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달라이 라마 후계자 문제 대두…전문가 “中 개입 우려”

2024년 09월 24일 오전 10:08

중국 소수민족 문제 전문가 “내년 후계자 지정 가능성”
현 2인자 판첸 라마는 中 공산당이 일방적 지명…정통성 없어 논란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정신적 지주이다. 달라이(Dalai)는 ‘큰 바다(大海)’라는 뜻을 지녔고, 라마(Lama)는 티베트 불교 고승(高僧)을 의미한다. 1958년 인도로 망명하여 1959년부터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현 달라이 라마는 중국 정부에 있어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1935년 7월생으로 만 89세를 맞이한 현 제14대 달라이 라마(텐진 갸초)의 후계 자리를 두고 중국이 적극 개입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 소수민족 문제 전문가 배리 소트먼(Barry Sautman) 홍콩과학기술대 명예교수는 달라이 라마 후계자 지정에 있어 “”중국이 의미 있는 조처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9월 23일 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회견에서 그는 “중국은 수십 년간 준비해왔으며, 현 달라이 라마의 뜻대로 후계가 정해지는 걸 그냥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SCMP 역시 “지난 7월로 89세가 된 달라이 라마가 90세가 되면 후계 문제를 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고 중국은 이에 철저히 대비해왔다.”고 전해 배리 소트먼 교수의 분석을 뒷받침했다.

배리 소트먼 교수는 “중국은 달라이 라마가 하는 모든 일에 반드시 대응할 것이다.”라며 달라이 라마의 행보를 중국 정부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시사했다.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은 달라이 라마의 행보이다. 그는 2019년 10월, 티베트 망명정부 소재지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불교 4개 종파 회합을 주최했다. 이 자리에서 “내가 90세가 되면 티베트 불교 라마승, 일반 대중, 티베트 불교 신자들과 논의를 거쳐 달라이 라마 제도 존속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됐다. 한 가지는 “90세가 되면 후계를 정하겠다.”는 의미이다. 다른 한 가지는 “중국 공산당 등 외부 세력의 개입을 원천 차단할 목적으로 기존 승계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실제 달라이 라마는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樞機卿)단 비밀투표인 ‘콘클라베(conclave)’와 유사한 방식으로 차기 달라이 라마를 추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지난 6월에는 후계 문제와 관련해서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관련 논란이 재점화할 것을 우려해서 한 발언으로 보인다.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간주한다. 달라이 라마는 사후 환생해 전생(前生)의 가르침을 후생(後生)의 승계자가 전수한다고 믿는다. 활불(活佛) 제도다.

1447년 겐둔 둡빠가 제1대 달라이 라마로 즉위한 이후 현 14대 달라이 라마 톈진 갸초까지 이어진다. 달라이 라마 입적(入寂) 후 그해 태어난 어린이 중 환생자를 찾아내 대를 잇는 방식으로 계승돼 오고 있다.

주지할 점은 판첸 라마(Panchen Lama)의 존재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대학자를 의미하는 ‘판디타(pandita)’에서 유래했으며, 티베트불교에서 달라이 라마에 이은 제2 지도자이다. 역시 환생에 의해 후계자가 정해지고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를 지명할 권한을 지닌다. 반면 달라이 라마는 판첸 라마를 지명한다.

문제는 판첸 라마가 정통성이 없다는 점이다.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옹립됐기 때문이다.

1989년 10대 판첸 라마가 열반했다. 현 달라이 라마는 1995년 게둔 초에키 니마라는 1989년생 소년을 11대 판첸 라마로 지명했다. 그로부터 3일 후 중국은 소년과 가족을 납치했고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다.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원의 자녀인 기알첸 노르부를 판첸 라마 11세로 일방적으로 선언해 옹립했다. 진짜 판첸 라마는 사라지고 중국 공산당이 내세운 가짜 판첸 라마를 티베트자치구로 보내 종교 지도자 역할을 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현 제도가 유지된다면 중국 공산당에 의해 차기 달라이 라마가 결정될 수도 있다.

배리 소트먼 교수는 “티베트(중국 시짱자치구) 내에서 달라이 라마 후계가 지정될 경우 중국 당국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직책 유지와 수행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외부 인물을 후계로 지정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현 달라이 라마는 중국공산당의 티베트 통치에 반대해 1959년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운 후 비폭력 독립·자치운동을 전개해 왔다. 공식 명칭이 ‘달라이 라마 성하의 중앙티베트행정부(The Central Tibetan Administration of His Holiness the Dalai Lama)’인 티베트 망명정부는 제정일치 제도를 유지해 오다 2011년 달라이 라마는 명목상 국가원수로 남고 실권은 국무총리에게 이양했다.

오늘날은 입헌군주제하 내각책임제 정부 형태로서 ‘망명 티베트인 헌장’으로 불리는 헌법이 존재하고 사법부·입법부·행정부가 독립된 3권 분립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시쿙(sikyong) 산하에 △종교·문화부 △내무부 △재무부 △교육부 △보안부 △정보·국제관계(외교)부 △보건부 등 7개 중앙 부처가 존재한다. 사법부에 해당하는 최고법무위원회가 있고 티베트망명의회도 존재한다. 단원제 의회는 임기 5년인 45인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정통 정부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티베트인의 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외적으로는 외교부에 해당하는 정보·국제관계부 산하에 ‘티베트사무소(Offices of Tibet)’ 혹은 ‘티베트하우스(Tibet House)’ 명칭의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9월 현재 △미국 뉴욕 △인도 뉴델리 △일본 도쿄 △네팔 카트만두 △대만 타이베이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호주 캔버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스위스 제네바 △헝가리 부다페스트 △러시아 모스크바 △브라질 상파울루 등 총 13개가 운영 중이다. 한국은 주도쿄 사무소가 관할한다.

형식상 권력을 이양했지만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실질적인 국가 최고 지도자이다. 정신적 구심점이자 대외적 상징이기도 하다. 이에 중국은 티베트 분리주의 운동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달라이 라마 후계를 어떻게 정할지 여부가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로 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 당국이 원하는 인물이 선정되도록 영향력 행사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배리 소트먼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달라이 라마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면 티베트 문제는 잊힐 것이다.”라고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