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 기법’으로 예술 수준을 끌어올리다…네덜란드 화가들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4년 10월 09일 오후 2:01 업데이트: 2024년 10월 09일 오후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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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의 대표적 형태 중 하나인 유화((油畫)는 기름으로 갠 안료를 사용해 그리는 서양화의 한 기법이다. 유화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러 벽화에서 그 원시적 형태를 볼 수 있다. 중세 때는 가톨릭교회 벽화에 유화가 자주 사용됐고, 15세기에 이르러 예술의 한 장르로 꽃을 피웠다.

유화 기법의 정착은 예술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이전에 주로 사용된 템페라 기법과는 달리 기후 조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고, 질감 표현이 유용했다. 또한 색감이 선명하게 표현돼 사실적 묘사에 탁월했다. 15세기 이후 르네상스 때부터 유화는 가장 선호되는 미술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 전역에 유화가 대중화되는 데에는 15세기 초 네덜란드 화가들의 공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한 예술가 중 로베르 캉팽과 얀 판 에이크는 당시 유명한 화가로 활동하며 유화의 변화를 선도했다.

플랑드르의 거장들

15세기 북유럽에서 큰 사랑을 받은 얀 판 에이크(1390~1441)는 오늘날 사용되는 유화 기법을 사용한 최초의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안료를 기름에 섞어 사용해 피사체를 정교하고 세심하게 묘사했다.

많은 이들이 얀의 대표작으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을 꼽는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성화(聖畫)에서 온전히 발휘된다. 얀의 작품 ‘교회의 성모’는 세로 31cm, 가로 14cm의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섬세하고 우아한 묘사가 눈길을 끈다.

‘메로데 제단화’(1427), 로베르 캉팽 | 퍼블릭 도메인

그와 동시대 화가인 로베르 캉팽(1375~1444)은 초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가로, ‘플랑드르의 거장’으로 불린다. 그는 뛰어난 사실 묘사와 색채 구사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 다수는 작가가 로베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의 걸작 중 하나인 ‘메로데 제단화’는 수년간 그의 제자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이 작가가 명확하지 않아 아직도 논란에 싸여있다.

‘성모의 약혼’

‘성모의 약혼’(1420), 로베르 캉팽 | 퍼블릭 도메인

1420년경에 그려진 ‘성모의 약혼’은 자연주의적 이미지와 창의성이 눈에 띈다. 아울러 장식적인 요소가 풍부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눈에 띄는 형태의 건축 구조물 두 개로 인해 한 화면이 두 가지 장면으로 나뉘어 있다.

화면의 왼쪽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원형 홀이 있다. 둥근 아치, 스테인드글라스, 조각된 석조 기둥머리가 눈에 띈다. 이 장면은 성경 속 꽃봉오리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사렛의 나이 든 총각들이 성전에 모여 인연을 만나길 기도하던 중, 요셉의 지팡이에 꽃이 피었다. 이는 그가 마리아의 남편으로 선택됐음을 의미했다.

로베르는 지팡이에 꽃이 피는 기적이 일어난 직후의 모습을 화면에 구현했다. 성전의 입구에서 지팡이를 망토 아래에 숨긴 요셉은 조용히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두 명의 인물이 지팡이를 발견하고 그를 제지한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가운데가 뾰족한 아치가 있는 고딕 양식의 교회 문이 있다. 이 문은 가고일(석재나 금속을 사용해 사자, 박쥐 따위의 위협적인 짐승 모습으로 만든 장식물의 하나)과 잎사귀로 꾸며져 있다. 이 장면은 마리아가 성 요셉과 약혼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인물들은 화려한 천으로 된 옷을 입고 기쁜 날을 축하한다.

‘교회의 성모’

‘교회의 성모’(1437), 얀 판 에이크 | 퍼블릭 도메인

1437년경 탄생한 얀의 작품 ‘교회의 성모’는 로베르의 작품과 함께 건축물 묘사의 교과서로 여겨진다. 많은 전문가는 이 작품을 얀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다.

작품 속 성모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교회 안에 서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성모의 얼굴에 은은하게 반사된다. 유화의 특성 덕에 고급스러우면서도 미묘한 빛의 표현이 구현됐다. 얀은 교회 벽과 바닥의 빛 반사까지도 표현했다.

이 작품에는 의도적으로 빛이 부자연스러운 방향으로 그려졌다. 얀은 신에게서 비치는 영원한 빛을 묘사하기 위해 일부러 빛을 남쪽이 아닌, 북쪽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그렸다.

‘교회의 성모’(1437)의 세부, 얀 판 에이크 | 퍼블릭 도메인

얀은 성모를 기념비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성모는 건물의 기둥보다 높게 그려졌다. 이 비현실적인 비율은 그녀의 초월적인 존재감을 강조한다. 예수를 안은 그녀의 뒤편 벽에는 성모상이 장식돼 있다. 살아있는 성모와 예수, 석상이 함께 있는 모습은 마치 기적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주의의 토대가 되다

초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은 여전히 관객을 매료시킨다. 이들은 유화 기법을 탁월하게 활용해 놀랍도록 사실적인 세부 묘사와 힘 있는 구성을 구현했다. 로베르 캉팽과 얀 판 에이크의 걸작에 담긴 사실주의는 회화적 평면과 관객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더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