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파병으로 선 넘은 北…“中 ‘중재자’ 외교에 도전”

강우찬
2024년 10월 25일 오후 4:45 업데이트: 2024년 10월 25일 오후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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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파병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한국과 미국 등에 의해 확인되면서 중국이 새로운 외교적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RFA는 24일(현지시각) 북한 및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중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를 자처하다가 딜레마에 빠졌다는 국제 정세 분석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영국, 우크라이나는 북한이 러시아에 수천 명의 병력을 보냈으며 이들이 최전선에 투입될 수 있거나 이미 투입됐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확인하면서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당초 북한과 러시아는 파병설을 부인했으나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브릭스 정상회의기자회견에서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정황이 담긴 위성사진에 관해 질문을 받자 “위성사진은 진지한 것”이라며 이날 러시아 의회가 비준한 러시아-북한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에 군사 원조 관련 내용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는 그간 러시아가 서방 언론의 북한군 파병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부인하던 것과는 달라진 반응이다.

중국은 한 걸음 떨어진 입장을 내세웠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린젠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며 “우리는 모든 당사자가 사태 완화를 추진하고 정치적 해결에 전념하기를 바란다”고 의례적 답변을 덧붙였다.

RFA는 미국의 국제정치 전문가 왕웨이정 교수를 인터뷰해 “중국이 몰랐을 수도 있지만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며 “중국은 국제 외교에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려 북한과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 6월 러시아와 북한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해 1960년대에 폐기한 상호방위조약을 사실상 부활시켰다. 이 조약은 한쪽이 침략을 당하면 다른 쪽이 의무적으로 군사 지원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왕웨이정 교수는 북·중·러가 긴밀한 관계에 있으나 명확한 군사동맹을 체결한 것은 아니라며, 중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지 않는 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진핑 주석이 2년 전 푸틴 대통령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무제한의 협력’을 다짐했지만 실제로 양국 협력에는 한계가 있어 왔다”며 “양국은 아직 서로의 운명을 서로에게 걸 정도의 사이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왕웨이정 교수는 이번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중국의 외교적 입지에 제약이 가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중국은 러-우 전쟁 발발 후 국제무대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런데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이 다소 움츠러들게 됐다”며 “뒤에서 러시아 편을 들면서도 서방과 가까이 지내려는 기존 전략을 크게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윌슨 센터의 트로이 스탠가론 국장은 중국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몰랐을 수도 있지만 알았더라도 모른 척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탠가론 국장은 “중국은 북한의 러시아 지원으로 손해 볼 일은 없다”며 “러시아에 직접 군사를 지원해야 할 부담을 덜면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중 밀착이 중국으로서도 반가운 일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부터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겨냥해 제재를 가해왔다. 이러한 제재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으나 북한의 핵 개발은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안보리가 추가 제재를 결의하려 하더라도 중국, 러시아 같은 안보리의 다른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가로막을 수 있다.

스탠가론 국장은 “북한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는 것을 경계해왔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우회할 수 있다. 러시아에 병력과 군수물자를 지원해 경제적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국내 여론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달갑지 않은 눈치다.

미 국방부 사브리나 싱 대변인은 24일 기자회견에서 “북한군이 러시아에 갔다는 증거가 있지만 무엇을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의회에서는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마이크 터너 하원 정보위원장은 23일 성명을 통해 “(미국은) 북한 군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행동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경고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무역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중국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으나, 북한의 러시아 지원으로 미국이 자극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보고 있다.

또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한 ·미·일 3국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이 경계하는 ‘아시아판 나토’ 구축에 진전을 가져오고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