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세계를 중국을 모델로 한 거대한 독재 국가로 바꾸려 한다…독일 정치인들은 이를 방관하거나 심지어 공모하고 있다.”
독일 언론이 최근 입수한 중국 공산당 비밀공작원 명단에 독일 정재계, 문화계 유력 인사 47명이 포함됐다며 이렇게 논평했다.
보도전문채널 NTV은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지하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한 익명의 제보자를 인터뷰해 해당 명단에 있는 47명을 “독일에 소재한 중국 공산당의 비밀조직인 ‘통일전선’ 연락책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라고 전했다.
이 제보자는 “정말 큰 조직”이라며 “그들은 시의원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방 정치를 움직이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의 국방정책 싱크탱크 제임스타운 재단은 소셜미디어 엑스(X) 공식 계정을 통해 10개국 탐사보도 전문기자 21명으로 구성된 언론인 그룹이 유럽 전역의 통일전선 공작원 233명의 명단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 명단 작성에는 스페인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팬더스가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지난 2022년 전 세계 53개국에 중국 비밀경찰서 102개 존재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국제사회에 충격을 일으킨 바 있다.
언론인 그룹이 공개한 유럽 내 중국 통일전선 공작원 233명 가운데 독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20명으로 집계됐다. 명단에는 이름, 휴대전화 번호, 유선전화 번호, 개인 및 업무용 이메일 주소, 소속 단체명 등이 포함됐다. 단체는 상당수가 통일전선과 연계된 조직이었다.
We collaborated with @SafeguardDefend to support a consortium of journalists on exposing a list of 233 ppl in the CCP’s united front network in Europe, inc. France (102), Germany (20), Italy (12), Spain (18), Sweden (17), Hungary (12), Switzerland (8).https://t.co/KDFwwbu7dy
— Jamestown China Brief (@ChinaBriefJT) October 5, 2024
NTV는 해당 명단을 조사해 이 가운데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47명을 추려냈고, 지하 주차장에서 만난 익명의 제보자에게 확인을 요구했다. NTV가 공개한 영상에는 제보자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가리고도 중국의 추적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이 제보자에 따르면 명단에 오른 인물들은 다수가 독일에 귀화한 중국계 혹은 중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화교들이었다.
베를린에 소재한 비영리기관 독일마셜기금(German Marshall Fund)의 중국 문제 연구원 마레이크 울버그는 “그들(중국 당국)은 이민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을 위해 이용하려 한다”고 NTV에 말했다. 그녀는 지난 수년간 독일 내 중국 통일전선 조직의 침투 전술을 추적해왔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피터 매티스 제임스타운 재단 총재는 2023년 3월 미국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에 제출한 서면 증언에서 “통일전선의 목표는 외부인을 통제하거나 동원, 이용해 당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증언 링크).
이들 통일전선 조직들은 경제 협력, 문화 교류, 우호 협력 등의 간판을 내걸고 있다. 각국의 유력 인사들에게 혜택과 명예를 제공하고 중국에 초청해 부와 권세를 맛보여 준다. 이런 인사들 일부는 중국의 제안이 자신 혹은 자국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당(공산당)의 목표 달성에 영합하게 된다.
통일전선 공작은 일반적으로 현지에 정착한 중국인, 중국계 인물 가운데 정계와 재계에 인지도를 쌓은 인물을 중심으로 추진된다. 이들은 은밀하게, 때로는 공개적으로 중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영향력을 발휘해, 해당 국가의 국익을 저해하더라도 중국에 이익이 되는 정책을 채택하게 만든다.
이러한 통일전선 공작의 대상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업가도 포함된다. NTV는 그런 인물로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글로벌 스킨 케어 그룹 ‘바이어스도르프’ 산하 자회사를 이끈 중국계 웨이핑 메이 박사를 예로 들었다. 이 그룹은 ‘니베아 크림’ 등으로 유명하다.
1959년 중국 장쑤서 쑤저우 태생인 메이 박사는 쑤저우 공과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독일로 건너와 바이어스도르프 개발 부서에서 25년간 근무하며, 이 그룹이 중국에 설립한 연구개발센터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이를 통해 그룹이 축적한 연구 성과를 중국에 전수했다.
매이 박사는 또한 독일의 중도우파 성향 정책연구소인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에서도 연구원으로 몸담았다. 이 재단은 기독교 민주주의 및 온건한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지만, 메이 박사는 독일 내 중국계 커뮤니티의 유력 인사로서 중국 공산당 정권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NTV 취재에 따르면, 메이 박사는 중국의 대표적인 통일전선 조직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도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또한 중국에서 열리는 열병식에도 여러 차례 귀빈으로 초청됐다.
메이 박사는 통일전선 조직과의 관련성에 관한 질의에 응하지 않았다고 NTV는 전했다.
공개된 통일전선 조직원 명단에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에서 4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독일의 인플루언서 류위안화(劉元華)가 올라 있었다.
독일 남부 만하임에서 중국 전통 의원을 운영하는 그녀는 중국어학원과 중국문화센터를 개설해 지역사회를 상대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NTV는 류위안화가 중국 공산당의 관련성을 부인했다면서도 독일 정치인들과의 만남은 특별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며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지사, 독일 연방정부 농업부 장관, 슈투트가르트 재무부 장관 등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거론했다.
함부르크의 유명 중국음식점 주인도 명단에 올랐다. 보도에 따르면, 이 음식점 주인 쾅웨이선(鄺偉森)은 주로 독일 연방정부 고위층과 폭넓은 관계를 맺어왔다. 1964년 함부르크 기차역에 문을 연 이 광둥요리 전문점은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도 여러 차례 방문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쾅웨이선은 현재 함부르크 화교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나 이 단체는 순수한 독일 내부 단체가 아니라 중국 본토와 관련성이 확인됐으며, 쾅웨이선이 최근 아들과 함께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 관계자를 만났다고 NTV는 전했다.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 조직의 독일 침투를 추적해 온 울버그 연구원 역시 “그(쾅웨이선)는 독일 내 통일전선 조직의 주요 책임자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러한 통일전선 조직원은 전통적인 스파이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대리인 역할이다. 은밀하게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으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해외에서 중국 공산당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아울러 현지 중국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중국의 독재 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묵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 내부에 일종의 중국식 전체주의 사회를 이식하는 이러한 행위는 이민자 커뮤니티에 관심이 적거나 접근성이 약한 현지인으로서는 그 위험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국제사회가 중국 내부에서 빚어지는 1인 독재 강화에 시선을 돌리는 사이 통일전선 조직들은 서방(국제사회)에서 비판자들을 침묵시키며 세계 공산화를 진행해 왔다. 이번 탐사보도 스웨덴 TV4 취재팀에 따르면 “이런 공작이 성공하면 세계는 훨씬 더 어두워질 것”이라고 매티스 총재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