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이티 이민자, 고양이 살해’ 소문, 어떻게 확산됐나

제프 로더백
2024년 10월 01일 오후 5:25 업데이트: 2024년 10월 01일 오후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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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의 대화에서 조심하자는 취지로 한 말 잘못 전달돼”
“수도 점검원들 ‘이민자 집에 죽은 거위·고양이 걸렸다’ 제보”
시 당국은 “허위 주장” 일축…행정책임자는 “관련 보고 사실”

지난 미국 대선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스프링필드에 온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고 주장했고 이 발언은 거센 후폭풍을 일으켰다.

현재 해당 주장의 근원지로는 스프링필드 주민 에리카 리(35)의 페이스북 게시물이 꼽힌다. 에리카 리는 이웃인 킴벌리 뉴턴과 대화하다가 뉴턴의 딸 친구의 실종된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지역 범죄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 게시판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 이웃(뉴턴)이 내게 그녀의 딸 친구가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고 알려줬다. 어느 날 그녀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티 사람들이 사는 이웃집을 바라봤는데 그녀의 고양이가, 마치 (사람들이) 사슴을 도축하듯,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고, 그들은 그것을 먹기 위해 해체하고 있었다.”

“그들이 개에 대해서도 이런 짓을 했다고 들었다. 스나이더 공원에서 오리와 거위에도 이런 짓을 했다고 한다. 방금 말한 부분은 순찰대(레인저)와 경찰에 신고했다. 이런 동물들을 살펴봐 달라.”

이후 게시물은 삭제됐지만 삭제 전 캡처한 이미지가 소셜미디어 엑스(X)에 공유됐고, 보수 성향 이용자들에 의해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면서 결국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가 대선 토론 무대에 오르게 됐다.

소문의 장본인으로 주목을 받게 된 두 주민은 사적인 대화가 이렇게까지 큰 사건으로 번지게 된 것이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페이스북 게시물을 쓴 에리카 리는 NBC뉴스에 “이 글이 스프링필드를 넘어 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자신이 직접 본 게 아니라 뉴턴의 말만 듣고 글을 쓴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녀는 에포크타임스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뉴턴은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다며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녀는 에리카 리가 자신의 발언을 허위로 부풀렸다고 설명했다. “‘나무에 고양이가 매달렸다’, ‘사슴처럼 도축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5~10분 정도의 대화였다. 나는 ‘안녕하세요, 제가 들은 게 있는데 고양이가 집 밖으로 드나드는 걸 주의하는 게 좋겠어요. 주변에 아이티 사람들이 사는 집이 있는데, 시의회 회의에서 애완동물이 실종됐다는 주민 보고가 있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뉴턴은 또한 자신의 딸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자신의 친구에게서 들었다고도 했다.

트럼프의 발언 이전까지 스프링필드의 아이티 이민자 문제는 해당 지역 일부에서만 논의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선 토론 이후 오하이오주의 쇠락한 중소도시는 미국 전역의 관심, 더 나아가 인종차별주의 비난의 초점이 됐다.

에리카 리는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라며 딸과 자신 모두 흑인 혼혈이라고 했다. 자신의 발언 역시 인종차별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도 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 아이티 이민자 급증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2024.9.14 | Jeff Louderback/The Epoch Times

인구 감소 겪던 쇠락한 산업도시…아이티 이민자, 4년간 3만명 유입

스프링필드는 한때 번창했던 산업도시였으나,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제조업체들이 지속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인구가 줄어 2020년 기준으로 주민 수가 6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아이티 이민자 약 1만5천~3만 명이 유입하면서 인구가 급증했다. 매일 아이티 이민자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고 현지 주민들은 말했다.

스프링필드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자국의 정치적 불안정에 위기감을 느낀 아이티 이민자들이 흘러들어 와 정착하면서 작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 출범 이후 국경 문호가 넓어지면서, 미국을 찾은 아이티 이민자들이 이미 기반이 닦인 이 지역에 몰리게 됐다.

미국과 문화적 차이가 큰 아이티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스프링필드에서는 이번 논란 이전부터 다양한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대선 토론이 열리기 전인 지난 8월 27일, 스프링필드 시의회 회의에서는 일부 주민들에 의해 ‘아이티 이민자들이 고양이, 개, 오리, 거위를 사냥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트럼프 대선 캠프에도 관련 제보가 쇄도하고 있었다는 게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의 설명이다.


시 당국, 주민 동의 없이 난민 유입 허용…적절한 대책 없어 문제

대선 토론 이후 아이티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게 촉발된 가운데, 스프링필드 당국은 개·고양이 살해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스프링필드 시장과 경찰당국은 물론 오하이오 주지사 마이크 드와인까지 나서서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시 전략적 참여 담당관인 카렌 그레이브스는 지난 10일 에포크타임스에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애완동물(pet)이 해를 입거나 부상 또는 학대됐다는 신뢰할 만한 보고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한 제보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감시 단체인 ‘사법감시(Judicial Watch)’가 입수한 경찰 내부 문건에는 ‘이웃이 내 고양이를 훔쳐서 도축했다’는 한 주민의 신고 사례가 기록됐다.

지난 9월 11일 오하이오주 법무장관 데이브 요스트 역시 소셜미디어 X에 “스프링필드에서 이민자들이 음식으로 사용하기 위해 거위를 포획하는 것을 본 목격자가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한 녹음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요스트 법무장관은 또한 시의회 회의에서 ‘아이티 이민자들이 거위를 살해한 사건’이 제기됐다며 “왜 언론은 시 당국이 조심스럽게 작성한 보도자료를 (주민 발언보다) 주목하는가”라고 물었다. 정치적, 사회적 입장을 고려하는 시 당국보다 생생한 주민 발언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스프링필드 지역의 민원 해결에 적극적인 주민 마크 샌더스도 마이크 이민자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샌더스는 자동차 대기업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후 지역 사회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샌더스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초 스프링필드 시당국에서 수도시설 관리자로 근무하는 직원 여러 명으로부터 관련 제보가 들어오고 있었다고 했다.

“그 직원들은 집집마다 방문해 수도 계량기를 교체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아이티 이민자들의 집에서 죽은 거위, 오리, 고양이들이 파이프에 매달린 것을 봤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시 당국이 아닌 민간 활동가인 자신에게 제보한 것은 이런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직장을 잃을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라고 샌더스는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이러한 내용을 시의회 회의에서 공개했으며,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이 발언 영상을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공유했다.(X 링크).

또 다른 스프링필드 주민 앤서니 해리스도 비슷한 내용을 말했다. 그는 지난 8월 말 시의회 회의에 출석해 “아이티인들이 쓰레기통을 뒤진다. 건물에 (무단으로) 침입하고 길 한가운데에서 차를 뒤집기도 하는데, 어찌 여러분(시의원)들은 이 상황에서 편안한가”라고 따졌다(유튜브 링크).

스프링필드 시 행정책임자(City Manager)인 브라이언 헤크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들이 제출된 것은 사실이며, 자신도 직접 보고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주민들이 페이스북에 지역 범죄 정보를 공유한 게시물이 해당 주민이 위협을 느낄 정도의 반향으로 돌아온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내가 말한 이런 것들은 지난 수개월간 논의돼 오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스프링필드 시당국은 에포크타임스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다만 시 관계자들은 기자회견 등 여러 자리에서 언론의 질의를 받을 때마다 아이티 이민자들이 야생 혹은 애완동물을 사냥하거나 잡아먹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거듭 부인하고 있다.


아이티 출신 목사 “동물 살해, 부두교 풍습일 가능성”

미국 일부 인사들은 ‘인종차별주의’라는 공격을 받을 위험성을 무릅쓰고 이번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오하이오주와 인접한 펜실베이니아의 아이티 출신 기독교 목사 겸 인플루언서 제임스 데스발롱스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부두교는 아이티 문화의 일부”라며 이번 사건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데스발롱스 목사는 “부두교 숭배에서는 그들의 신들에 대한 희생이 요구되며, 그 희생 대상을 먹어야 한다”며 “생물을 먹음으로써 그들의 신들로부터 힘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유튜브 링크).

그는 “아이티인이 동물을 잡아먹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티인은 부두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다만 부두교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닭과 칠면조를 희생물로 사용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에서 살아 있는 칠면조나 닭을 구할 수 없다면, 아이티인이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라며 “가장 가까운 것은 오리나 거위이고, 만약 그것들을 구할 수 없다면 고양이와 개가 다음일 수 있다”고 자문자답했다.

그러면서 스프링필드 주민들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논란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쓴 킴범리 뉴턴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통해 아이티 난민 증가에 따른 스프링필드 지역의 교통, 주택, 의료 및 안전 문제 해결에 더 많은 관심이 기울어지기를 희망했다.

그녀는 아이티 난민 유입은 주정부와 시당국 고위 공직자들이 결정한 것으로, 주민들은 발언권조차 없었지만 당국은 적절한 대책 없이 실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는 혐오 발언을 한 게 아니다. 주의하고 경고하려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내용이 축약·정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