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日 원폭 투하에 사용한 2차대전 활주로 재건…이번엔 중국 겨냥

강우찬
2024년 10월 25일 오전 11:09 업데이트: 2024년 10월 25일 오전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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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을 실었던 서태평양의 섬 활주로를 재건한다. 이번에는 겨눈 곳은 중국이다.

월스트리트저널, CNN 등 복수 언론에 따르면 미군 태평양공군사령부는 미국 자치령인 서태평양 티니안섬에 있는 북부 비행장을 재정비하고 있다. 작업이 완료되면 대규모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괌에서 북쪽으로 200km, 하와이에서 서쪽으로 6000km 떨어진 이 섬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을 물리치고 점령한 곳으로 B-29 전략폭격기 기지로 사용했던 곳이다.

대전 이후에는 방치돼 정글로 뒤덮였지만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리틀보이’, 9일 ‘팻맨’을 B-29 폭격기에 탑재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미국은 두 원자폭탄을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해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고 우리나라는 그해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케네스 윌스바흐 미군 태평양공군사령관은 티니안섬 북부 비행장 재건은 장거리 미사일 공격 능력을 갖춘 중국과 북한 같은 적대국의 목표를 분산시키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미군이 일부 시설에 공격을 받더라도 상당한 화력으로 반격할 수 있도록, 군사적 선택지를 다양하게 하기 위한 조치다.

윌스바흐 사령관이 북한을 함께 언급하기는 했지만, 주로는 공산주의 중국을 겨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동남아시아 국장 니하리카 만다나는 “중국은 거대한 미사일 무기고를 구축했다”며 미국과 동맹국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 정권은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수백 발을 본토에서 직접 발사할 수 있으며 점점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적 선택지를 다양하게 한다’는 전략에 따라 미군이 재건하고 있는 비행장은 티니안섬 한 곳만이 아니다.

지난 6월 22일 미 해병대는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비행장이 있던 팔라우섬에 KC-130 허큘리스(헤라클래스) 수송기가 무사히 착륙했다”며 “앞서 해병대 공병단이 수개월에 걸쳐 수풀과 불발탄을 제거하고 활주로를 재건했다”고 전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는 1944년 미군과 일본군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다. 이 전투로 미군 1500명, 일본군 1만1천 명이 숨졌으며, 미 제1해병연대는 6일간 전투로 70%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병대는 “2차 세계대전의 희생을 기리는 동시에 지역 안보와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CNN은 “이 지역의 안보 이슈는 최근 몇 년간 주로 중국에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중국 중거리 미사일 사거리 밖 제2열도선 방위 재건 박차

1980년대 중국 공산당은 군사전략에 따라 ‘열도선(列島線· island chai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열도선은 태평양의 섬들을 사슬처럼 이은 가상의 선으로 대미 군사 방어선이다. 중국에서는 도련선(島鏈線)이라고 부른다.

열도선은 중국에서 가까운 제1열도선(오키나와-필리핀-말라카 해협)과 그 바깥에 위치한 제2열도선(일본 이즈제도·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으로 나뉜다.

미군은 중국의 장거리 폭격 능력과 순항 미사일 및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 성능 향상으로 인해,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미군기지의 작전 수행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티니안, 팔라우 등 제2열도선의 방위 능력 구축에 박차를 가해왔다. 괌과 팔라우 사이에 위치한 미크로네시아의 얍섬도 그중 하나다. 미 공군은 2025년 예산에 얍섬 국제공항 활주로 확장을 위한 4억 달러를 요청했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유대 관계 강화도 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정부는 팔라우 정부와 상호 법 집행 협정을 체결해, 미국 해안 경비대가 팔라우 측 요원 없이 팔라우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법 집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모두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AFP 통신에 따르면, 팔라우의 수랭겔 윕스 대통령은 8월 중국이 관광 수입을 올려주겠다며 대만과의 단교를 종용했다며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인구 1만8000명의 팔라우는 대만의 전 세계 12개 수교국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