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통계국 “고온과 비오는 날씨 때문에 식품가격 오른 것”
이구환신 정책 효과 미확인…전문가 “소비자 신뢰 회복엔 미흡”
중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0.6% 상승하며 7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햇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9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8월 중국 CPI가 전년 동기 대비 0.6% 올랐다고 밝혔다. 이는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경제학자들의 전망치(0.7%)에 0.1%포인트 낮은 수치다.
국가통계국은 기상 악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통계국 수석통계사 둥리쥐안은 “8월 CPI가 높은 것은 고온과 비 오는 날씨 때문”이라고 밝혔다. 수요 회복이 아니라 계절적 요인으로 식품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관영매체에 따르면 중국의 8월 자연재해로 인한 작물 피해 면적은 146만 헥타르(1만4600㎢)에 달한다.
통신은 이번 소식을 전하며 “(중국 경제가) 하반기 부진한 출발을 보였다”며 부동산 침체 장기화, 높은 실업율의 지속, 지방정부 부채 문제, 외국과의 무역 긴장 고조 등으로 경기 부양책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부적으로는 8월 식품 가격은 7월과 같은 수치를 유지하며 전년 동기 대비 2.8% 상승했고, 비식품 가격은 7월의 0.7%에서 0.2%로 완화됐다. 그러나 “디플레이션 우려를 완화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글로벌 신용보험회사 코파스(Coface)의 북아시아 담당 경제학자 탄쥔위는 평가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8월 0.3%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하락하며 3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은 자국 경제를 지탱하던 3대 축 가운데 부동산과 수출이 악화되자 내수를 확대해 난관을 돌파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정책 중 최근 가장 두드러진 것이 ‘이구환신(以舊換新)’이다.
이구환신은 자동차, 가전 등 소비재를 새로 교체하면 지원금을 주는 소비 촉진 정책이다. 제조업 설비와 낡은 농기계, 노후 엘레베이터 등 공업은 물론 농업, 물류, 의료, 관광까지 광범위한 산업 분야를 포함한다. 불 꺼진 수요를 되살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또한 이를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해 최근 ‘초장기 특별국채’를 발행하는 등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이탈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발길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로이터 “이구환신? 소비 자극엔 아직 미흡”
한국 정부는 이를 우리 기업의 중국 시장 확대 기회로 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이달 ‘중국 지역별 소비 촉진 정책 내용 및 우리 기업 영향’ 보고서를 내놓고 이구환신을 ‘적극적 소비 촉진 정책’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이 보고서에서는 자동차, 가전 등 소비재 대부분은 이미 중국산 점유율이 높아 해외 브랜드로 교체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설비 분야 진출 쪽 전망이 유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은 다소 엇갈린 전망을 내놨다. “설비 교체와 소비재 구매(이구환신)를 지원하기 위해 410억 달러(약 55조원)의 초장기 국채를 배정하는 정책은 소비자 신뢰를 자극하는 데 미지근한 효과를 냈다”고 전했다.
이강 전 중국 인민은행 총재(행장) 역시 지난 6일 중국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현재 내수 수요가 취약해 디플레이션 압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당국을 향해 더욱 적극적인 재정·통화 정책을 주문했다.
그간 중국에서는 ‘디플레이션’이라는 용어 자체가 기피 단어 취급을 받았다. 중국의 유명 경제학자가 이를 직접 언급하며 사실상 디플레이션 위기를 시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실제로 이번 국가통계국 발표에서 8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대비 1.8% 하락하여 4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7월의 0.8% 하락보다 심각하고 전문가 예측치인 1.4% 하락보다 낮았다.
코파스의 경제학자 탄쥔위는 “지속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은 과잉생산이라는 더 광범위한 문제로 귀결되는데, 이는 여전히 수요를 앞지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경제학자 가브리엘 응은 “(중국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가 향후 몇 달 동안 국내 수요 증가를 이끌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중국) 정부 정책은 여전히 투자에 너무 치우쳐 있어 재정지출 증가가 궁극적으로 과잉생산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