는 가운데 발표됐다.

민주당 톰 수오지 의원(뉴욕)은 SNS에 “이번 선거에서 미국인들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임금과 복리후생 등 미국인이 신경 쓰는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쓴소리했다.

민주당이 노동자, 중산층의 삶을 외면했다는 점은 사회주의 대부인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노동자를 버린 민주당이 노동자에게 버림받은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0일 파이낸셜 타임스(FT) 분석에 따르면, 연간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5만 달러(약 7천만원)와 10만 달러(1억4천만원) 선을 그어 유권자를 3등분했을 때, 상위 구간에서는 민주당이 더 많은 표를 받았고 하위 구간에서는 대부분이 공화당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내 좌파 인사들은 이런 반성에 동참하지 않았다. 민주당 진보코커스 의장인 프리밀라 자야팔 의원(워싱턴)은 좌파 연합에 대한 비난, 문화적 이슈(트렌스젠더 등)에 관한 메시지 비난 자제를 촉구하며 “서로 손가락질하기 쉽지만,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또 다른 여론조사 기관 GQR은 6일 발표한 결과에서 유권자들은 트랜스젠더 문제를 투표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5일 전국 유권자 800명을 표본 추출한 이 조사에서 트랜스젠더 이슈 지지율은 4%에 그쳤다.

민주당의 두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는 수오지 의원 등 당내 온건파 의원들의 우려를 입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