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정권수립 기념 리셉션, 시진핑은 왜 원자바오와 환담했나

강우찬
2024년 10월 05일 오후 7:26 업데이트: 2024년 10월 05일 오후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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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엔 측근 대신 원자바오 등 원로 앉혀…‘단합 보여주기’
기념식 연설에서는 경제 대신 “당 지도 견지” 거듭 강조
평론가 “권력 누수에 불안감…집단지도 일부 복원한 것”

중국 권력 판도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음이 관측됐다. 권력 1인 독점 이후 급속한 경제 하락으로 위기에 빠진 시진핑이 고비를 넘기기 위해 일정 부분 집단지도 체제를 복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치러진 정권 수립 75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이 원자바오를 초청해 환담하는 모습을 관영 언론에 비춘 것을 두고 그동안 배척했던 당 원로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권력 장악력에 대한 자신감이 최근 1년 사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75주년 중공 정권수립 기념일 리셉션에서 시진핑은 “중국식 현대화를 추진하려면 반드시 중국 공산당의 영도(지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74주년 연설 때 경제 회복과 대외 개방, 대내(국내) 개혁을 내세웠던 연설과는 대조를 이뤘다. 지난 1년간 중국 경제 성장이 급속히 둔화되고, 해외 경제 전문가들이 강도 높은 부양책을 주문하는 상황에서도 시진핑은 오히려 ‘당의 지도’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초청객 구성이다. 30일 리셉션에서는 원자바오 전 국무원 총리(82)의 모습이 두드러졌다. 원자바오는 시진핑 바로 왼편에 앉았다. 최고 주빈 대우를 받은 셈이다.

전날인 29일 공산당 집권에 기여한 인민영웅 및 ‘중공의 오랜 친구’ 외국인 훈장 수여식 때는 원자바오와 그의 파트너였던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특히 후진타오는 지난 2022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폐막식 도중 석연치 않게 퇴장하면서 ‘강제 퇴장’ 논란이 일었고, 이후 공개석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아 이번 정권 수립 기념행사 참석 여부에 관심이 모였었다.

그런데 29일 행사 때는 원자바오와 후진타오 모두 참석하지 않았지만, 30일 리셉션에는 원자바오가 그것도 시진핑 바로 옆 주빈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시진핑의 다른 쪽 옆자리에는 역시 당 원로인 리우이환(89) 전 정협 주석이 초대됐다.

(위) 각각 2022년과 2023년 정권수립 기념 리셉션. 시진핑을 중심으로 좌우에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배석했다. (아래) 2024년 75주년 기념식에는 시진핑 양옆에 각각 원자바오 전 총리와 리루이환 전 정협 주석 등 원로 정치인들이 앉았다. 최근 수년간 한 번도 없었던 자리 배치다. | 신화통신/연합

2년 전엔 당 원로 철저 무시…지금은 주빈 대접

이날 관영 언론은 시진핑이 원자바오와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중국 관영 언론의 고위 지도부 보도는 철저하게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중화권의 정설이다.

재미 시사평론가 천포쿵은 시진핑이 원자바오와의 좋은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뭔가를 얻으려 했다고 분석했다.

천포쿵은 “의도적으로 그 장면을 내보냈다”며 “원로 정치인들에게 구애하고 아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일종의 설득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진핑의 모습은 2022년 제20차 전국 대표대회 때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천포쿵에 따르면, 시진핑은 후진타오를 강제로 퇴장시킬 정도로 권력 독점의 오만함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해 장쩌민 전 총서기 사망 추모식 때도 전현직 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지만, 관영 매체에서는 후진타오의 참석만 소개됐을 뿐 원자바오 등 당 원로들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천포쿵은 이러한 관영 매체 보도가 시진핑의 태도를 나타낸다고 풀이했다.

또한 그 시기, 당 원로들은 사실상 가택 연금됐으며 정치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엄격히 금지됐다. 중국 공산당은 역대로 당 원로들의 입김이 강한 정치 집단이었으나, 시진핑이 권력을 독점한 후 원로들의 존재감은 증발했다는 게 천포쿵의 설명이다.

지난해 중국 공산당 정권수립 74주년 기념 리셉션 때도 모든 조명은 시진핑에게 쏟아졌다.

당초 정권 수립 기념 리셉션은 국무원 총리가 주최하고, 연설 역시 총리가 맡는 것이 관행이었다. 국가주석은 5주년마다 한 번씩만 연설했다.

그런데도 74주년 리셉션 때는 이례적으로 시진핑이 연단에 올랐고 리창 총리는 철저히 들러리 역할로 전락했다. 당 원로들은 이름조차 호명되지 않았고 여전히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그런데 올해 리셉션에는 당내 온건파인 원자바오 전 총리가 주빈으로 등장했다. 게다가 리루이환(89) 전 정협 주석 등 주요 원로 참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호명됐다.

천포쿵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원로 정치인들의 가택 연금이 해제됐다”며 “1~2년 사이 상황이 정반대로 돌변했다. 원로들이 중요 행사에 주빈으로 초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 공산당 3중전회(지난 7월 18일 폐막)에서 뭔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게 사실로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군부 숙청 이면에는 약해진 시진핑, 당 원로들에 손 내밀어

천포쿵에 따르면 ‘중대한 변화’란 권력 누수다. 중공 인민해방군은 최근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졌다. 공식적으로는 ‘부패’ 문제가 거론됐지만, 시진핑이 임명한 측근들의 정치적 배신이 적발됐다는 게 중화권의 중론이었다.

다시 말해, 시진핑은 군부 장악력이 약화되면서 당권이 약화됐고, 그동안 무시했던 당 원로 세력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당 원로들의 발언권이 강해진 것”이라고 천포쿵은 설명했다.

지난달 30일 중국 공산당 정권수립 75주년 기념 리셉션에서는 시진핑이 상석에 앉은 메인 탁자에 현 정치국 상무위원 7명(시진핑 포함) 등 총 23명이 둘러앉았다. 시진핑 좌우에 각각 앉은 원자바오와 리루이환을 비롯해 15명이 퇴임한 고위층, 즉 당 원로들이었다.

천포쿵은 “이는 일정 부분 집단 지도체제를 복원한 것”이라며 “시진핑은 정치적 위기, 전례 없는 경제적 위기, 국제적 고립이라는 외교적 위기로 겹겹이 포위된 불안정한 처지에서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 중화권 언론인은 “신화통신 보도사진을 보면, 큰 테이블이긴 하지만 23명이 앉다 보니 조금 비좁아 보인다”면서 “하지만 권력 서열에 따른 계층 구분이 뚜렷한 중국 공산당 시스템에서는 아마도 일진들은 모두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만 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중국 공산당은 1949년 마오쩌둥이 베이징 톈안먼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10월 1일을 매년 ‘국경절’로 부르며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국경절은 국가의 경사스러운 명절이란 뜻이지만 국가가 수립된 날의 명칭을 ‘국경절’로 정한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날을 광복절이라고 부르고 미국은 매년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가장 축하할 일을 정권에서 정하는 것보다는 그 민족의 역사와 전통, 혹은 국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정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일부 평론가들은 ‘국경절’이라는 명칭에는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장치가 숨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공산당=국가’라는 도식을 중국인들에게 주입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특정 정당이 곧 국가라는 도식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이 국가를 지도하는 ‘당 국가체제’를 수립했으며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이념에 따라 ‘공산당=국가’라는 도식을 중국인에게 강요하고 주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변국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칩니다. 어느 한 정권이 항상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이 중국 공산당의 문제점을 거론하면, 애국주의 세뇌를 당한 중국인들은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반감을 품습니다. 이는 중국인들을 공산당의 입자로 만들기 위한 중국 공산당의 정치 공작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에포크타임스는 이러한 중국 공산당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이른바 ‘국경절’을 중공 정권 수립일 혹은 10·1절로 칭하고 있습니다.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했던 시민들도 국경절이란 표현을 거부했고 일부 중화권 매체들도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