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설’ 중국 전 외교부장, 국영 출판사 직원으로 강등

친강 전 외교부장, 초고속 승진 중 지난해 6월 돌연 사라져
공직 박탈됐지만 당적은 유지…여전히 ‘동지’로 불리기도
사망설, 수감설이 돌던 전직 중국 각료가 국영출판사 직원으로 ‘강등’된 것으로 알려졌다. 친강(秦剛) 전 국무원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다. 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신임하에 외교부장으로, 국무위원(부총리급)으로 고속 승진했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기수가 영락(零落)한 것이다. ‘역대 최단명 외교부장’이라는 오명도 붙었다.
2023년 7월, 실각한 친강 전 중국 외교부장이 외교부 산하 세계지식출판사(世界知識出版社有限公司·World Affairs Press) 직원으로 발령 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9월 8일, “친강은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올해 봄부터 중국 외교부 소속 세계지식출판사의 하위직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익명의 미국 고위 관리 두 사람의 발언을 인용해서 “베이징 중심가에 있는 해당 출판사 직원들은 친강이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이다.”라고 덧붙였다.
중국 베이징(北京)시 둥청(東城)구 간몐후퉁(乾麵胡同) 51호에 자리한 세계지식출판사는 각종 국제정치·외교 서적을 출간한다. 1934년 창간한 잡지 ‘세계지식(世界知識)’을 모체로 하는 출판사는 약 2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중 80%는 편집자이고 약 40인의 전문가를 두고 있다. 편집자·전문가 다수는 각종 외국어 번역 업무를 맡는다. 한국 매체들도 출판사 본사를 방문하여 ‘친강 근무 사실’ 확인을 시도하였으나 출판사 측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초고속 승진, 초고속 낙마를 기록한 친강은 지난해 6월 돌연 세인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이후 부정부패에 연루돼 투옥됐거나 목숨을 끊었다는 각종 루머가 줄 이었다.
1966년 허베이(河北)성 화이라이(懷來) 태생인 친강은 톈진(天津)에서 성장했다. 베이징 국제관계학원 국제정치학과 졸업 후 1992년 국무원 외교부에 몸담았다. 본부 서유럽국과 주영국대사관을 오가며 경력을 쌓았고 2005년 외교부 신문국 부국장 겸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이후 주영국대사관 공사, 본부 신문국 국장 겸 대변인, 의전장을 거쳐 2017년 홍보·의전담당 부장조리(部長助理)를 거쳐 2018년 부(副)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다 2021년 주미국대사를 거쳐 이듬해 12월, 외교부장에 올랐다. 중국 공산당 내에서는 2022년 10월, 당 핵심인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피선됐다.
약 1년 단위로 주미국 대사, 외교부장,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친강은 지난해 6월 25일, 자취를 감췄다. 중국 정부는 7월에는 외교부장직을, 10월에는 국무위원직을 각각 박탈했다. 올해 양회를 앞둔 2월, 톈진시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직도 사직 처분을 받았다.
공직(公職)은 박탈했으나 당직(黨職) 관련 처분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 7월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는 “친강 동지의 사직 신청을 받아들여 중앙위원회 위원 직무를 면직한다.”고 밝혀 당 중추(中樞)인 중앙위원직에서도 제명됐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3중 전회에서 친강을 ‘동지’로 호명했다는 것이다. 중앙위원직은 박탈해도 당원 자격은 유지한다는 의미였다.
한때 숙청설이 돌던 친강이 ‘강등’ 처분에 그치고 중국 공산당 당원 자격도 유지하게 된 배경에는 낙마한 리상푸(李尙福) 전 국방부장과는 다른 배경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부정부패, 기밀 유출 등 법적 처벌을 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친강의 낙마 배경으로는 혼외 관계가 지목된다. 푸샤오톈(傅曉田) 전 홍콩 봉황(鳳凰)TV 앵커와의 불륜이다. 친강은 1983년생으로 조카뻘인 푸샤오톈과 내연 관계를 지속했고, 푸샤오톈은 친강의 아들을 출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샤오톈은 베이징 어언대학(語言大學), 베이징대학을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했다. 영국 유학 시절 주영국 공사는 다름 아닌 친강이었다. 그 시절 인연을 맺은 친강의 주미국대사 시절에도 내연 관계를 지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수장에서 산하 출판사 직원으로 강등된 친강과 유사한 경력을 지닌 전직 외교관도 있다. 선궈팡(沈國放) 전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이다. 베이징외국어대학 졸업 후 직업 외교관이 된 선궈팡은 1984년부터 1993년까지 천지첸(錢其琛) 당시 외교부장의 ‘비서’로 일하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이후 1993~1998년 외교부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선궈팡 대변인은 당시 뛰어난 언변, 재치 있는 논평으로 ‘명대변인’ 평을 받았다. 중국 외교부의 샛별로 꼽히며 주유엔 중국대표부 부대사, 대사를 거쳐 2003년 외교부 부장조리에 올랐다. 그러다 2005년 해임돼 외교부 산하 세계지식출판사 총편집장으로 밀려났다. 당시에도 홍콩 여기자와의 불륜설이 제기됐다.
친강의 공직 경력은 끝났지만, 당적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향후 복권 가능성이 완전히 없진 않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 공산당에서 그를 여전히 ‘동지’라고 부르며 예우한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WP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