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400m 난공불락 요새에서 유령 마을로…다게스탄의 ‘감수틀’

마이클 윙(Michael Wing)
2024년 10월 19일 오전 10:56 업데이트: 2024년 10월 19일 오전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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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세 시대에는 가파른 산봉우리 꼭대기에 집을 짓는 것이 최고의 보안 체계였다. 지금의 러시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지역을 통치했던 칸(Khans)족은 이 사실을 일찍이 알고 활용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페르시아를 향한 상업 봉쇄를 시작하며 많은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칸족은 코카서스산맥의 정상에 요새를 건설하고 터를 잡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다게스탄의 공중요새

감수틀은 다게스탄의 마추픽추라고 불린다 | Shutterstock/J_K

다게스탄은 러시아 북코카서스연방관구에 속한 연방 자치공화국이다. 카스피해의 서쪽 연안과 코카서스산맥의 남쪽에 자리 잡아 대부분 산악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이 지역의 한 산맥에는 페루 안데스산맥 정상에 있는 마추픽추 유적과 흡사한 산악 요새가 있다. 감수틀(Gamsutl)이라 이름 붙은 이곳은 최소 1600년 전, 길게는 50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마추픽추는 16세기에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됐지만, 이곳은 20세기까지 거주지로 번창했다.

감수틀 마을 | Shutterstock/shushonok

해발 약 1400m의 코카서스산맥의 정상에 터를 잡은 주민들은 돌집의 한쪽 벽을 절벽과 맞닿게 설계해 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게 했다. 마치 돌기둥 사이에 자리 잡은 제비집처럼 보이는 이 마을의 이름은 고대 전통에서 유래했다. 감수틀은 ‘칸의 요새 기슭’이라는 뜻으로, 한때 칸이 이곳에 살며 보호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은 접근과 공격이 매우 어려운 만큼 과거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의 고난기에도 한 번도 정복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오랜 역사와 독특함을 지닌 이 마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곳의 건물들은 돌로 벽을 쌓고 흙과 짚으로 대들보를 덮어 만든 것으로, 내구성이 좋지 않다. 현재 남아있는 약 300채의 건물들은 1800년대에 지어진 개축 건물이다.

감수틀의 번영과 쇠퇴

감수틀 마을 | Shutterstock/paha1205

1900년대까지만 해도 감수틀 마을은 3000명가량이 거주하는 활기 넘치는 곳이었다. 학교, 병원 등 생활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이동 영화관이 방문해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통 발달과 사회 변화로 인해 주민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이들에겐 산꼭대기에서의 삶에 비해 도시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후 감수틀에 거주하는 사람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노인들만 남아서 마을을 지켰다. 2002년에 이르러 마을 주민은 단 17명에 불과했다. 2010년에는 그마저 10명으로 줄었고 결국 감수틀에는 단 한 사람, 압둘잘릴 압둘잘릴로프(Abdulzhalil Abdulzhalilov)만 남았다. 그는 감수틀에서 평생을 보냈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정원을 가꾸고 양봉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감수틀 마을 | Shutterstock/Evgeny Haritonov

압둘잘릴로프는 외딴 산골 마을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여러 매체는 해발 1400m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인물과 마을의 풍경을 촬영해 대중에게 소개했다. 그는 자신을 ‘감수틀의 시장’이라 부르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난 2015년 감수틀의 마지막 주민 압둘잘릴로프가 숨을 거둔 후 마을은 관광객만 찾는 유령 마을이 됐다. 한때 번성하고 외부의 위협에 난공불락이었던 마을은 현재 다게스탄의 대규모 관광 명소 중 하나다.

마이클 윙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태어나 예술 교육을 받은 작가 겸 편집자입니다. 그는 주로 문화, 사람, 트렌드 뉴스에 대해 글을 씁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