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 화교단체 한성화교협회장 선거 과열
- 중국 국적자 대만 재외교민협회장 선거 출마?
- 한국화교 ‘깡통여권’ 문제 해결 가능할까
- 중국의 보이지 않는 손 개입 의혹…대만정부 책임론도 제기
민주주의 축제로 불리는 선거가 세계 각국에서 치러지고 있다. ‘글로벌 선거의 해’로 불리는 올해 1월 13일, 아시아 최고 민주국가로 평가받는 대만(중화민국)에서 총통 선거가 치러졌다. 11월 5일, 대통령제 원조 국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다. 와중에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재외 화인(華人)의 선거 열기가 뜨겁다. 선거는 양안(兩岸) 간 대리전 양상도 띤다. 선거 결과를 한국 내 화인 사회는 물론 대만 정부, 한국 정부가 주목한다.
11월 10일, 사단법인 한성화교협회(漢城華僑協會) 차기 회장·감사장(監査長) 선거가 치러진다. 회장은 협회 이사회를 통할(統轄)하고, 감사장은 감사단 대표로서 회장단·이사회의 활동을 감사한다. 3년 임기의 회장·감사장은 러닝메이트이다. 각 후보들은 10월 26일 선거사무소 공식 개소식을 시작으로 본격 선거 운동에 돌입했다. 11월 3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성화교중고등학교에서 정견발표회를 개최했다.
한성화교협회는 한국 내 대만(중화민국)계 화교를 대표하는 조직이다. 1884년 설립한 중화상회(中華商會)가 모체다. 이후 중화상공회(中華商工會), 한성화교자치구(漢城華僑自治區)를 거쳐 1969년 6월부터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 내 화교·화인(華人) 사회는 양분돼 있다.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를 기점으로 이전에 정착한 대만(중화민국)계 구(舊)화교와 이후 정착한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계 신(新)화교가 있다. 대만 국적을 소지한 재한화교는 2만2000명가량으로 추산되지만 최근 수년간 귀화 등으로 숫자가 1만 5000명 선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그중 한성화교협회는 서울 경기 지역(서울, 인천, 경기 일부 제외) 구화교의 권익을 대표하고 2002년 성립한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中國在韓僑民協會總會)는 신화교 대표 조직이다.
‘중화(中華)’에서 유래한 ‘빛날 화(華)’와 ‘타향살이 교(僑)’가 합쳐진 화교(華僑)는 재외 거주 중국인을 총칭한다. 청(淸) 말 사상가 정관응(鄭觀應)이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에게 보낸 문서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교민(僑民)’과 더불어 사용되고 있다. 1909년 청 정부, 1929년 중화민국(中華民國) 정부는 ‘헌법’에 “외국에 거주하면서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모두 화교라고 부른다.”고 규정했다.
한국화교 역사는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과 함께 시작됐다. 조선의 파병 요청을 받은 청 정부는 광둥(廣東) 수사제독 오장경(吳長慶)을 지휘관으로 하여 군대 4만 5000명을 파견했다. 군용품 조달 등을 위해 상인 40여 명도 함께했다. 이들이 ‘근대’ 한국에 발 디딘 ‘중국인’의 시초다. 오장경은 한국 화교의 비조(鼻祖)이다. 그해 8월, 조선과 청은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을 체결했다. ‘장정’에 의거해 청 상인들은 합법적으로 상업 활동을 할 수 있었다.
20세기 들어 1912년 청이 멸망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성립했다. 신생 중화민국은 베이징(北京)을 근거지로 한 북양정부(北洋政府)와 광저우(廣州)의 국민정부(國民政府)로 나뉘어 대립했다. 중국 각지에서는 군벌(軍閥)이 할거하여 혼란이 지속됐다. 그 시절 산둥(山東)성에서 서해를 건너 중국인들이 대거 한국으로 유입됐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화교의 약 98%의 원향이 산둥성이다.
140년 역사 한국화교 절대 다수 山東이 원향
한성화교협회는 140년 역사를 지닌 한국화교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단체이다. 협회의 성격도 무시할 수 없다. 반관반민(半官半民) 단체로서 대만 정부 업무 일부를 위탁받았다.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대상 각종 진정 접수 ▲대표부 발급 사증(査證) 전달 ▲화교와 한국인 분규 조정 ▲출생·사망·혼인 신고 등이 대표적이다. 협회는 “일상 업무가 대만 국내 구진공소(區鎮公所·시군구청) 업무와 같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성화교협회가 관리·운영하는 자산도 적지 않다. 서울 중구 명동 중정도서관(中正圖書館·현 한성화교협회) 빌딩, 서울 중구 명동 한성화교소학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환성화교중고등학교, 서울 중구 수표동 화교사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재한 화교의 고유자산으로 간주돼 왔고 한성화교협회도 자산 관리·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다. 다만 자산 등기·보존을 위해 해당 자산은 대만 정부를 대리한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명의로 등기돼 있다. 협회 관리 자산은 서울 도심부에 자리하여 자산 가치가 높다.
이렇듯 상징성에 더해 실질 권한, 적지 않은 자산까지 가진 국내 최대 화교단체 한성화교협회 협회장 선거가 과열·혼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23대 회장·감사장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기호 1번 사영성(謝永成)·이용전(李庸銓) 후보, 기호 2번 이중한(李中漢)·여경래(呂敬來) 후보의 2파전으로 치러진다. 각 후보 진영은 “한국화교 권리 증진”을 내세워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흑백요리사로 유명세 여경래 쉐프 협회 감사장 도전
기호 1번 사영성·이용전 후보는 ▲국내 화교 자산 보존, 권익 침해 방지 ▲혼인·상조 지원 ▲협회 이사회 활성화 ▲국내 화교 학교 지원 ▲교민 간담회 활성화 ▲노령층 복지 확충 ▲화교문화전승·공동체활성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호 2번 이중한·여경래 후보는 ▲서울 중구 수표동 자산 분쟁 해결 ▲협회 재무·회계 투명화 ▲협회 관할 75세 이상 노인 대상 1인당 연간 50만 원 지원 ▲노년층 여가활동 공간 제공 ▲상조 서비스, 공공묘지 확보 ▲화교 학생 대상 장학금 확충 ▲대만 방문 시 비자 면제 추진 ▲협회 행정용 핫라인 개통 ▲협회 관리 호적 등본 전산화 ▲한국 정부 다문화가족 정책 동참이 주요 공약이다.
그중 서울 중구 수표동 화교사옥 문제가 쟁점이다. 청계천 수표교 인근의 화교사옥(수표동 11-9)은 등기부등본상 ‘중화민국(대만)’이 소유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화교들이 일군 고유자산이다. 원래 오늘날 서울중앙우체국 터를 화교 사회가 화교학교 기숙사부지로 소유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해당 터에 우체국을 신축하면서 대토(代土) 형식으로 받아 소유했다. 1002.7㎡(약 303평) 부지에 올라간 허름한 목구조의 2층 건물이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기에 감정가만 420억 원 상당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울시의 청계천 일대 재개발과 관련하여 화교사옥 처리도 이슈가 됐다. 지난 2022년 토지 주인 대만 정부를 대표하는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와 화교사옥 관리를 맡아온 한성화교협회는 화교사옥 일부를 국내 한 건설사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해당 시행사는 현 화교사옥 남쪽에 있는 부지를 재개발하여 오피스 빌딩을 신축할 계획이다. 화교사옥 부지 일부도 함께 매입해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8월, 한국-대만 단교 후 그해 12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 6층에 입주한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는 빌딩 신축 후 일부 층에 입주할 계획을 마련했다. 대표부와 한성화교협회는 토지 매각 대금을 신축 빌딩 지하 1·2층 점포로 받기로 했다.
부지 재개발을 앞두고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와 한국화교 사회는 갈등을 빚고 있다. 화교들은 코로나19 이후 상권 침체 현상 등을 반영해 지하층에 입주할 경우, 임대수입만으로는 막대한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를 비롯해 대만 정부에 지속 제기해 왔다. 대만 정부는 세금 등 제반 문제를 고려할 때 신축 빌딩 지하층을 분양받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성화교협회는 보상금을 통해 새 건물 매입을 원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1992년부터이다. 한·중 수교와 함께 대만과 단교하면서 한국과 대만은 현재까지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없다. 상호 ‘대표부(代表部)’를 설치하여 비공식 외교관계만을 유지하고 있다. 해당 부지도 중화민국(대만)이 소유한 사실상의 ‘외교용지’지만 공식 외교용지로 인정받지 못한다. 수표동 부지를 매각하거나 명의를 변경할 경우 수십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세금이 뒤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해당 부지 등기 명의를 종전 ‘중화민국(대만)’에서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로 일방적으로 변경하여 화교 사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시 리자이팡(李在方)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대표는 산둥성이 원적인 한국화교 출신이지만 당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과 민진당 정부 입장을 일방 대변하여 한국화교 사회의 권익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만 중앙통신사 서울 특파원 출신의 리자이팡 전 대표는 대표 임명 전 총통부 국책고문(國策顧問)을 지냈다. 이에 화교 사회 일각에서는 리자이팡 전 대표를 ‘배신자’로 취급하기도 한다.
수표동 부지가 서울시 도시계획상 공원부지로 획정되면서 개발 시행사가 기부채납 대금 423억 원에 매입하기로 약정했다. 다만 부지 금액 활용 방안에 대해서 대만정부 입장과 한성화교협회가 지향하는 방향이 달라 갈등을 빚어왔다. 최악의 경우 재개발 추진 시 ‘현금청산’을 할 경우 수백억 원의 토지보상금이 명의상 소유주인 대만 국고로 귀속되는 문제도 있다.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 화교사옥 부지
누적된 갈등은 올해 폭발했다. 지난 8월 18일, 서울 중구 한성화교소학교 강당에서 한성화교협회 회원들은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를 상대로 항의 집회를 열었다. 대만 정부와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는 종전 입장을 고수했다. 9월 6일에는 서울 종로구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앞에서 대만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도 개최했다. 대만 총통부, 외교부, 교무위원회 등에는 진정서, 투서도 보냈다. 급기야 한국화교들은 대만 국경절(쌍십절) 행사 참석 거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실제 화교협회 관계자의 국경절 행사 불참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와 한성화교협회 간 해묵은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다른 쟁점은 한국화교의 여권 문제이다. 2012년 7월, 한국과 대만은 상호 무비자 체류기간을 90일로 연장했다. 한국·대만 여권 소지자는 이 기간 동안 상대국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다. 한국화교들은 이 혜택에서 소외됐다. 대만 정부는 자국 여권 소지자이지만 자국 내 호적은 없는 이들을 사실상 외국인으로 분류한다. 대만 방문 시 유효 기간 5~10년의 ‘방문증’을 발급받도록 한다. 90일 이상 장기 체류할 경우 외국인과 동등한 비자도 받아야 한다. 명목상 모국인 대만을 방문할 때마다 입국신고서를 쓰고 입국심사도 외국인 창구에서 받아야 한다.
오늘날 중화민국(대만) 여권은 두 가지로 나뉜다. 대만에 호적(戶籍)이 존재하면 통일번호(統一證號·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여권이 발급된다. 호적이 한국을 비롯한 타국(他國)에 있을 경우 통일번호가 없는 여권이 발급된다. 무비자 입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신분증 번호가 있는 여권뿐이다. 한국화교들은 자신들의 여권을 ‘깡통여권’이라 부른다. 대만에 1년 이상 체류할 경우 통일번호가 발급되고 신분증 번호가 명시된 여권이 발급되지만 생업이 한국에 있는 한국화교들에게는 무리한 요구라고 화교들은 항변한다.
이른바 ‘깡통여권’으로 인하여 한국화교들이 겪고 있는 불편은 적지 않다. 한국과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상당수 국가들은 주한국 외교공관(대사관·총영사관)에서 비자 업무 창구 자체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캐나다가 대표적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만 국적 화교는 캐나다 방문 시 비자 창구가 개설돼 있는 필리핀 등 제3국을 경유해서 캐나다 비자를 받은 후 한국에서 출국해야 하는 형편이다. 전 세계 여권 파워를 알려주는 헨리여권지수(The Henley Passport Index)의 2024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199개 각국 여권 중 대만은 34위로 141개국에서 비자 면제 혹은 도착 비자 발급 혜택을 누리고 있다.
2013년부터 한성화교협회는 대만 행정원 교무위원회(僑務委員會·화교업무위원회) , 외교부 등에 “대만 본토 여권과 동등하게 대우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2014년 7월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가 입주한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 앞에서 ‘차별적 불평등 여권제도 개선 촉구’ 궐기대회도 벌였다. 하지만 대만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답은 없다. 한국화교뿐만 아니라 제3국 거주 구화교와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뿐이다.
부모만 셋 둔 고아
대만 정부가 한국화교를 역차별하게 된 기저에는 정책 기조 변화가 자리한다. 2000년 5월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민진당 정부가 출범했다. 궁극적으로 ‘대만 독립’을 지향하고 ‘중화민국(중국)’이 아닌 ‘대만’ 고유 정체성을 강조했다. 이는 화교 정책에도 반영됐다. 2000년 장푸메이(張富美) 대만 행정원 교무위원회 위원장은 “노(老)화교, 신(新)화교”라면서 대만 국적 재외국민을 양분했다. 노화교는 1949년 중화민국 정부의 대만 천도 이전부터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이다. 신화교는 대만 출신 재외국민을 의미한다. ‘대만인’ 출신 해외 거주자에게는 본국인과 동등한 혜택을 부여하지만, 대만에 연고가 없는 이들은 사실상 외국인으로 취급하겠다는 의사이다. 이후 재외국민법, 출입경관리법 등 관계법령 개정으로 ‘구화교’로 분류된 이들은 대만 방문·거주 시 외국인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됐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른바 ‘깡통여권’으로 인한 불편 사항 개선이 쟁점이 됐다. 이에 대한 1·2번 후보 진영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대만 정부를 상대로 한 본격적인 청원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한 협회 관계자는 “2000년대 민진당 정부 출범 이후부터 본격 시작된 한국을 비롯한 재외 거주 ‘구화교’ 여권 문제는 당면 문제이지만 단기간에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다.”라고 밝혔다.
협회 재정, 후보자 국적 문제 논란
협회 재정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제20대 담소영(譚紹嶸) 회장(재임 2015~2018) 임기 시 확보한 재정 건전성을 제21대 이보례(李寶禮) 회장(재임 2018~2021)-제22대 손육서(孫毓緖) 현 회장 재임 기간 동안 해쳤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잡비(雜費)’ 항목으로 협회 예산을 매월 수백만~수천만 원 과다 지출하여 협회 재정을 ‘마이너스’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 제22대 집행부에서 감사장을 지낸 사영성 후보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화교 커뮤니티에는 “잡비 명목으로 과다 지출한 것도 납득할 수 없는데 회계 책임자의 서명이 빠져 있다. 감사장 출신인 사영성 후보가 책임져야 한다.”는 글이 한성화교협회 지출 내역서 사진과 함께 게시되고 있다. 사영성 회장 후보도 한성화교협회가 입주한 중정도서관빌딩 관리위원회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성화교협회장 선거 핵심 쟁점은 후보자 자격 문제이다. 이는 ‘부정선거’ 논란에 불을 지피는 핵심 원인이기도 하다. 선거 기간 동안 ‘화교의 목소리’ ‘나는 한국화교(我是韓國華僑)’ 등 페이스북 한국 화교 계정을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했다. 1번 협회장 후보자 사영성(謝永成) 씨의 국적 논란이다. 커뮤니티에는 사단법인 한성화교협회 법인 등기부 등본 사진이 게시됐다. 2021년 제22대 협회장 선거에서 손육서(孫毓緖) 현 회장과 더불어 협회 감사장에 당선된 사영성 후보의 국적이 중화민국(대만)이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개된 등기부 등본 임원 인적 정보란에는 ‘이사 중화인민공화국인 사영성(HSHIER YUNG CHENG)’이라고 기재돼 있다. 기재된 국적에 의하면 중화민국 재외국민 단체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가 출마한 셈이다. 이는 대한민국(남한)계 일본 교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在日本大韓民國民團) 단장에 조선적(북한 국적) 소지자가 출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한성화교협회 선거규약(漢城華僑協會選舉章程)’ 제3조에는 “회장·감사장 후보 요건으로 중화민국 여권 및 외국인등록증(F-1, F-2, F-4, F-5 혹은 F-6 체류 자격)을 소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화예(華裔·대한민국 국적 취득자, 귀화자)도 이사·감사 후보자가 될 수 있으나 회장·감사장 후보는 될 수 없다.”고도 명시했다.김육안(金育安) 여한화교참전동지회(旅韓華僑參戰同志會) 승계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 게시글에서 “사영성 후보가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로서 한성화교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는 것은 화교 사회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사영성 후보는 출마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민 몰래 후보 등록을 하여 교민 사회를 우롱했다. 이후 사실이 밝혀져 본인에게 사실 규명, 국적 증명을 위한 출석을 요구했으나 답변도 없고 연락도 회피하고 있다. 협회 정관상 회장·감사장 후보 등록 자격은 여권, 외국인등록증상 국적이 ‘중화민국’이어야 한다. 만약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이면 후보 자격 자체를 원천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사영성 후보에게 제기된 국적 의혹이 사실일 경우 출마 자격 자체가 문제가 된다. 당선 시 규정 위반으로 당선 무효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중한 후보 측은 “현 집행부와 선거관리위원회가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후보 등록을 묵인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서 지난 11월 1일, 이중한·여경래 후보 측은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를 방문하여 사영성 후보 국적 규명, 대표부의 중재를 요청했다.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는 11월 5일 오후 3시까지 사영성 후보에게 국적 관련 논란 소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한을 넘길 경우 한국 법무부에 공식 국적 조회를 요청할 예정이다. 이후 량광중(梁光中) 대표(대사)가 후보 자격 문제, 선거 지속 여부를 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관계당국(행정원 외교부, 교무위원회)도 이 사안을 중대 사안으로 판단하고 신속한 처리를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에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사영성 후보의 국적이 중화민국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사퇴할 경우 이중한 후보가 무투표 당선이 가능하지만, 화교사회 일각에서는 단독 출마해도 찬반 신임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신임투표 실시도 협회 규정에는 없는 사항이다.
현재까지 에포크타임스 취재를 종합하면 사영성 후보의 국적을 둘러싼 의혹은 다음과 같다. ▲본디 중화민국(대만) 국적이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 여권을 소지했다. ▲사업을 명분으로 중국 여권으로 중국을 드나들었다. ▲이후 귀화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추후 본인 국적이 문제가 되자 대만 정부에 중국 여권 반납, 대만 국적 회복을 청원하였으나 거절당했다. ▲대만의 ‘양안인민관계조례’에 의거하면 중화민국(대만) 국적자는 중국에 호적을 두거나 중국 여권을 사용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하면 대만 호적이 말소되고 선거권, 건강보험 등 관련 권리도 상실한다.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는 사영성 후보가 중화민국이 아닌 중국, 한국 등 제3국 국적임이 확인될 경우 중화민국 여권을 회수하여 사실상 국적 박탈을 결정할 수 있다. 이에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의 추후 결정이 주목된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통일전선공작
사영성 후보의 국적 논란, 현 집행부와 선거관리위원회의 불공정 논란을 지켜 보면서 한성화교협회, 한국 정보·방첩 기관 관계자들은 “이번 화교협회장 선거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하고 있는 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다름 아닌 중국 정부이다.
주한국중국대사관은 한성화교협회를 상대로 적극적인 통일전선공작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화교 90% 이상의 원적이 대만섬이 아닌 중국 산둥(山東)성이라는 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구화교의 다수가 중화민국(대만)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대만에서 ‘3등 국민’ 취급을 받는 다는 사실도 약한 고리이다.
실제 주한국중국대사관 관계자들은 한성화교협회와 접촉면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통일전선공작의 일환이다. 대사관은 중국 국경절을 비롯하여 각종 행사에 한성화교협회 임원들을 초청하고 있다. 와중에 중국대사관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구화교를 대표하는 한성화교협회장, 신화교를 대표하는 중국재한교민협회장이 나란히 참석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201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앞두고 추궈홍(邱國洪) 당시 주한국 중국대사가 개최한 리셉션에도 이보례(李寶禮) 당시 한성화교협회장과 왕해군(王海軍)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나란히 참석했다. 중국 대사·공사 이·취임 행사에도 한성화교협회 관계자가 참석하고 있다. 지난 7월 이임한 싱하이밍(邢海明) 대사 이임 연회에도 손육서 회장 등이 함께했다. 앞서 2015년 이충헌(李忠憲) 당시 한성화교협회 회장이 한국화교 최초로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으로 피선됐다. 조부의 고향이 산둥성 룽커우(龍口)인 이충헌 당시 회장은 산둥성과 옌타이(煙臺)시 정협 위원을 맡았다. 이충헌 전 회장은 베이징을 방문하여 중국공산당 고위층을 만나기도 했다. 이는 한성화교협회 친중화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한국 정보·방첩 관계자는 “중국이 통일전선공작의 일환으로 한성화교협회장 선거에 직·간접 개입하고 있다. 이미 사영성 후보자 국적 논란, 협회장 출마 자격 시비로 한국화교사회가 분열되어 갈등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중국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실제 “중국 총영사관 소재지인 광주화교협회는 친중화한 지 오래이고 이후 인천화교협회도 급속히 친중화가 진행됐다.”는 것이 한국 정보·방첩 기관의 분석이다.
한국 내 대만정부 대리기관이자 한성화교협회 감독 책임이 있는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의 ‘책임론’도 제기됐다. 그동안 명목상 자국민인 한국화교 권익 보호, 관리 감독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주한국중국대사관이 전개하는 적극적인 통일전선공작과 비교된다. 이른바 ‘깡통여권’ 문제 개선을 요구하는 한국화교 사회 목소리에 소극 대응해서 화교 사회의 반감을 사 온 점도 빠트릴 수 없는 문제이다.
한국화교들은 스스로를 ‘부모만 셋을 둔 고아’에 비유한다. 형식상 모국인 대만이 어머니, 원적이 있는 중국이 아버지라면 나고 자란 터전인 한국은 양아버지라는 뜻이다. 그중 명목상 모국인 대만 정부가 한국화교와 관계 유지에 실패하여 한국화교 사회 친중국화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취재 중 만난 한 화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가 한국화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