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역 건들지마’ 中 공산당 군부 1·2인자 갈등설 확산

강우찬
2024년 10월 10일 오후 2:47 업데이트: 2024년 10월 10일 오후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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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발탁한 고위 장성 낙마…배후엔 2인자 루머
“실종됐다가 해임된 리상푸 국방장관과 같은 파벌”

중국 인민해방군 서열 2위 장유샤(張又俠·74)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군 서열 1위 시진핑에게 은밀히 저항하고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공식 확인되진 않았지만 중국 내에서 지난 9월 초 당 중앙위원 겸 육군 정치위원인 친수퉁(秦樹桐) 상장(대장)이 비리에 연루돼 낙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친수퉁 대장은 푸젠성 31군 정치부 주임(정치부장) 출신이다. 푸젠성은 시진핑이 1985년부터 2002년까지 17년간 근무한 지역으로 시진핑 인맥의 핵심 연고 지역이다. 현재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24명 중 8명이 푸젠성 출신이거나 푸젠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푸젠성 31군은 ‘시진핑의 직속 군대’라고 불릴 만큼 시진핑의 군부 인맥의 핵심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31군에서 정치부장을 맡은 친수퉁 역시 시진핑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실제로 친수퉁 상장은 지난 2022년 7월 시진핑에 의해 중공군 내 최고 계급인 상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숙청설이 사실일 경우 시진핑이 직접 승진시킨 지 2년 만에 비리 혐의로 낙마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시진핑의 체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따라서 중국 내에서는 친수퉁 낙마가 장유샤의 작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대만 등 중화권 언론에서도 이 소문을 다룬 뉴스와 분석이 지난달부터 쏟아지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군사평론가인 야오청 인민해방군 퇴역 중령은 “친수퉁은 중앙군사위에서도 정치공작부 주임인 먀오화가 뒤를 봐주고 있었다”며 “이런 인물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군사위 2인자 장유샤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 평론가 리쥔은 NTD의 시사프로그램 ‘정영논단’에서 “지난해 중국 안팎을 떠들썩하게 한 로켓군 지도부 교체로 시진핑의 측근들이 대거 숙청된 기억이 아직 생생한 데다 지난 6월에는 시진핑이 직접 승진시킨 리상푸(李尙福) 국방부장(국방장관)의 당적과 군적 박탈이 확정됐다. 이는 시진핑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이어 “적어도 한동안은 시진핑이 자신의 측근 장성들을 건드리는 일이 없어야 된다. 시진핑에 대한 군 내부 평가가 더욱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또다시 시진핑의 측근이 비리 혐의로 낙마했다면, 이는 시진핑이 바라는 게 아니라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1월 22일 진행된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의 군(경) 상장 진급식. 앞줄 가운데가 시진핑,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친수퉁 상장(대장)이다. | 신화통신/연합

군부의 이례적인 인사 변동은 친수퉁 상장의 낙마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중국 군부에서는 리상푸 국방부장을 비롯한 적잖은 고위층, 장성들의 실종설과 낙마설이 나돌았고 이는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군 간부 감찰기구인 중앙군사기율검사위원회 천궈창 부서기(부위원장)가 국립국방기술대학 정치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앙군기위는 군부에서 막강한 실권을 지닌 위치다. 반면, 국방대 정치위원은 퇴직 간부들이 가게 되는 한직이다.

리쥔은 “천궈창은 시진핑의 군 반부패를 이끈 인물”이라며 “그런 인물이 한직으로 좌천됐다는 점은 시진핑의 상황이 좋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천궈창의 좌천 역시 장유샤가 주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 서열 2위 장유샤, 서열 1위 시진핑과 갈라섰나

중국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한 언론인 야이타 아키오(矢板明夫)는 장유샤 군사위 부주석이 시진핑(군사위 주석, 국가주석, 공산당 총서기 겸직)과 미묘한 관계에 있다고 평가했다.

산케이 신문 외신부 차장으로 대만 특파원을 지낸 아키오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근래 부쩍 높아진 장유샤의 위상에 주목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장유샤는 당초 시진핑의 측근으로 분류됐다. 두 사람은 아버지 대에서부터 친분이 있었다. 장유샤의 부친인 장중쉰(張宗遜) 상장은 국공내전 당시 시진핑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과 서북(제1) 야전군에서 함께 싸운 전우다.

가까웠던 시진핑과 장유샤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계기는 리상푸 전 국방부장의 실종이라는 게 중론이다. 장유사와 리상푸는 군부 내 같은 파벌 소속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장유샤(좌·74)와 허웨이둥(우·67). 군사위 주석은 1명(현재 시진핑)이고 부주석은 2명이다. 2024.3.5 | Lintao Zhang/Getty Images

아키오는 “시진핑의 군 반부패는 장유샤의 입지를 약화시켰다”며 “리상푸를 밀어준 것은 장유샤였는데, 리상푸가 부패로 잡혀 들어가면서 장유샤도 체면에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리상푸는 인민해방군의 국방물자를 담당하는 총장비부(전략지원부대) 장성 출신이다. 장유샤 역시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다. 두 사람 모두 대규모 방산 비리에 연루됐다는 게 확실시되고 있다. 시진핑으로서는 아버지 친구 아들이라고 믿고 밀어줬는데, 대규모 비리로 뒤통수 맞은 격이다.

아키오는 “시진핑은 장유샤의 비리에 관한 증거를 다수 확보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최근 국방장관 2명을 해임해야 할 정도로 군이 요동치고 있기에, 시진핑으로서는 군을 수습하려면 여전히 장유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장유샤는 시진핑의 측근 장성으로 언론에 간간히 보도됐지만,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지난해 10월,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인 샹산포럼 개막식에 공석인 리상푸 국방부장 대신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면서부터다. 당직인 군사위 부주석에 공직인 국방부장 역할까지 사실상 겸직하게 된 것이다.

이어 올해 8월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을 국방부 청사에서 맞이한 것도 장유샤였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만난 것은 미중 갈등이 불거지기 전인 2014년 이후 8년 만이다.

설리번은 8월 27~29일 3일간 일정을 소화하며 중국 공산당의 외교정책 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에 이어 장유샤 군사위 부주석을 만났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만나기도 했으나, 이는 방중 마지막 날인 29일 장유샤와 회동한 이후 출국 전 깜짝 이벤트에 그쳤다.

AP통신은 설리번의 방중을 전하며 특히 장유샤와의 만남을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설리번 보좌관 역시 장유샤와 만나 “우리가 이런 교류 기회를 갖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지난 29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반(왼쪽)이 베이징 국방부 청사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서열 2위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4.9.29 | 로이터/연합

중국 평론가 왕허는 “시진핑과 장유샤의 관계가 악화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장유샤가 설리반 보좌관과 만난 점을 보면 아직 지위가 안정적이며 군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RFI 평론원 천포쿵은 에포크타임스에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내에는 2개의 파벌이 존재한다. 시진핑 파벌과 장유샤 파벌”이라며 “시진핑 파벌에는 또 한 명의 군사위 부주석인 허웨이둥 등이 포함됐고, 장유샤 파벌에는 리상푸가 속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군사위 내 시진핑 파벌은 군내 숙청을 지속하고 있으며 2명의 군사위 부주석인 장유샤와 허웨이둥 사이에서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장유사와 허웨이둥은 최근 몇몇 행사에서 서로 중앙군사위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7일 끝난 중앙군사위의 한 고위 간부 대상 정치사업 관련 세미나에서는 허웨이둥이 개막식 연설을 맡고, 폐막식에서는 장유샤가 연설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아키오는 “장유샤가 전면에 나서는 일이 잦아지면서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며 “중국 군 내부의 권력 균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