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해리스 ‘미실현 자본소득 과세’ 공약 찬반 논란 가열

2024년 09월 09일 오후 7:53

1억 달러 이상 자산가, 이익 실현하기 전에 최소 25% 실효세율
비판 측 “사적 기업 등 자산가치 평가 어려운 경우 등 적용 복잡”
찬성 측 “재산세 같은 개념”…해리스 캠프 고문 “스타트업에 불리”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의 ‘미실현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공약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말, 해리스 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포괄적 세금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프로그램은 세수 확대 방안을 담은 것으로 248쪽 분량의 ‘2025 회계연도 세입 제안에 관한 설명’에 실렸다. 가장 주목을 받은 대목은 “순자산 1억 달러가 넘는 개인의 실현되지 않은 자본 이득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개인소득세율 상한을 현행 37%에서 39.6%로 상향하고 법인세를 현행 21%에서 28%로 올리며, 국세청(IRS)의 단속 인력 확충을 위해 관련 예산을 대거 증액하는 방안도 담겼다.

그동안 해리스의 경제 공약은 수수께끼였다. 지난 8월 중순 발표된 ‘바가지 요금 금지(Ban Price Gouging)’ 등 가계 비용 절감을 위한 10여 개 방안 외에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리스의 경제 정책이 추가로 공개된 것은 ‘소기업 지원책’이 발표된 4일이다.

이번 ‘미실현 자본소득 과세 공약’ 공개는 유권자와 미국 사회 각계각층이 궁금해했던 해리스식 경제 정책 방향성을 보여준 동시에 월가에 충격을 안긴 사건이 됐다.

해당 정책은 1억 달러 이상 자산가에게 아직 매각하지 않은 투자의 가치 상승분을 국가에 선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기 침체 등으로 가치가 하락해 자산가들이 손실을 입으면, 그만큼 되돌려줘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공약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거액의 자산을 보유하고도 세금을 회피하는 이들에 대한 적절한 규제의 필요성을 알리고 증세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조세 정책을 연구하는 싱크탱크로 워싱턴DC에 위치한 조세 재단(Tax Foundation)의 개럿 왓슨 수석 분석가는 “이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많은 세부 사항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럿 분석가는 “그중에서도 특히 비상장 자산, 즉 사적 기업과 같이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자산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며 국세청의 정확한 세금 계산, 자산 가치 하락에 따라 선납한 세금을 돌려주기까지 발생한 손실에 대한 신용 제공 등 복잡한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다.

2024년 9월 2일(현지시각)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비츠버그에서 열린 유세에 참석해 마주 잡은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Andrew Caballero-Reynolds/AFP via Getty Images/연합

해리스와 지지자 “중소기업, 중산층 미국인 위한 정책”

좌파 성향의 싱크탱크인 조세·경제정책연구소(ITEP)는 미실현 자본소득 과세 공약을 지지하며 “부유한 미국인들에게 제공되는 막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ITEP의 연방정부 정책 연구책임자 스티브 웜호프는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우리의 세법은 대부분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벌어들이는 만큼 세금을 부과하는데, 이는 자본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큰, 극도로 부유한 사람들에게 더 관대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은 소득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납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공약은 소득이 실현되지 않아도 먼저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해리스는 “중산층 미국인을 위한 ‘기회 경제(opportunity economy)’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회 경제는 해리스 부통령이 8월 중순 발표한 첫 경제 공약에 담긴 경제 비전이다. 그녀는 “대통령으로서 중산층의 경제적 안정과 존엄성을 높이는 기회 창출에 집중하겠다”며 자신의 경제 정책을 ‘기회 경제’라는 용어로 불렀다.

해리스 부통령은 4일 발표한 2차 경제 공약에서도 소기업의 창업 세액공제 한도를 현행 5천 달러(약 673만원)에서 10배 많은 5만 달러(약 6730만원)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책을 발표했다.

수혜 대상이 될 스타트업과 소기업에 관한 기준 및 자세한 비용 조달 방안은 없었지만 ‘기회 경제’ 비전을 좀 더 구체화한 것으로 평가됐다. 대기업·부자와 대조적으로 중소기업·중산층을 강조하면서 진보적 색채를 더 뚜렷하게 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앞서 7월 미국의 진보 매체 뉴욕타임스는 당시 베일에 가려져 있던 해리스의 경제 정책이 바이든 행정부 때보다 더 진보적일 수 있다고 추측했었다.

2024년 9월 4일(현지시각)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경합지인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 Kevin Dietsch/Getty Images

트럼프와 비판 측 “대기업 내쫓기, 공격적 증세 신호탄”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9월 4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리스의 공약을 비판하며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평가 회사를 세워라”라며 “엄청난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실현 자본소득 과세’ 공약을 비판하는 이들은 1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지녔더라도 세금을 내기 위한 현금이 부족해 회사나 자산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매우 부유한 사람들과 대형 국제 기업들은 미국에 머물 이유가 없어져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할 것”이라며 이 정책이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정책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강조했지만, 비판 측에서는 이 정책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정부가 향후 더 넓은 계층으로 세금을 확대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자유주의 연구소인 케이토(Cato) 연구소의 세금 정책 연구 책임자인 애덤 미첼은 최근 보고서에서 “해리스의 미실현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 제안은 가장 부유한 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훨씬 더 공격적이고 경제적으로 피해를 주는 세금 인상의 길을 여는 위험한 선례를 만든다”고 기술했다.

또한 “이 세금은 부유층에 대한 공격일 뿐만 아니라 투자, 혁신, 경제 성장에 대한 공격으로, 전체 경제에 걸쳐 느껴질 광범위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도 했다.

민주당 내부서도 “재산세 성격” VS “스타트업에도 불리”

비판 측에서는 “실현되지 않은 소득이 어떻게 소득일 수 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찬성 측에서는 이를 재산세에 비유해 반박한다.

바이든 행정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국장을 지내고 해리스 캠프 경제 고문을 맡고 있는 바라트 라마무르티는 “이런 반응이 약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라마무르티 고문은 지난달 28일 CNBC에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한 세금을 내고 있을 것이다. ‘재산세’라고 한다”며 “주택 가치가 오르면, 주택을 팔지 않더라도 세금이 더 많이 부과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해리스 캠프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온다. 캠프 측 인사인 민주당 로 카나 하원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바이든-해리스와는 의견이 다르다”며 이 정책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스의 ‘기회 경제’ 정책과 상충한다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인 카나 의원은 지난 4일 CNBC에 “이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라며 “회사를 설립하면 서류상으로는 1억 달러 또는 2억 달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거기에 세금을 부과하면 회사 매각을 강요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나 의원은 “기업가들이 회사를 더 큰 기관에 매각하고 가치를 떨어뜨리도록 강요받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하다고 보느냐”며 “스타트업 생태계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작해 해리스로 이어지는 증세 방안의 이면에는 세수 감소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놓여 있다.

조세재단의 왓슨 연구원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017년 도입해 개인과 기업의 세금을 한시적으로 크게 낮춘 ‘세금 감면 및 일자리 창출법(TCJA)’이 내년 만료되면 2026년부터 미국 전체 가구 62%에 세금이 인상된다. 이 법은 소득 하위 50% 이하 계층에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해리스 부통령은 TCJA법에 따른 세금 감면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세금 감면을 유지하면 연방정부 세수가 향후 10년간 4조 달러(약 5400조원) 줄어들게 된다. 해리스, 트럼프 누가 승리하든 세수 감소를 받아들일 것인지 대처 방안을 결정해야 한다고 왓슨 연구원은 지적했다.

* 이 기사는 에멜 아칸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