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첫 번째 대선 TV토론에서 낙태, 경제, 이민(국경) 문제에 대한 공방을 벌였다.
미국 유권자들에게 이번 토론은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주자로 나선 두 후보의 견해와 인물 됨됨이를 살필 기회였다. ABC 방송이 주최한 이 토론에서 두 후보는 서로를 헐뜯고 인신공격을 퍼붓는 등 날카로운 대립을 이어갔다.
두 후보는 쟁점 이슈에 관해 선명한 대조를 나타내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상대방을 비판하느라 정책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설명하는 데에는 거의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토론이 끝난 후 회견장에 있던 공화당 측 인사들은 ABC 방송 사회자 데이비드 뮤어와 린지 데이비스가 해리스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편향된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경선에서 나섰던 비벡 라마스와미는 이번 토론을 ‘3대 1의 싸움’으로 묘사했고 마이크 월츠 하원의원은 ABC 측 팩트 체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민주당 인사들은 트럼프가 100분여 진행된 토론 시간 내내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비난하는 한편 해리스를 칭찬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해리스가) 모든 기대치를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바이든=해리스”공세 VS 해리스는 “난 바이든 아냐”
이번 토론을 앞두고 선거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바이든 정부 심판론을 해리스에게 적용하는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트럼프는 토론 막바지에 “해리스가 바이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높은 인플레이션과 화석연료 배척 정책, 국경 정책 등에 해리스도 책임이 있다고 공격했다.
해리스는 바이든 행정부의 긍정적 기록을 내세우면서도 “나는 조 바이든이 아니다”라며 선긋기를 시도했다. 그녀는 “미국을 위한 새로운 리더십”을 제공할 것이라며 해리스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 2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재차 바이든과 해리스를 연결했다. 그는 “세계가 3차 대전에 직면했다”며 “우리 대통령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현 행정부의 부통령으로서 해리스의 역할을 따지는 질문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해리스는 “당신은 조 바이든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나를 상대하는 것”이라며 공격을 피해 갔다.
트럼프는 마무리 발언에서 현 행정부에서 해리스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며, 해리스가 부통령 임기를 거의 다 채웠다는 점을 언급했다. 충분한 시간을 얻었지만 약속했던 변화를 얼마나 이뤘냐는 비판이었다.
그는 “해리스는 3년 반 동안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국경을 고치느라 3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일자리 창출과 우리가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3년 반의 시간이 있었다. 왜 그녀는 그것을 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해리스 “트럼프, 낙태금지법에 서명할 것”…트럼프는 부인
두 사람은 이번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이자 생명 보호 문제로 번지고 있는 낙태권 보장과 관련해 논쟁을 벌였다.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은 법원이 아닌 주 의회 차원에서 다룰 문제라고 판결한 이후, 미국 각 주에서는 투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낙태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있다.
낙태권 보장을 주장하는 해리스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전국적인 낙태 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며 그 근거로 미국 유명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에서 발행한 정책 가이드북인 ‘프로젝트 2025’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이 가이드북은 이른바 ‘트럼프 공약집’이라고 불리지만, 트럼프는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나는 금지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며, 서명할 이유도 없다”며 낙태권 보장 여부는 연방정부가 규정할 일이 아니라 각 주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일축했다.
연방의회 차원에서 낙태 금지법이 추진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냐는 사회자의 질문에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필리버스터 등 제도로 인해 상원 60표가 필요한 상황에서 해당 법안의 상원 통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경제 분야…해리스 ‘기회 경제’ 선전, 트럼프는 관세 부각
이번 대선 최대 이슈인 경제 분야에서는 트럼프가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통한 미국의 수입 증가를 강조한 반면, 해리스는 가정과 중소기업의 비용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설명하는 데 힘을 쏟았다.
해리스는 “젊은 가정이 유아용 침대를 사고, 카시트를 사고, 자녀를 위한 옷을 살 수 있도록” 자녀 세액 공제를 6000달러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중소기업 창업에 대한 5만 달러 세금 공제 제안도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는 관세 증가 공약으로 수십억 달러의 수입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일률적으로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에 한해서는 60~100% 관세를 적용하겠다고도 했다.
관세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촉발될 것이라는 우려에 관해서는 자신이 집권했던 시기를 언급하며 “관세 부과에도 인플레이션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지속된 인플레이션을 “시민과 중산층에 대한 재앙”이라고 했다.
공방 치열했지만 주요 정책에 대한 제시는 실종
이번 토론에서 두 후보 모두 주요 정책에 관한 새로운 내용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경제, 외교, 에너지, 낙태, 이민, 기후 변화, 의료 등의 주제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해리스와 트럼프는 대부분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한 질문에 대해 두 후보 모두 답변을 회피하거나 방향을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리스는 허리케인으로 인한 플로리다의 높은 주택 보험료에 관해 질문을 받자 “기후 변화는 사기”라는 트럼프 발언을 비난했다.
이어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조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트럼프 역시 같은 질문을 받자 대답 대신 다른 바이든 대통령과 현임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오바마케어’로 알려진 의료보험 개혁안을 폐지하고 대안을 내놓겠다는 발언에 관한 질문에는 “우리는 그것을 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진 못했다.
“계획의 개념은 세웠다”고 말한 트럼프는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해낸다면, 더 좋고 더 저렴한 것을 생각해낸다면 그때 변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조셉 로드, 네이선 우스터, 제이컵 버그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