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7일(현지시각) 정책 회의를 끝내고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 조치를 발표했다.
연준이 9월 0.5%포인트 인하에 이어 11월에도 통화 긴축정책의 완화를 지속하면서 미국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는 최종적으로 4.5~4.75%로 낮아졌다.
이날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을 내고 “최근 지표는 경제 활동이 견고한 속도로 계속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올해 초 이후로 노동 시장 상황은 전반적으로 완화됐고 실업률은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성명에서는 “인플레이션은 FOMC 목표인 2%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다소 높다”면서 지난 성명 때 사용했던 인플레이션 완화 전망에 관한 “큰 신뢰” 대신 “고용 및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에 대한 위험이 대략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번 0.25%포인트 금리 인하는 시장의 전망과 일치한다. 시장은 올해의 마지막 정책 회의인 12월 회의에서 0.25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미국 여러 은행의 금리와 상품, 서비스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인 뱅크레이트(Bankrate)의 수석 재무 분석가인 그렉 맥브라이드는 “연준은 예상대로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면서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고 있다”고 말했다
맥브라이드는 “견고한 경제 성장 속도는 연준이 9월 0.5%포인트 인하에서 보였던 긴박감을 버리고 이번과 다음번 금리 인하 결정 시, 더 신중하게 0.25%포인트의 속도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투자업체인 라퍼 텐글러 인베스트먼트의 채권 부문 책임자인 바이런 앤더슨은 연준이 채권 시장 악화에도 금리 인하를 중단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국채 수익률은 선거 직후 급등했는데,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올해 최저인 3.62%에서 4.4%로 치솟았다. 20년물과 30년물 수익률도 각각 4.7%와 4.59%로 상승했다.
국채 금리가 올라간다는 것은 국채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은 어느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미국의 재정 적자가 확대(국채 발행 확대)될 것으로 예상해왔다.
앤더슨은 “시장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인플레이션과 적자 지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장은 정보를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 파월 연준의장 사퇴?
이날 연준 기자회견에서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대선 승리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사퇴를 요구할 경우 사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안 하겠다”면서 “(대통령이 연준 총재를 해임하는 것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월은 또한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연준의 정책에 단기적으로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고 여러 정책적 조정을 거치면 통화 정책에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월은 “원칙적으로, 어떤 행정부의 정책이나 의회가 시행한 정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며 “따라서 수많은 다른 요인과 함께 그러한 경제적 효과에 대한 예측이 우리의 경제 모델에 포함돼 고려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파월의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것이 연준의 독립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질문도 제기됐다.
이에 파월 의장은 “오늘은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 말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CN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의 파월 비판이 연준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보도를 자주 해왔다. 특히 대선 기간, 트럼프가 ‘선거를 앞둔 금리 인하는 정치 행위’라고 한 것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트럼프는 대선 직후인 11월 7일 회의에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으나, 연준은 대선을 두 달 앞둔 지난 9월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린 것은 4년 만이었으며 인하 폭은 무려 0.5%포인트였다.
여론조사 ‘연준, 정치 개입한다’ 응답 74%
최근 조사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은 연준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재테크 사이트인 월릿허브(WalletHub)가 지난달 말 발표한 ‘연준 분석 보고서’에서는 미국 성인 74%가 연준이 정치적 이유로 금리를 인하한다고 판단했다.
보고서는 또한 미국인 68%가 금리 인하가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연준은 정책적 결정이 정치와 무관하며 독립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거듭 말해 왔다. 지난 9월 금리 인하 결정 후 파월 의장은 “선거 일자보다는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이 무엇인가’를 항상 고려한다”며 정치 행위 아니냐는 의혹에 고개를 저었다.
파월의 임기는 오는 2026년까지다. 그는 중도 사퇴하지 않고 임기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파월을 해고하지는 않겠지만 재임용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그(파월)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될 경우 그대로 놔둘 것”이라고 했다.
이어 8월에는 “(대통령이) 최소한의 통화 정책에 관해서는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며 사업가로 성공한 자신이 파월 의장이나 다른 연준 이사들보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더 나은 직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LPL 파이낸셜의 수석 경제학자 제프리 로치는 역대 대통령들 중에도 연준 의장과 갈등을 빚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며 “행정부가 정책을 위해 통화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노력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라며 시장 역시 추후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시도에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의 마지막 연준 정책 회의는 12월 17~18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