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초등학생 피살 사건, 中 중견 공직자 “우리의 할 일” 발언 파장

2024년 09월 25일 오후 5:19

중국 외교부 “증오 범죄 아냐, 개별적 사건” 발언과 정면 배치
공산당 반일교육 영향 드러내…주중 외국인 안전 문제 우려 고조

지난 9월 18일, 중국에서 발생한 일본인 10세 초등학생 피습 사건의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중일 양국 외교장관은 미국에서 회담을 갖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 와중에 한 중국인이 일본인을 대상으로 막말을 쏟아냈다. 당사자가 중국 지방정부 중견 공무원이라 파문은 더 크다.

9월 24일 홍콩 일간지 ‘명보(明報)’는 한 중국 공무원이 “‘우리의 기율은 일본인을 살해하는 것이다.’라는 막말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사자는 중국 쓰촨성 농업농촌부 소속 황루이(41) 부주임이다. 그는 최근 중국 SNS ‘웨이보’에 “일본 아이를 죽인 게 대수인가?”라는 글을 게시했다. 글에서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일본인을 죽인 것이다.”라며 “우리의 기율(紀律·도덕상 행위의 표준이 될 만한 질서)은 일본인을 살해하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펼쳤다.

해당 발언은 온라인에서 급속 확산했다. 중국 누리꾼 사이에서도 “부적절한 언사이다.”라는 비판이 커졌다. 논란이 일자 쓰촨성 인민정부는 “해당 사안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처리할 준비가 돼 있다.”며 상황 수습에 나섰다.

중국 내에서는 일본인 초등학생 피습 사망 사건 비판 글이 지속적으로 삭제되고 있다. 자오훙 중국정법대 교수가 9월 21일 온라인에 게시한 ‘죽은 아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제하의 글은 반향을 일으켰으나 곧 삭제됐다. ‘관련법을 위반했다.’는 이유가 붙었다.

자오훙 교수는“애국주의 기치를 내건 어떠한 만행도 더 이상 묵인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공모하는 것이다.”라고 일침을 놨다.

중국에서 일본인 대상 테러는 올해 들어 두 번 발생했다. 6월 장쑤성 쑤저우시에서 중국인 남성이 하교하는 자녀를 맞으러 나간 일본인 모자 등 3명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9월 18일 광둥성 선전시에서는 등교 중이던 일본인학교 초등학생이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이튿날 숨졌다. 일본인학교는 일본 후지필름 선전지사 주도로 선전일본상회 기부금으로 설립됐다. 재학생은 선전시와 그 주변 지역 거주 일본 국적 어린이다.

잇단 일본인 피습 사건은 중국과 일본 사회 모두에 충격을 안겼다. 이에 양국 외교 수장은 해당 사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유엔 총회를 계기로 미국 뉴욕을 방문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성 대신과 왕이 중국 국무원 외교부장은 9월 23일 회담에서 해당 사건을 논의했다.

일본 측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중국 측은 해당 사건을 개별 사건으로 규정하며 정치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미카와 요코 외무성 대신은 “양국 관계의 중요한 기초는 국민 간 교류에 있다.”고 전제하며 “중국 측이 선전에서 발생한 일본 학생 습격 사건을 적절하게 처리하고 중국 내 일본인의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SNS상에서 일본인학교, 재중국 일본인과 관련해 확산하는 근거 없고 악질적 반일 콘텐츠를 조속히 단속해 달라고도 강력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사건이 최근 외국인 특히 일본일을 대상으로 연이어 발생한 무차별 습격 사건과 관련해 자국 내 반일정서, 반일교육과 관련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은 광둥성 선전에서 발생한 일본 학생 피습 사건에 대해 법에 따라 조사 및 처리하고 중국에 있는 외국 시민의 안전도 법에 따라 보장할 것이다.”라며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일본의 요구에 대해서는 “일본은 정치화와 사건의 확대를 피하기 위해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적반하장 격으로 중국 정부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에서 폐기한 화학무기 문제를 재차 거론하며 비판했다. 린젠 국무원 외교부 대변인은 9월 24일 브리핑에서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대표단과 OPCW 회원국 13개국 사절단이 9월 17∼22일 중국을 방문하여 일본이 남긴 화학 무기 발굴·회수·소각 등이 진행 중인 현장을 지켜봤다.”고 밝혔다.

린젠 대변인은 “제2차대전 당시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은 중국 대륙에서 화학무기를 대량 사용·폐기했고, 그 거대한 위험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일본이 남긴 화학무기 독성 제거는 일본이 피할 수 없는 역사적·정치적·법률적 책임이다.”라며 과거사를 거론했다. 그는 “일본은 화학무기금지조약과 중일 정부 간 양해각서 규정에 따라 긴박감과 책임감을 강화하고 전방위적으로 화학 무기 처리 속도를 높여 중국 인민에게 깨끗한 땅을 돌려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본이 제2차대전(중일전쟁) 당시 중국에 남긴 화학 무기 문제는 중국이 일본을 비판하는 오랜 주제 중 하나다. 중국 외교부는 중일 화학 무기 처리 양해각서 체결 25주년을 맞은 지난 7월 일본이 남긴 화학무기 문제를 브리핑에서 다룬 바 있다.

이 속에서 일본 외교당국은 중국 내 자국민 보호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9월 24일,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주중국 일본대사가 랴오닝성 다롄시를 방문했다. 다롄시는 중국 진출 일본 기업이 밀집한 지역 중 하나이다.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가나스기 겐지 대사가 9월 24일, 1700개가 넘는 일본 기업이 진출해 있는 다롄시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가나스기 겐지 대사는 슝마오핑 다롄시 중국 공산당위원회 서기 면담에서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 입장에서 이번 사안은 심각한 것이다.”라면서 “양국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중국 현지 일본인학교 경비 강화도 요청했다. 슝마오핑 다롄시 서기는 “이미 일본인학교 주변에 경비원을 증원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일본 매체들의 보도에 의하면 슝마오핑 서기는 “일본 측의 우려를 이해하고 있다.”며 “중국 내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의 안전은 극히 중요한 사안이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인 피습 사건 파장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주일본 중국대사관은 재일 중국인 대상 안전 주의보를 발령했다. 9월 25일, 주일 중국대사관은 공식 SNS 계정에 “현지에서 안전 위험에 주의하고 시위, 집회 등이 열리는 곳과 거리를 유지해 안전 의식을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대사관은 “현지 법률·규정을 준수하고 사진 촬영, 녹화, 드론 사용 등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분쟁이 발생한 경우 이성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협상 또는 법적 수단을 통해 정당한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본은 자연 재해가 빈번하므로 출발 전 목적지 위험 상황, 기상 경보 등을 미리 숙지해야 하며 정식 여행사와 자격을 갖춘 버스 회사를 선정하고 개인 상해보험 가입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재해가 발생하면 현지 안내에 따라 대피하고 허락 없이 행동하지 말라.”고도 경고했다. 지진 등 자연 재해가 빈번한 일본에서 자국민 안전을 당부하는 메시지 같지만, 일본 내 중국인 대상 보복 테러나 분쟁 예방을 위해 경고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