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이 수포로 돌아갔다.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중동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이 불거지면서 대외 상황의 대비가 중요한 현시점에서 정치권의 신경전으로 인해 국민들의 알 권리가 무산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0일 정치권과 국회 관계자들 발언을 종합하면 당초 이날 국회 외교 분야 대정부질문이 실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AI(인공지능)의 책임 있는 군사적 이용에 관한 고위급회의(REAIM) 참석을,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한·유엔사회원국 국방장관회의 참석을 명분으로 불참을 통보했다.
이에 170석을 앞세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안일한 국회 대응 태도를 질타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국회 무시, 입법권 무시가 도를 넘었다”며 “오늘 예정된 외교·안보·통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야 할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불출석한다고 한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이어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은 헌법에 따라 국회의 요구가 있을 때는 국회에 출석해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질타에 국민의힘은 두 장관의 불참은 양당의 허가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 후 취재진과 만나 “대정부질문 국무위원 출석 여부는 일찍이 본회의를 통해 결정했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는 양당 교섭단체의 승인, 동의를 받아서 불출석하게 된다”며 “국제행사로 불가피하게 참석하기 어렵게 됐다고 알고 있고 양당과 국회의장 허가를 득해서 불참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원내행정국에 따르면, 지난달 말 외교부는 양당에 국무위원 대리출석에 대한 양해를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민주당은 지난 3일 국무위원 대리출석 양해 확인서에 원내대표 직인을 찍어 외교부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외교부 장관의 국회 대정부 질문 불참에 대해 반발하는 민주당의 태도는 ‘묻지 마 반발’이라는 게 여권 측 전언이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선 여야의 정쟁으로 인해 국민들이 알아야 할 대외 현안을 제때 알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만나 “국회 대정부 질문은 정부의 국정을 국회에만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전달하는 자리”라며 “지금 유럽과 중동의 정세가 심상찮은 상황에서 여야의 정쟁으로 인해 대정부 질문조차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