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왜 ‘알맹이’ 빠진 부양책 쏟아내나…“시진핑의 잦은 변경 탓”

강우찬
2024년 10월 17일 오후 4:19 업데이트: 2024년 10월 17일 오후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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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내부 소식통 인용해 손발 안 맞는 中 경기 부양책 ‘배경’ 분석
“시진핑, 금융위기 우려하면서 기술강국 건설, 지방부채 해결, 5% 성장 요구”
“제로코로나 종료하듯 갑자기 정책 바꿔…일선 당국자들 연일 긴급 회의”

중국 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가운데 2년간 침묵하던 중국 정부가 최근 한두 달 사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쏟아냈다. 9월 말, 금리를 인하하고 현금 유동성을 확대하는 등 대책을 연달아 발표했다. 적어도 190조 원이 넘는 돈이 시중에 풀릴 예정이다.

지난 토요일(12일)에는 중국 재정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 부양을 위한 국채 추가 발행을 발표했으나 시장에서 기대했던 ‘구체적 숫자’는 제시하지 않았다. 실망감이 크다 보니 토요일에 기자회견을 잡은 것은 증시에 미칠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꼼수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15일(현지시각) 이러한 중국 경제 정책의 흐름에 대해 “시진핑의 중앙집권적 의사 결정 방식이 정책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거듭 반복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경제 정책이 불투명하고 예측 불가능해”지고 중국 투자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WSJ은 의사 결정 라인에 가까운 중국 관리와 정부 고문들을 인용해, 시진핑이 기술 강국 건설, 파산 위기에 처한 지방정부 구제, 주식시장 회복과 함께 금융 위기를 걱정하며 ‘디리스킹(Derisking·위험완화)’과 경제 성장률 5% 내외 목표 달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러한 엇갈린 메시지가 투자자들을 롤러코스터 태우기 하고 있다며 시장이 지난달 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금리 인하 발표로 활기를 띠었으나, 이달 초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세부 사항이 빠진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덧붙였다.

WSJ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의료진에게 사전에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제로 코로나’를 해제해 중국을 혼란에 빠뜨린 일도 거론했다. 시진핑이 의사결정권을 거머쥔 채 방역이나 경제 등 주요 정책을 좌우하면서 혼란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황을 누렸던 부동산 산업이 규제로 인해 폭락하고, 민간 기업의 활약으로 성장하던 산업들이 정부의 개입으로 활력을 잃고 이를 책임져야 할 일선 공무원들이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린 것도 이러한 중국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이 모든 압박에도 불구하고 손을 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WSJ은 전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경제 회복을 촉진하려면 민간 경제 수요를 자극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중국은 계속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중국의 경제 정책 조율 부서인 국가발전개혁위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총 2천억 위안(약 38조원)의 재정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이 빠진 바람에 발표 후 오히려 중국 증시가 급락했다. 12일 재정부의 토요 기자회견도 추가 국채 발행을 밝혔지만 역시 구체적 수치가 없어 시장의 실망감을 자아냈다.

이러한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은 WSJ에 “(중국은) 자금을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대규모 재정 부양책 실행에 쓰는 게 아니라, 지방정부에 대한 유동성 경색 압력을 완화하고 국유은행에 자본을 투입하는 데 사용했다”고 말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에이컨 경영대학원 프랭크 셰(謝田·셰톈) 교수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발전개혁위는 방향성만 제시했지, 실물 경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새로운 조치를 내놓지 못했다”며 “지금은 그런 척만 하면서 증시에 자금을 끌어들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셰 교수는 “정부가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며 앞장서자 언론과 국유기업, 국가대표팀(중국 정부를 대신해 시장에 개입하는 자금)이 일제히 움직이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의 목표는 145조 위안(약 2경7천조원)에 달하는 가계 저축을 끄집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중국은 정부와 기업 모두 자금이 부족하다. 경제를 살리고,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할 돈이 나올 곳은 가계 저축뿐”이라며 ‘부추 베기’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부추가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베어도 금방 자라는 부추처럼, 작전 세력이 띄운 주식에 개인 투자자들이 몰리면 부추 베듯 자금을 다 가져간다는 의미다.

최근 한국 국내에서도 중국 증시 상승세와 관련해 투자를 유도하는 기사와 견해 발표가 잇따랐다. 기대감을 자극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중국 인민은행은 증권사, 보험사, 상장회사들에 은행 돈을 빌려서 주식을 매입하도록 독려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 증시가 반짝 상승세를 보인 이유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이 주식을 매입할 때, 일반적으로는 자체 자금을 사용하며 대출을 받아 매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개인 투자자가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둥성과 푸젠성 등 여러 은행들은 최근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면 안 된다”는 우려 성명을 냈다. 지난 9월 말 인민은행의 금리 인하 발표 이후 중국 본토와 홍콩에 상장된 중국 주식들이 급등하면서 투자 과열 양상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보기 드문 강세장에 투자자들은 들떴고, 중국 관영 언론들도 가세해 지금 시장에 뛰어들지 않으면 한몫 챙길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9일 중국과 홍콩 증시에서 중국 A주 상장기업 172곳을 포함해 270개 이상의 상장기업이 주주들에게 지분 축소 공고를 냈다고 보도했다.

셰 교수는 “인위적인 강세장이 길지 않을 것을 전망한 조치”라며 “변동성이 큰 증시에서도 빠른 판단으로 돈을 버는 자본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서방 투자사와 자본이 그렇게 장기간 버틸 수는 없다. 이번 급등으로 어느 정도 돈을 벌더라도 오래 머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강세장은 2015년 중국 증시 폭락을 연상시킨다”며 중국 당국이 금융 시장 완화로 증시를 부양했다가 신용 규제를 강화하며 증시를 폭락시킨 사례를 예로 들어 개인 투자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