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삐삐 테러’ 배후는 이스라엘 모사드? 특수부대?

한국의 추석 연휴 기간, 중동은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레바논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삐삐’라고 통칭하는 무선호출기가 동시다발로 폭발하여 약 27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9월 17일, 영국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레바논 보건부는 이날 무선호출기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사태가 벌어졌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폭발 지역은 레바논 전역과 시리아 일부로 수백 대의 호출기가 동시에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대다수는 헤즈볼라 조직원이었지만, 어린이 등 민간인 피해도 줄 이었다.
사상 초유 사건의 배후로 이스라엘과 정보특수공작담당기관, 세칭 모사드(Mossad)가 지목됐다. 헤즈볼라 조직원을 동시다발로 테러하기 위하여 무선호출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건 불똥은 대만으로도 튀었다. 헤즈볼라 조직원이 사용한 무선호출기 제조사가 대만 통신기업 골드아폴로(金阿波羅·Gold Apollo)이기 때문이다. 폭발한 무선호출기 잔해에는 대만 업체 골드아폴로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회사가 생산한 무선호출기가 헤즈볼라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누군가 폭발물과 기폭장치를 심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1995년 창립한 골드아폴로의 주력 생산품은 무선호출기(삐삐), 무전기(워키토키)이다. 전성기에는 연간 2000만 대를 수출했으며 미국 법무부 연방수사국(FBI)도 고객이었다.
쉬칭강(許清光) 골드아폴로 창업자는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기기를 제조한 것은 헝가리 업체 BAC 컨설팅(BAC Consulting)이며, 골드아폴로는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자사 상표 사용을 허락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대만 외교부도 9월 18일, 공식 성명을 내고 “해당 무선호출기가 대만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영국 BBC는 BAC 컨설팅 기업 관련 기록을 입수하여 “2022년 설립됐고, 단일 주주가 있다.”고 보도했다. 본사 소재지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14구의 한 건물이다. BBC는 “해당 주소지에 개인 1인, 13개 법인이 등록돼 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은 BAC 주소지에는 회사 이름이 A4용지에 인쇄돼 출입문에 붙어있을 뿐, 아무런 활동의 흔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군 정보장교를 소스로 “BAC가 이스라엘 모사드가 헤즈볼라에 폭탄이 설치된 삐삐를 납품하기 위해 설립한 ‘유령회사’이다.”라고 보도했다.
9월 20일, ‘연합보(聯合報)’, ‘중국시보(中國時報)’ 등 대만 언론에 따르면 타이베이 스린(士林)지방검찰서는 전날 법무부 조사국(MJIB)과 함께 자국 업체 골드아폴로, 헝가리 BAC컨설팅 대만사무소 등 4곳을 압수 수색했다. 법무부 조사국은 미국 법무부 연방수사국(FBI)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특수 경찰이다. 검찰은 압수한 제품 출하 기록, 계약 서류, 수출입 기록 등을 인용하여 “골드아폴로는 BAC컨설팅이 판매한 무선 호출기 한 대당 15달러(약 1만 9000원)의 로열티를 받기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헝가리 정부가 BAC컨설팅의 해당 제품 제조를 부인했기 때문에 골드아폴로와 BAC 컨설팅의 협력관계, 제품 제조, 판매 흐름 파악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도 말했다.
동시에 대만 검찰은 골드아폴로 창립자 쉬칭광 회장, BAC컨설팅 대만사무소 연락 담당자 우(吳)모씨 등 2인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조사 과정에서 쉬칭강 회장은 “상표 사용권을 위임했다”면서 “폭발한 AR924 제품의 해외 생산과 판매 등은 BAC 컨설팅이 맡아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른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대규모 사상자를 발생시킨 무선호출기는 이스라엘이 직접 생산하여 헤즈볼라에 공급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년 전부터 유럽에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를 차려 놓고 기회를 엿보다 제조 단계에서부터 폭발물, 기폭장치가 삽입된 ‘특수제품’ 수천 개를 헤즈볼라에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실제 BAC컨설팅도 “문제의 무선호출기를 자신들이 제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22년 회사를 설립한 크리스티나 바르소니-아르시디아코노( Cristiana Barsony-Arcidiacono)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NBC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골드아폴로와 협력한 건 사실이지만 나는 무선호출기를 만들지 않는다. 나는 중계인(intermediate)일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등 영국 명문대학에서 수학한 학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후변화, 입자물리학, 세계 경제에 대한 광범위한 전문성을 지닌 학자가 레바논에 대만제 무선호출기를 어떻게, 왜 팔게 됐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헝가리 정부의 해명도 대동소이하다. 헝가리 정부는 “BAC 컨설팅은 무역 중개회사일 뿐이지 자국 내 제조시설이 없다. 문제의 기기들이 헝가리에 있었던 적이 없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시대에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되는 무선호출기가 사용된 것은 보안 문제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휴대전화 해킹을 우려한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하여 가자전쟁이 발발한 이후 무선호출기 사용을 더욱 늘렸다.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Hassan Nasrallah)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라.”고 공개 경고했다. 조직 간부급에게는 항시 무선호출기를 몸에 지닐 것을 명령했다고 알려졌다.
헤즈볼라는 올해 여름, 수천 개의 무선호출기를 추가 수입했다. 그중 상당수에 폭발물, 기폭장치가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정부에 따르면 무선호출기 폭발 다음 날인 9월 18일에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 등지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가 연쇄 폭발하며 추가로 20명이 숨지고 450명 이상이 다쳤다. 이스라엘 측이 무선호출기 외의 다른 통신기기에도 비슷한 작전을 벌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건 배후로 지목된 이스라엘 측도 부인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요아브 갈란트(Yoav Gallant)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전쟁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아랍권의 한 관리는 “이미 확전 사다리로 상당히 올라와 있었는데, 이번 이스라엘의 대형 도박에 놀랐다.”고 논평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정보당국자들을 인용하여 “BAC컨설팅은 이스라엘이 위장을 위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며 무선호출기를 만든 건 이스라엘 정보당국이다.”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BAC컨설팅 외에도 최소 2개의 페이퍼 컴퍼니가 추가로 설립됐고 2022년 여름에도 이미 폭발물이 숨겨진 무선호출기가 헤즈볼라 측에 소량 공급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들은 일반인들에게도 무선호출기를 판매했지만 진짜 목표는 헤즈볼라였고, 헤즈볼라 측에는 배터리에 강력한 폭발 물질인 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PETN)를 넣은 제품을 따로 생산해 판매했다.”고 익명의 정보기관 관계자를 인용하여 보도했다. 신문은 이번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전·현직 국방·정보 당국자 12명을 취재한 결과 “이번 폭발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작전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도 했다.
이스라엘 모사드의 전적(前績)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마스, 헤즈볼라 등 무장조직을 상대로 전개하는 이스라엘의 행태가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 선수단 테러 사건 이후 전개한 ‘신의 분노’ 작전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이스라엘의 작전은 “1972년 9월 뮌헨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잡고 테러범 석방을 요구한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에 대한 보복작전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당시 독일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인질이 모두 사망하자 골다 메이어(Golda Meir)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테러에 연관된 인물들을 암살하는 ‘신의 분노’ 작전 시행을 명령했다. 이스라엘 특수작전팀은 6년여에 걸쳐 중동과 유럽 각지에서 20여 명을 모두 추적해 사살했다.
그중 이스라엘이 검은 9월단의 프랑스 총책으로 주목한 마흐무드 함샤리(Mahmud Hamshahri)는 1972년 12월 파리의 아파트에서 살해됐다. 모사드는 마흐무드 함샤리의 자택 전화에 폭발물을 설치했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한 후 무선 기폭 장치를 작동시켰다. 마흐무드 함샤리는 중상을 입었고 병원 치료 중 사망했다.
1996년 이스라엘 보안총국, 신 베트(Shin Bet)는 수십 명의 이스라엘인을 살해한 하마스의 노련한 폭탄 제조업자 야히아 아이야시(Yahya Ayyash) 암살 시에도 통신 장비를 이용했다. 이스라엘은 스파이를 그에게 보내 팔레스타인 협력자인 척 가장한 후 야히아 아이야시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통화를 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 뒤 모토로라 브랜드의 알파 휴대전화를 건넸다. 야히아 아이야시가 거짓말에 속에 전화기를 받아 귀에 대자, 그 안에 설치돼 있던 50g의 폭발물이 터지며 목숨을 잃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두 사건 모두 전직 정보 당국자들 사이에선 통신장비를 이용한 암살의 교과서적인 성공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고 논평했다. 신문은 “전화기는 암살에 앞서 목표물을 모니터링하고 감시하는 등의 몇 가지 중요한 목적으로 이용됐다.”고 설명했다. 감청, 해킹 등을 통해 암살 표적의 신원을 식별하고 확인하기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사건 배후가 모사드가 아닌 제3의 특수기관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9월 18일 서방 보안 소식통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8200부대가 이번 작전 수립 단계부터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1952년 설립된 8200부대는 이스라엘군 내에서 암호 해독, 첩보 신호 수집 등 시긴트(SIGINT·신호 정보) 분야를 담당하는 사이버 첩보부대이다. 수학,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16∼18세 인재들을 영입해 최소 3년간 군 복무를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8200부대가 이번 작전에 1년 넘게 관여했으며, (무선호출기의) 제조 공정 내에 폭발성 물질을 삽입하는 방법을 시험하는 기술 분야에도 참여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스라엘은 대담하고 정교하며 조직적인 공격을 수행할 수 있는 스파이 네트워크를 가진 유일한 국가이다. 헤즈볼라가 이번 공격의 배후를 이스라엘로 지목하고, 전적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한 이유이다.”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