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8세기경 이탈리아 중부에 세워진 고대 로마는 지중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해 약 1300년간 서유럽을 호령했다. 당시 로마의 유흥지 역할을 했던 바이애(Baiae)는 화려하고 호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바이애는 4세기 무렵부터 화산 활동으로 포추올리만 아래 수몰됐다가 약 2000년 뒤 탐험가에 의해 그 아름다운 위용을 뽐내게 됐다.
바이애 마을
바이애 마을은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네로 등 황제 7인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물속에 잠들어있는 이 마을의 현재 모습은 수심 4~6m를 잠수해야만 볼 수 있다.
그 옛날 바이애의 한 별장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대리석과 원형이 잘 보존된 모자이크, 고대 유물이 최근 그 형체를 드러내 고고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수중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약 817평에 이르는 상감 대리석 바닥 양식을 발견했다. 이는 오푸스 세크틸레(대리석을 크게 잘라 만든 작품)라고 불리며, 3세기에서 5세기 사이의 양식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대리석 바닥은 약 60cm 크기의 마름모꼴 타일 총 600장으로 이뤄져 있다.
연구진은 이곳의 석판 두께가 다양한 것으로 보아 다른 구조물에서 떼어내 재활용한 중고 조각으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수천 개의 복잡한 모양이 기하학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다양한 품질과 색상의 대리석이 사용됐다고 언급했다.
이곳은 2012년 발생한 폭풍에 의해 처음으로 일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발굴과 복원 작업의 난도가 높아 본격적인 작업은 2024년 5월에서야 시작됐다.
연구진은 복원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바닥이 원래 조각으로 구성돼 있고, 해저의 작용으로 인해 상감 판이 해저 바닥에서 분리됐다. 이탈리아 캄피 플레그레이 고고학 공원의 고고학자 엔리코 갈로치오는 이 작업에 대해 “광범위한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모래로 덜 덮인 부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이곳이 이미 알려져 있긴 했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바닥의 기하학적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고대 로마의 유흥지
바이애 마을은 고대 로마의 라스베이거스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곳에서 여가와 도덕적 방종을 마음껏 즐겼다.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4년 추정~기원후 65년)는 “해변을 따라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사람들, 요트 파티의 소란스러운 향연, 합창이 울려 퍼지는 호수, 그리고 법의 구속에서 해방된 사치는 법의 구속을 벗어나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공공연히 자랑하는 방식이다”라며 “왜 내가 이 모든 것을 목격해야 하는가?”라고 한탄했다.
불타는 땅
바이애 마을이 위치한 지역은 캄피 플레그레이라는 곳이다. 나폴리만(灣)의 일부인 이곳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불타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화산 칼데라 내에 속해 있으며 캄파니아 화산 지대의 마그마 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고대 로마인들 역시 이곳에 화산 폭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원후 79년 폼페이에서 베수비오산이 폭발하고 점진적인 홍수가 발생하리라곤 예측하지 못했다.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올라오며 전단층 지진이 발생했고 바이애 마을은 점차 침수돼 결국 물속에 수장됐다.
캄피 플레그레이 고고학 공원의 관계자는 이곳의 한 부분을 수집 후 재구성해 향후 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모래에 덮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대리석 바닥은 9월부터 추가 복원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마이클 윙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태어나 예술 교육을 받은 작가 겸 편집자입니다. 그는 주로 문화, 사람, 트렌드 뉴스에 대해 글을 씁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