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학원(孔子學院)은 중국 공산당 정부의 ‘샤프 파워(Sharp Power)’ 전파 기관이다. 샤프파워는 미국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가 제시한 ‘소프트파워(soft power)’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경제력으로 대변되는 하드파워(hard power)의 반대 개념으로, 강제나 보상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을 의미한다. 샤프파워는 국가가 대상 국가의 정치 체제에 영향을 미치고 약화시키기 위해 조작적인 외교 정책을 사용하는 것이다. 중국·러시아 등 소프트파워 면에서 약세인 권위주의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소프트파워의 부정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공자학원은 중국의 대표 사상가 ‘공자(孔子)’의 이름을 내걸었지만 “공자학원에는 공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자의 이름을 빌려 중국 공산당의 이념·체제 선전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유물론·무신론에 기반한 공산당이 유가(儒家)의 비조(鼻祖) 이름을 내걸어 자국 교육·문화 기관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할 수 있다. 공자학원 운영도 형식상 중국 국무원 교육부 산하 중외언어교류협력센터가 총괄하지만, 실제는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의 통제를 받는다. 이는 공자학원이 중국 공산당 선전기관이라는 유력한 방증(傍證)이다. 실제 설립 초기부터 공자학원 설립·운영에 관여한 이들도 “공자학원은 중국공산당의 선전기구이다.”라고 증언했다.
공자학원은 프로파간다(propaganda·宣傳) 기관을 넘어 설치국의 학자·학생 동향 감시, 정보 수집을 수행하는 스파이(spy) 기관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비롯한 구미(歐美)국가를 중심으로 ‘공자학원 퇴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주권기관 의회 차원에서 공자학원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행정부는 적극 대응하고 있다. 2023년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펴낸 ‘미국 내 공자학원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메릴랜드대에 처음 설치된 이후 미국 내 공자학원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2017년 118곳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22년 12월 기준 7곳으로 대폭 감소했다. 90%포인트 이상 감소한 수치이다.
존치하는 공자학원들도 퇴출 압박에 직면했다. 2020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공자학원을 “미국 대학과 초·중·고등학교에서 중국의 국제적 선전, 악의적 영향력 행사를 촉진하는 단체이다.”라며 공자학원·학당을 국무부의 감시·감독을 받는 ‘외국 정부 대행기관’으로 지정했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은 공자학원 퇴출 무풍지대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세계 최초 공자학원인 서울공자아카데미 설립 후 2024년 10월 현재, 총 24개 공자학원이 운영 중이다. 그중 22개는 대학 부설·협약기관 형태로 하나는 사설학원 형태, 나머지 하나는 국내 굴지 교육기업 제휴 형태로 운영 중이다. 아시아 국가 중 최다 규모이다.
공자학원의 위험성 경고는 지난 문재인 정부 시기 본격 제기됐다. 정보·방첩 기관을 중심으로 ‘공자학원이 내재한 잠재적 위험성’의 실태를 밝히고 정부 차원의 대응 조치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회, 행정부 차원의 제한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했으나 ‘조치’는 미비했다. 저출생 여파로 학령 인구 급감 속에서 생존 위기에 내몰린 지방 사립대학에 있어 공자학원은 생존 도구 중 하나이다.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 설치 대학에 현금·인력 지원을 하고 중국인 유학생 유치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국내 공자학원은 단 한 곳의 폐쇄도 없이 운영 중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조류에 역행한다.
이러한 형편 속에서 한국에서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공자학원 반대·퇴출 운동이 전개돼 왔다.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관·체육정책관이 대표로 있는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CUCI·약칭 ‘공실본’)가 대표적이다. 공실본은 매주 수요일 서울 중구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앞 시위, 공자학원 설치 대학 앞 시위, 국회·행정부 대상 청원 운동, 대중 강연 등을 통해 “공자학원 퇴출!”에 목소리 높여오고 있다.
공실본을 중심으로 전개된 공자학원 퇴출운동은 성과도 내고 있다. 공자학원이 각 중고등학교에 설치하고 있는 공자학당 설치 취소를 이끌어 낸 것이다. 9월 30일 충남 공주시 소재 영명고등학교는 공자학당 설립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앞서 8월 22일 영명고등학교는 순천향대학교 공자학원과 공자학당 설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공실본은 영명고등학교에 공자학원 관련 자료를 제공했고, 이를 검토한 학교 측은 위험성을 감지하고 공자학당 설치를 취소한 것이다.
공자학원 20주년 기념 행사도 공실본 등의 항의로 취소됐다. 10월 29일, 세계 최초 공자학원인 서울공자아카데미는 설립 20주년 기념 행사를 서울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행사에는 아이훙거(艾宏歌) 주한중국대사관 교육담당 공사참사관의 특강도 예정돼 있었다. 행사 소식을 접한 공실본은 성균관대 측에 항의했고 행사가 예정된 10월 29일 서울공자아카데미를 시작으로 한양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성균관대학교를 순회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동시에 성균관대학교를 상대로 항의 운동을 집중 전개했다. 이에 대학 측은 행사장 대관 취소 결정을 내렸다. 행사 장소는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에서 세종대학교 서울캠퍼스로 긴급 변경됐으나 역시 공실본 측의 항의를 받은 대학 측의 대관 취소로 예정대로 치러지지 못했다. 항의 운동을 주도한 한민호 공실본 대표는 “현명한 결정을 내려 준 성균관대학교, 세종대학교에 사의(謝意)를 표한다.”고 말했다. 공실본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자학원 실체 알리기, 기 설치된 공자학원, 공자학당 퇴출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공자학원은 올해 전 세계적으로 20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중 ‘세계 최초’ 공자학원 설립 20주년 기념행사이자 국무원 교육부 출신 중국대사관 고위 외교관 참석이 예정돼 있던 행사가 한국 시민단체의 항의로 차질을 빚게 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