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판 달군 해리스-트럼프 ‘맥도날드’ 공방…핵심은 서민 표심

강우찬
2024년 10월 24일 오후 2:06 업데이트: 2024년 10월 24일 오후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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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을 열흘 남짓 남겨둔 가운데 미국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맥도날드가 키워드로 떠올랐다.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맥도날드에서 근무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져보는 기사들이 미국 주요 매체들에서 쏟아지고 있다.

해리스가 대학생 시절 맥도날드에서 일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해리스 캠프도 이와 관련해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팩트체크 전문 매체 스놉스는 22일(현지시각) “해리스는 수년에 걸쳐 이 주장을 반복했고 여러 주요 매체가 이 소식을 보도했다”며 “하지만 해리스 자신의 발언을 제외하면 이 주장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사진, 고용 기록, 주변인 증언 등은 없다”고 전했다.

스놉스는 또한 “뉴욕타임스, CNN, 폴리티코, ABC 뉴스가 해리스의 발언만을 증거로 삼아 이 주장을 반복 보도했다”며 “뉴욕타임스와 폴리티코는 그녀가 대학 1, 2학년 사이에 맥도날드에서 일했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해리스의 발언을 뒷받침하거나 반증하는 추가적인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 주장을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전날 뉴스위크 역시 “트럼프 캠프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그것(해리스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했고, 해리스 캠프는 (사실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이날 해리스가 ‘맥도날드에서 일했나’라는 질문을 받자 “제가요? 그랬어요(Did I? I did)라고 답했다며 “해리스는 41년 전, 하워드 대학 2학년이었던 1983년 여름 캘리포니아 알라메다의 중심가 맥도날드에서 일한 기억을 떠올렸다”고 전했다.

아울러 맥도날드와 해리스 캠프가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에 응하지는 않았지만, 20일 맥도날드는 직원들에게 보낸 입장문을 통해 ‘우리 회사는 8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직책에 관한 근무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고 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방송 광고 ‘알고 있습니다(Know)’의 한 장면. 워킹맘 아래에서 맥도날드에 근무한 중산층 가정 출신이라는 점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 카멀라 해리스 공식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해리스 “대학 때 맥도날드서 일해, 중산층 잘 안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식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를 대선 판으로 먼저 끌어들인 것은 해리스 측이다.

해리스 캠프는 지난 8월 10일 중산층 유권자를 겨냥한 TV 광고를 공개하면서 해리스 후보의 맥도날드 근무 경험을 주장했다.

이 광고는 ‘중산층을 지키는 투사 해리스’ VS ‘자본가들의 탐욕을 대변하는 트럼프’ 구도를 부각하려 했다.

광고에서는 해리스가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워킹맘의 딸로, 대학생 시절 맥도날드에서 일했다면서 “카멀라 해리스는 중산층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며 “그래서 의료비를 낮추고 주택을 더 저렴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광고 제목 역시 ‘알고 있습니다(Knows)’였다.

또한 내레이션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는 중산층을 도울 계획이 없다. 억만장자들을 위한 세금 감면만 더 있을 뿐”이라고 공화당 후보 트럼프를 비판했다.

해리스 캠프는 광고 공개에 맞춰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 점을 강조했다.

캠프 대변인 로렌 히트는 “그녀(해리스)는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며 “대통령으로서 해리스의 최우선 과제는 기업의 탐욕에 맞서는 비용을 낮추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면, 도널드 트럼프는 일하는 미국인을 희생시켜 초부유층 친구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려고 출마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광고는 해리스가 후보직을 공식 수락한 민주당 전당대회(8월 19일) 개막 전, 주요 경합지를 대상으로 올림픽 경기 중계방송과 시청률이 높은 인기 프로그램에 삽입 송출됐다.

맥도날드에 따르면 미국인 8명 중 1명, 약 4천만 명이 맥도날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미국 내 맥도날드 매장은 약 1만3500개.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도 맥도날드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해리스의 남편 더그 엠호프도 맥도날드 근무 시절 찍은 사진이 있다.

정치 평론가 스티븐 쉬어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맥도날드는 어디에나 있고 모든 사람이 찾는 음식점”이라며 맥도날드 근무 경험은 중산층과 서민층의 광범위한 유권자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요소라고 평가했다.

2019년 3월 4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대학미식축구 우승팀을 초청해 맥도날드 햄버거로 만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부유한 가문 출신인 트럼프는 맥도날드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며 미국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친밀감을 얻어냈다. | AP/연합

트럼프 “해리스, 맥도날드서 일한 적 없어…거짓말”

맥도날드 근무 경험을 내세워 중산층 표심을 공략하던 해리스 부통령에게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경쟁 후보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각) 트럼프는 대선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를 방문해 햄버거 프렌차이즈인 맥도날드 매장에서 감자튀김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한 후 해리스의 거짓말을 재차 언급했다.

트럼프는 “누군가가 맥도날드에서 일했다고 여기저기에서 말하고 다니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해리스는 맥도날드에서 일했다면서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했다. 그녀는 감자튀김 만드는 프렌치 프라이 코너가 얼마나 덥고 힘든지 말했다”고 했다.

이어 “실제로 그녀는 맥도날드에서 전혀 일한 적이 없다. 맥도날드도 방금 그걸 확인해줬다. 그녀는 맥도날드에서 일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카멀라는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해리스의 맥도날드 근무 경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8월 30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 보수 단체 집회에 참석해 “20분 정도 샅샅이 조사한 결과, 그녀(해리스)가 그곳에서 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어떤 자료를 어떻게 조사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발언 하루 전날(29일) 미국 매체 워싱턴 프리비컨은 해리스가 대학을 졸업하고 약 1년 만에 제출한 구직 지원서와 이력서에 맥도날드 근무 경력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해당 지원서 등은 1987년 10월 알라메다 카운티 지방 검사실의 로펌 서기직 지원을 위해 제출한 것으로, 당시 검사실에서는 앞서 10년간 맡았던 모든 직책을 기재할 것을 요구했으나 해리스는 몇몇 직업 경험만 적고 맥도날드 근무 경험은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 미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지원하려는 직종과 무관한 직업 경험은 오히려 마이너스’, ‘정부기관에서는 지원자의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모든 경험을 쓰도록 한다’ 등으로 의견이 엇갈린다.

프리비컨은 또한 해리스가 2010년과 2019년 쓴 회고록에서도 맥도날드 근무 경험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해리스가 대선 이전에 맥도날드 근무 이력을 전혀 밝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셜미디어 엑스(X, 구 트위터)에는 연방상원의원 시절이던 2019년 6월 라스베이거스에서 파업 중이던 맥도날드 직원들을 찾아간 자리에서 “나는 학생 시절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과 아이스크림을 팔며 일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해리스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상태였다. 다만 선거 자금 부족으로 경선을 완주하지는 못하고 중도 하차했으나, 해당 발언 장면은 지금도 해리스의 공식 X 계정에 올려져 있다.

팩트체크 전문매체 스놉스에 따르면 부통령으로 재임한 이후인 2024년 4월과 8월에도 각각 “감자튀김을 했다”, “맥도날드에서 일했다”는 발언이 확인됐다.

하지만 해리스의 고용 및 급여 기록이나 근무 당시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 이름이 들어간 명찰이나 유니폼 등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맥도날드를 둘러싼 두 후보 간 논쟁 이면에는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학비를 버는 대학생부터 가족의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가장까지 미국의 일자리 문제가 놓여 있다. 누가 서민과 중산층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후보인지가 당락을 좌우하는 관건이라는 것이다.

한편, 맥도날드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나, 직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맥도날드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빨간색(공화당)도 파란색(민주당)도 아니다. 우리는 황금색(맥도날드 브랜드 컬러)이다”라고 밝혔다.

매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트럼프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우리의 핵심 가치인 ‘모든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둔다’는 입장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이슈가 정치적으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