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색채로 구현한 가을…美 화가 크롭시 ‘자연에 대한 찬사’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4년 10월 15일 오후 5:06 업데이트: 2024년 10월 15일 오후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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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미국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계절이다. 미 북동부 지역의 단풍은 화려한 빛깔로 보는 이를 매혹한다. 봄, 여름 내내 푸른빛을 띠던 나뭇잎은 청동색, 진홍색, 적갈색 등 예술가의 팔레트에 어울리는 색으로 변한다. 아름다운 미국의 가을은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풍경화 유파(流派)인 허드슨강파(Hudson river school)에게 큰 영감을 줬다.

재스퍼 프란시스 크롭시의 사진, 나폴레옹 사로니 | 퍼블릭 도메인

미국 최초의 자생적 미술 유파인 허드슨강파의 예술가 재스퍼 프란시스 크롭시(1832~1900)는 ‘미국의 가을 화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예술 경력 전반에 걸쳐 가을의 자연 풍광을 탐구했다. 그는 동료 화가 토마스 콜이나 프레더릭 에드윈 처치만큼 인지도를 얻진 못했지만, 그의 장엄한 풍경화는 미국을 넘어 영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허드슨강파의 예술가

크롭시는 미 뉴욕주 스태튼 아일랜드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14세에 건축가의 수습생이 된 그는 재능을 알아본 이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전문적인 수채화 교육을 받게 됐다.

1842년 크롭시는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건축 설계사로 생계를 꾸리며 유화의 소재로 자연을 탐구하고자 여행을 떠났다. 그는 뉴저지 여행 중 한 여인을 만났고, 5년 뒤 결혼한 두 사람은 함께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펜실베이니아의 스타루카 고가도로’(1865), 재스퍼 프란시스 크롭시 | 퍼블릭 도메인

1849년, 미국으로 돌아온 크롭시 부부는 뉴욕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허드슨강파의 예술가들이 주로 뉴욕주 허드슨강 계곡과 주변 지역, 미국 북동부의 애팔래치아산맥, 서부 개척지 등을 그린 것처럼 그 또한 일대를 관찰하며 창작 활동을 펼쳤다.

허드슨강파의 화가들은 미국의 자연 경광을 이상화해 그 속에 신의 존재를 반영코자 했다. 거대한 자연의 대지와 강물의 힘찬 흐름은 그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대담한 색채로 표현된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신의 가르침을 반영하고자 한 허드슨강파의 핵심을 온전히 담아냈다.

이후 그는 1856년부터 1863년까지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를 공부하며 발전을 도모했다. 이 시기에 그는 예술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뒀다. 많은 후원자가 그에게 미국과 영국의 풍경화를 의뢰했고, 그는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가을의 매력

‘가을-허드슨강에서’(1860), 재스퍼 프란시스 크롭시 | 퍼블릭 도메인

1860년, 크롭시는 최고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기념비적인 작품인 ‘가을-허드슨강에서’를 그렸다.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1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다. 비록 그는 이 작품을 런던의 작업실에서 완성했지만, 허드슨강의 풍경을 수도 없이 관찰했던 기억을 더듬어 이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 속 계절은 자연이 따스한 빛깔로 물드는 10월경의 낮이다. 정오부터 조금씩 내려앉는 햇살은 강물과 산, 드넓은 초원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당시 가을을 담은 그림은 한 해의 마무리, 인간 생명의 쇠퇴와 소멸, 죽음을 상징하곤 했다. 그러나 크롭시의 작품은 다른 관점을 취했다. 그는 인간과 자연계의 조화로운 균형을 가을 풍경화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에 대해 당시 한 미술 비평가는 “한 해의 엄숙한 소멸이 아닌 즐거운 축제를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이 작품에는 비옥하고 풍부한 자원을 지닌 축복받은 영토에 대한 국가적 자부심과 기쁨이 담겨있다.

이 작품은 언뜻 보기엔 우선 광활한 풍경에 압도된다. 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의 특별한 재능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자연의 일상적인 세부 사항을 매우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려 넣어 이 아름다운 풍경이 결코 비현실이 아닌 우리 곁의 실재임을 깨닫게 한다. 그는 그림 속 앞쪽의 나무를 수종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자작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섬세하게 묘사됐다.

‘가을-허드슨강에서’(1860)의 세부, 재스퍼 프란시스 크롭시 | 퍼블릭 도메인

화면 양쪽의 숲은 풀이 무성한 초원을 둘러싸고 있다. 왼쪽에는 개울이 흐르고,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세 명의 사냥꾼과 개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드넓은 강에서 파생된 시냇물은 화면 전체를 걸쳐 구불구불하게 흐르며 풀을 뜯는 양, 다리 위에서 노는 아이들, 물 마시는 소 등에게 생명력을 부여한다. 화면의 위쪽에는 범선과 증기선이 허드슨강을 바삐 건넌다. 화면 오른쪽의 스톰킹 산과 구름 떼가 흐릿하지만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가을-허드슨강에서’(1860)의 세부, 재스퍼 프란시스 크롭시 | 퍼블릭 도메인

이 작품은 영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크롭시는 영국 전체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고자 이 작품을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물했다. 영국의 가을 풍경은 이 작품보다 덜 화려하다. 대부분의 수종이 가을이면 붉고 노란빛보다는 녹갈색을 띤다. 이에 관객들은 미국 단풍이 만들어낸 화려함을 이국적이라며 열광했다.

경이로운 자연과 계절에 대한 찬사

‘인디안 서머’(1866), 재스퍼 프란시스 크롭시 | 퍼블릭 도메인

1863년 크롭시는 영국에서 뉴욕으로 돌아와 남은 삶을 보내면서 ‘인디언 서머’(1866), ‘펜실베이니아의 스타루카 고가도로’(1865) 등 미국의 대자연과 신의 은총에 대한 찬사를 계속 그렸다.

1880년대에 이르러 미술계의 유행이 변하면서 그의 작품은 이전처럼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정밀하게 자연을 묘사하는 섬세함이 돋보이는 허드슨강파의 작품보다는 ‘이삭 줍는 여인들’ 등의 걸작을 남긴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로 대표되는 바르비종파의 작품 형식이 인기를 끌었다.

한때 미국 전역과 영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크롭시의 작품은 사후 더 큰 명성을 얻었다. 미국의 독특한 자연 풍광을 찬미하며 사실주의와 시적 요소를 아름답게 결합한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대중과 학자들 모두에게 높이 평가받으며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