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3국 스파이 처벌 못 하는 간첩법제 개정해야” 장석광 전 국정원 대공수사처장②

최창근
2024년 09월 13일 오전 11:01 업데이트: 2024년 09월 13일 오전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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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정보원, 국내정보수집·안보수사권 폐지되면서 해외정보 전담 기관화…국내 전담할 정보기관은 없는 셈”
  • “경찰에 수사권·안보수사권 몰려 과부화됐지만 오히려 경찰의 안보수사 역량은 약화돼…결국 대한민국 공안기관 무력화”
  • “공산당 스파이, 20년 30년씩 두더지(이중간첩) 잠복…중국은 외국인 민간인도 ‘간첩죄’로 처벌하는데, 한국은 사실상 북한만 겨냥하고 있어 법체제에 맹점”
  • “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이스라엘 모사드 꼽지만 국내정보 담당하는 ‘신 베트’도 중요…정보기관, ‘합법’ 틀에서만 머물면 국가안보 어떻게 책임지나”

인류 역사가 그러하듯 정보기관 역사에도 영광(榮光)과 오욕(汚辱)이 교차한다. ‘합법적인 일’만을 할 수 없는 정보기관 특성에 기인한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꼽히는 이스라엘 모사드도 용의자 오인 사살로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인류사 성공의 이면에는 스파이, 정보기관의 ‘역할’도 분명 존재하지만 세인들은 그 부정적인 역할만 조명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스파이는 있어도 가장 뛰어난 스파이는 없다. 사람들이 아는 스파이는 잡혔거나 도망친 스파이들이다. 뛰어난 스파이는 결코 잡힌 적이 없어 그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파이 세계에서는 가장 뛰어난 스파이가 아니라 가장 유명한 스파이가 동상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는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가 있다.  28년 국가 정보기관에 몸담아 대공 수사에 앞장섰던 그는 퇴임 후 옛 직장의 명예를 회복하고, 안보기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석광 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처장이다.

장석광 박사는 국가정보원 베테랑 대공수사관 출신이다.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인 1988년 입부하여 28년간 국가 안보 수호 최일선에서 일했다. 미국 연방수사국아카데미(FBI National Academy)에서 연수했고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로 활동했다. 대공부서에 몸담아 대공수사처장을 지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퇴직 후 범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원, 동국대 법무대학원 교수로 연구·강의 활동을 했다.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최덕근 영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대표, 대한민국 구국혼 선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스파이 내전: 서커스 광대 두더지’ ‘국가정보원, 존재의 이유(공저)’가 있다.

지난번 장석광 박사와 한국 국가 정보기관의 ‘어제’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경찰이 안보 수사를 전담하게 되면서 발생한 문제점, 전반적인 국가 안보 역량 약화 현실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보기구 재편 문제도 논의했다.

장석광 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처장.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단행한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 수집권 폐지, 안보수사 기능 경찰 이관 등으로 인하여 경찰에 권한이 집중됐습니다. 문제점도 지적됩니다.

“올해 새삼스레 경찰이 안보수사권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함께 해오던 안보수사를 올해부터 경찰이 단독 전담하게 된 것입니다. 국가정보원의 안보수사권만 폐지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합니다.”

그는 경찰이 전담하게 된 안보수사 현실 문제점 지적을 이어갔다. “국내 정보 수집권 폐지에 이어 안보수사권까지 폐지된 국가정보원은 국내외 통합정보기관이기보다는 해외정보전담기관에 가깝게 된 셈입니다. 방첩, 테러, 국제범죄수사, 마약범죄 수사 등이 국가정보원 업무로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국내 정보수집권, 안보수사권이 없어진 오늘날 국가정보원은 허울만 남은 셈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은 오늘날 국가 차원은 국내 보안 정보기관이 없는 셈입니다.” 그는 이를 미국이 법무무 연방수사국(FBI) 기능을 정지시키고, 영국이 영국 정보청 보안부(MI5)를 폐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경찰에 수사권, 정보수집권에 이어 안보수사 기능마저 집중됐습니다. 거대 경찰 조직에 권한 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외견상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권을 대폭 줄이고, 국가정보원 국내 정보 수집권과 안보수사권을 폐지했으니 얼핏 경찰에 권한이 집중된 듯합니다. 다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먼저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폐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행사함으로써 경찰 수사부서에 과부하가 걸렸습니다. 일선 경찰은 사건 처리에 허덕이면서 수사부서 기피 현상은 심해졌고요. 수사 지연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도 증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안보 수사 영역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의 안보수사권을 폐지하고 경찰이 이를 전담하게 됐으면 안보수사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 보편 상식입니다. 문제는 경찰의 안보수사 역량을 약화했다는 것입니다. 올해 안보수사대에 전입한 팀장급 중간 간부 경찰관 대다수는 국가보안법 수사 경험이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조직 개편으로 경찰 조직 내 베테랑 안보 수사 요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선 경찰서 안보망은 붕괴 수준입니다. 실례로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 중 강남·송파·수서·영등포·용산·종로경찰서에만 ‘안보과’가 존치됐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업무와 통합됐습니다. 경찰 정보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국 259개 일선 경찰서 중 197개 경찰서에서 정보과가 폐지됐습니다. 전반적인 경찰의 정보 기능이 약화했습니다.”

현상이 생긴 원인은 무엇이라 보나요?

장석광 박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저는 현상이 빚어진 것에는 어떤 불순한 의도가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1단계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과 경찰로 편을 가르고 이른바 ‘갈라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2단계 그중 제일 약한 고리인 경찰에 힘을 몰아주는 것입니다. 3단계 토사구팽(兎死狗烹)입니다. 남은 경찰 권한마저 축소하는 것이죠. 오늘날 대한민국 공안기관 전반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한편 반문했다. “대한민국 공안기관이 무력화되면 누가 가장 이득을 보고 누가 가장 피해를 볼 것인가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와 별관. 별관은 국가수사본부가 사용하고 휘하 안보수사국이 안보수사를 전담한다. | 연합뉴스.

안보 수사 체제 문제점은 어떤 것이 더 있을까요?

“2024년 1월부터 국가정보원 안보수사권은 폐지되고, 모든 간첩 사건 수사는 경찰이 전담하게 됐습니다. 2020년 12월 ‘국가정보원법’ 개정 이후 경찰은 3년 유예 기간을 가졌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자립할 수 있는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적합한 표현입니다.”

장석광 박사는 경찰의 현실 문제를 들었다. “경찰은 법적 ‧제도적‧현실적으로 해외 연계 간첩 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정치권은 경찰에게 대공수사를 전담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여건은 마련해 주지 않은 채 수사권만 넘겼기 때문에 빚어진 일입니다.”

그는 경찰이 수사에 필수적인 해외 채증(採證)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짚었다. “경찰 업무 모법(母法)이라 할 수 있는 정부조직법이나 경찰청과 그 소속 기관 직제 그 어디에도 경찰의 해외 정보활동의 법적 근거를 유추할 수 있는 규정은 없습니다. 일례로 2021년 1월, 국가수사본부 출범 시 정비된 경찰 4개 법규 ▲형사소송법(법률) ▲수사준칙(대통령령) ▲경찰수사규칙(행정안전부령) ▲범죄수사규칙(경찰청훈령) 어디에도 경찰의 해외 채증을 합법화하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경찰은 해외 정보활동을 할 수 없고 국가정보원도 해외 채증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해외활동의 법적 근거가 없고 국정원은 수사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속에서 해외 연계 간첩 수사 공백은 필연적이죠. 해외 연계 간첩 수사는 경찰이 해도 불법이고 국가정보원이 해도 불법이 되는 셈입니다. 경찰이 대공(간첩)수사를 전담하여도 국가정보원의 해외서 수집한 정보 자료 증거 능력이라도 인정해 줄 필요성이 있습니다.”

현행 한국 간첩법제는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제3국의 국내 첩보 활동 방지, 처벌에는 취약합니다. 개선책은 무엇인가요?

“현행 한국 간첩법제는 ▲적국을 위하여(형법) ▲적을 위하여(군형법)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때(국가보안법)만 ‘간첩’으로 처벌할 수 있게 규정했습니다. 사실상 북한을 제외한 제3국은 간첩으로 처벌할 수 없는 맹점을 지녔습니다. 다른 나라 간첩법제와 비교하면 상당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고요.”

문제를 진단한 장석광 박사는 외국 사례를 설명했다. “미국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국가 기밀을 탐지·수집하는 행위를 간첩법으로 처벌합니다. 간첩법으로 처벌이 어려운 경우를 대비하여 외국대리인등록법(FARA)까지 두고 있습니다. 국익에 반하는 정보를 탐지·수집하였지만 국가 기밀이 아니어서 간첩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 외국대리인등록법으로 처벌하는 것입니다.”

그는 중국 사례도 시사점이 있다고 했다. “중국도 간첩죄를 외국인에게까지 적용하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안보나 국가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 모두를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에 미국 간첩죄보다 훨씬 엄격합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중국, 한국 간첩법의 처벌 수위를 비교하면 한국이 제일 약하고, 그다음이 미국, 중국의 처벌이 가장 강합니다.”

장석광 박사는 간첩죄 처벌 규정 불균형이 야기하는 다른 문제도 짚었다. “국가 간 간첩죄 처벌 규정이 불균형이 될 경우 처벌 규정이 약한 국가는 외국 간첩 활동의 온상이 될 것이 자명합니다. 정보 침해 가능성도 처벌이 강한 나라보다 훨씬 더 높을 수 있고요. 이는 국제 관계 안정성 측면에서 볼 때도 국가 간 외교 관계를 긴장시키고 국제 협상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간첩죄 처벌이 약한 국가의 경우 내국인에게는 간첩 행위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심어주어 간첩 활동에 대한 죄의식을 줄입니다. 나아가 간첩 활동을 조장할 수도 있고요.” 그는 국가 간 신뢰 문제도 있다고 했다. “간첩죄 처벌이 약한 국가는 동맹국으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합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이 중국의 한국 내 간첩 활동에 우려를 표시할 개연성도 있고 개연성은 나아가 미국과의 신뢰 관계도 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안을 제시해 준다면요.

“현행 형법(제98조)을 개정하여 현행법상의 ‘적국’을 ‘적국’ ‘외국 및 외국인’ 혹은 ‘외국인 단체’로 확대해야 합니다. 이들이 탐지·수집한 정보가 국가기밀이 아닌 경우 개정된 형법(98조)으로도 처벌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하여 한국판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도 필요합니다. 중국은 ‘반간첩법’ 개정 관련하여 ‘모든 국가는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국내법이라도 통과시킬 권리가 있다.’고 항변했죠. 영원한 우방일 듯하던 미국도 자국 내 한국 협조자를 외국대리인등록법으로 기소했습니다.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인 간첩법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근 한국계 외교 전문가 수미 테리 박사가 기소됐다. 비슷한 시기 국군정보사령부는 내부 간첩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국 연방 정부가 한국계 미국 전문가 수미 테리 박사를 기소했습니다. 사건 원인으로 미국 현지 국가정보원 고위 요원들의 처신 문제도 거론됩니다.

“수미 테리 박사를 만났던 주미국 대사관, 주유엔 대표부 소속 국가정보원 요원은 ‘화이트(white)’라 칭하는 공개 요원입니다. 공사, 공사참사관 등 외교관 신분으로 활동했습니다. 화이트는 공개 스파이입니다. 이들의 정보 활동은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를 지니는 특징이 있습니다.”

‘블랙(black)’이라 칭하는 비밀 정보요원과 다른 화이트의 특징을 이야기한 장석광 박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재미(在美) 국가정보원 화이트들은 수미 테리 박사와 접촉을 비밀 공작이 아닌 통상 정보활동으로 간주한 듯합니다. 문제는 이들의 활동이 주재국에서 그대로 용인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정보 활동을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한 듯합니다. 기본 원칙에도 소홀했고요.”

연방수사국아카데미(FBI National Academy)에서 연수했던 장석광 박사는 실제 경험을 들려줬다. “1990년대 후반입니다. 저는 미국 FBI아카데미에서 위탁 교육을 받게 됐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교육생들이 자국 전통 의상, 음식, 춤 등을 소개하는 ‘국제친선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저도 주미국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잡채, 식혜, 홍보 책자를 전시했습니다. FBI는 그날도 워싱턴D.C 소재 한국 대사관에서부터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FBI아카데미까지 저를 돕던 국가정보원 요원 뒤를 따라붙었습니다. 이를 본 당시 대사관에 근무하던 국가정보원 후배가 이랬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거슬렸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합니다.’ 후배 말로는 심포지엄, 컴퍼런스, 의회, 관공서는 물론 파티장, 식당 등에서 열린 공개·비공개 행사를 가리지 않고 국가정보원 요원이 움직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FBI 요원도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손님이 오는 날엔 드러내 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더군요. 그럴 때마다 그 후배는 ‘찍으려면 찍어라. 내가 미국 기밀을 훔치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고도 합니다.”

그는 국가정보원 화이트 요원들이 이른바 ‘모스크바 원칙(The Moscow Rules)’에 소홀해서 벌어진 일이라고도 했다.

한국계 미국 외교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 | 연합뉴스.

모스크바 원칙은 무엇인가요.

“‘모스크바 원칙’은 지난 냉전 시절 목숨을 걸고 모스크바에 부임했던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사이에서 구전(口傳)되던 비전(祕傳)입니다. 원칙 중에는 ‘상대 정보기관을 자극해선 안 된다(Don’t harass the opposition)‘는 항목도 있습니다. 우방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의도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상대국 정보·방첩기관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는 수미 테리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미국 연방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법무부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수차례 사전 경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가정보원 요원에게도 해당 경고가 전해졌을 개연성이 존재하고요. 국가정보원 요원들은 이를 놓친 것입니다. 우방에 대한 지나친 믿음, 비밀 정보활동이 아니라는 과도한 자신감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故)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인 정보기관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정보 세계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다시 한번 새겨 들여야 할 금언이기도 합니다.”

장석광 박사는 ‘모스크바 원칙’은 다음과 같다고 했다.

▲원칙 1 아무것도 가정하지 마라(Assume nothing).
▲원칙 2 직감을 거스르지 마라(Never go against your gut).
▲원칙 3 적은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Everyone is potentially under opposition control).
▲원칙 4 뒤를 돌아보지 마라. 누군가는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Don’t look back; you are never completely alone).
▲원칙 5 흐름에 맞추고 절대 튀지 마라(Go with the flow, blend in).
▲원칙 6 행동 패턴을 다양하게 하고 위장 신분에 걸맞게 행동하라(Vary your pattern and stay within your cover).
▲원칙 7 그들을 안심시켜 자만에 빠지게 만들라(Lull them into a sense of complacency).
▲원칙 8 적을 자극하지 마라(Don’t harass the opposition).
▲원칙 9 시간과 장소는 당신이 선택하라(Pick the time and place for action).
▲원칙 10 옵션을 항상 열어둬라(Keep your options open).

그는 “중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면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CCTV가 7억 대 이상 설치되어 있습니다. 2014년 개정 반간첩법(反間諜法) 시행 이후 17명의 일본인이 중국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지구상 어디에선가 ‘베이징 원칙(The Beijing Rules)’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라며 대 중국 첩보활동은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군정보사령부 해외정보 요원 명단 유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고 예방 방법은 무엇인가요?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니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원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나라 전체, 국민 전체의 보안 의식이 희박해졌고, 국군정보사령부의 기강이 해이해진 것에서 본질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국군정보사령부의 기밀 유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8년에도 국군정보사령부 팀장급 장교가 건당 100만 원에 기밀을 팔아넘긴 사건도 있습니다.”

장석광 박사는 해결책도 제시했다. “예방책이나 재발 방지 대책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측면에서 제시될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예방책은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그동안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북한의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자만심을 낳고 보안 누설로 이어졌습니다. 우선 기밀을 다루는 인원을 중심으로 보안 의식을 제고시킨 다음 국민운동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우리나라는 기밀 누설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약합니다. 실정법상으로는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기밀이 누설된다 하더라도 누설의 상대가 북한이 아닌 한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죠. 이번 기회에 간첩죄에 대해 전반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방부 검찰단에 의하면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는 “중국에 구축된 휴민트를 접촉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연길 공항에서 중국 정보요원에게 체포됐고 조사받는 과정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의 신변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조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A 씨는 귀국 후 바로 당국에 신고를 했어야 합니다. 유사한 경우를 당하고 귀국 후 바로 당국에 자진 신고를 한 과거 사례도 있다. 한국 사례에 대해선 말할 수 없지만, 외국 사례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장석광 박사는 중국 사례를 들었다. “올해 5월 26일 중국 국무원 국가안전부가 위챗 계정에 올린 내용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씨 성을 가진 저명 중국 과학자가 연구 목적으로 외국에 갔다, 공항에 도착해서 출입국 검사를 하는데 외국 정보요원이 과학자에게 접근했다. 정보요원은 중국 과학자가 자국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은밀한 조사 장소로 동행을 강요했다. 정보요원은 과학자의 소지품을 압수했고, 과학자의 연구 활동이 사실은 정보 수집이 목적이며, 자국의 국가안보를 해친다고 비난했다. 과학자는 자신에게 제기된 근거 없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정보요원은 신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종신형등의 위협을 가하면서 내부 연구 정보 제공을 강요했다. 정보요원은 리 씨에게 중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특정 통신 채널을 통해 정보를 계속 요구하면서 이를 거부할 경우 중국의 관련 당국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했다. 리 씨는 귀국 후 당국에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해외에서 겪은 강압과 간첩 활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의도치 않게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데 대해 깊은 후회를 표명했다.

장석광 박사는 해당 사례의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 A 씨, 중국 과학자 리(李) 씨가 정보기관의 함정에 빠지는 과정이 같죠. 스파이 세계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두 사건에서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A 씨는 귀국 후 신고를 하지 않고 적극적 간첩 행위로 나아갔지만, 중국인 리 씨는 귀국 후 바로 신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A 씨는 동료 공작 요원들의 안위까지도 위태롭게 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어떤 말로도 비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야기는 ‘두더지’ 혹은 ‘딥커버’로 불리는 정보기관 내 이중 스파이 문제로 이어졌다. 한국 정보기관에도 예외 없이 이중스파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장석광 박사의 분석이다. 장석광 박사는 스파이 영화 한 편을 들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영화를 세 번은 본 것 같습니다. 볼 때마다 새롭고… 어떤 영감(insight)이랄까, 볼 때마다 이전에 봤을 땐 안 보이던 게 보이더군요. ‘아! 우리나라에도 저런 스파이 영화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직 내 두더지를 추적하면서 추리해 나가는 조지 스마일리가 정말 멋집니다.” 그가 언급한 영화는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이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서커스로 불리는 영국 MI6 수뇌부에서 열린 간부 회의. | 자료사진.

“서커스 꼭대기에 두더지가 있다(There is a mole right at the top of the circus).”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예고편 문구다. 존 르 카레(John le Carré)의 동명(同名)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은 스파이 영화 중 수작(秀作)으로 꼽힌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주 내용은 ‘서커스(Circus)’라 불리는 영국 정보기관 MI6 수뇌부에 침투한 ‘두더지(Mole)’ 색출이다. 두더지는 이중스파이를 뜻하는 은어(隱語)로, 영화에서는 영국 정보기관에 침투한 소련 스파이를 의미한다. 작중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만 분)는 은퇴한 베테랑 요원이다. 컨트롤 MI6 국장 밀명을 받아 기관 내 두더지를 찾기 시작한다. 용의자는 전부 조직 내 고위 간부이다.

개연성 높은 작품은 은유(隱喩)로 가득하다. 작중 MI6 본부는 런던 중심부 ‘케임브리지 서커스(Cambridge Circus)’의 가상 공간에 자리한다. ‘서커스’의 일반적인 의미는 광대, 곡예사, 짐승 등 볼거리를 제공하는 순회 공연 단체이다. 영국에서는 원형 교차로, 우리네 로터리와 같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원작자 존 르 카레는 서커스를 중의(重義)적으로 사용했다. 중세 유럽에서 서커스는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국왕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민심을 조작하는 스파이 노릇도 했다. 해석하자면 영국 수도 런던 도심에 자리한 스파이 본부 정도 의미이다. 케임브리지 서커스는 현존 지명이기도 하다.

‘케임브리지(Cambridge)’는 ‘옥스퍼드(Oxford)’와 더불어 유서 깊은 영국 양대 명문대학이다. 옥스퍼드 서커스가 아닌 케임브리지 서커스라고 이름 지은 이유는 ‘케임브리지 5인조(Cambridge Five)’ 사건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대 동문인 이들은 소련에 포섭되어 제2차 세계대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기밀 정보를 유출한 유명 스파이이다. 1930년대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 소련에 포섭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킴 필비(Kim Philby) ▲앤서니 블런트(Anthony Blunt) ▲가이 버지스(Guy Burgess) ▲도널드 매클린(Donald Maclean) ▲존 케인크로스(John Cairncross) 등 5인이 장본인이다. 그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킴 필비를 모티프로 했다. 작중 ‘테일러’라는 암호명이 붙은 빌 헤이던(콜린 퍼스 분)이다.

킴 필비는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소련에 포섭됐고, 졸업 후  MI6에 입사했다. 이중간첩으로 암약하며 다량의 기밀 문건을 소련에 넘겼다. 아버지의 후광, 명문대 출신 학벌 등에 힘입어 MI6 차기 국장으로 거론될 만큼 요직에 올랐다. 그로 인하여 MI6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훗날 소련에 망명하여 레닌훈장을 수훈했다. 케임브리지 5인방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영국 외교관·첩보요원의 요람으로 불리던 모교는 이중스파이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원작자 존 르 카레는 진짜 스파이였다. 옥스퍼드대 졸업 후 영국 외무부, MI6에서 일했다. 독일 등지에서 ‘비밀요원(black)’으로 암약하던 그의 커리어를 끝낸 장본인은 이중스파이 킴 필비였다. 킴 필비가 소련 KGB에 넘긴 해외 비밀 요원 명단에 존 르 카레도 들어 있었던 것. 스파이로 작가로 이중생활을 하던 그는 퇴사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동서 냉전기 독일을 무대로 이중간첩을 소재로 한 세 번째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존 르 카레는 필명, 본명은 ‘데이비드  콘월(David Cornwell)’이다. ‘007 시리즈’ 원작자 이언 플레밍(Ian Fleming)도 MI6 출신이지만, 007 시리즈가 액션 첩보물에 가깝다면, 존 르 카레의 작품들은 실제 스파이 세계를 제대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석광 박사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언급하며  “‘서커스’ ‘광대’라는 첩보 용어가 주로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서만 사용됐던 것과는 달리 ‘이중스파이’ ‘장기 잠복 공작원’라는 의미의 ‘두더지’는 이미 소련에서 간헐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제프리 베일리의 1960년작 ‘음모자들(The Conspirators)’에 의하면 1932년 소련은 페도센코(Fedossenko)라는 이중스파이에게 ‘두더지’라는 공작 명칭을 부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더지가 정보기관에서 일반적 첩보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이후였죠. 소련 첩보용어가 존 르 카레를 통해 현실 속 대중적 단어가 된 것입니다.”라고 배경 설명을 했다. 장석광 박사의 책 ‘스파이 내전’의 부제도 ‘서커스 광대 두더지’이다.

해외 정보기관에도 ‘두더지’라 불리는 내부 이중간첩이 다수 적발됐습니다. 한국 내 실태는 어떠하다 분석하나요?

“6개의 정찰위성을 운용하는 이스라엘 모사드도 하마스의 기습공격 징후를 탐지하지 못했습니다. 정보 수집은 첨단 장비가 할 수 있지만 정보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해야만 합니다. 모든 정보자산은 결국 사람으로 회귀한다는 의미입니다. ‘휴민트(HUMINT)’, 즉 인간정보가 중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한편 효용성이 가장 뛰어난 정보자산이지만 또 한편에서는 가장 치명적인 정보자산도 역시 휴민트입니다. ‘두더지(mole)’와 ‘딥 커버(deep cover)’로 불리는 정보기관에 침투한 스파이의 존재 때문입니다.”

장석광 박사는 실제 서방 정보기관 내 이중스파이 사례를 들었다. “학생 시절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산주의 조직을 이끌던 킴 필비(Kim Philby)는 훗날 MI6 국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MI6의 동독 스파이 조직 리더 조지 블레이크(George Blake)는 500명 이상 비밀요원의 신원 정보를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 넘겼습니다. 이른바 ‘케임브리지 5인조(Cambridge Five)’의 일원이었죠. 가이 버지스(Guy Burgess), 도널드 매클린(Donald Maclean), 존 케인크로스(John Cairncross)와 더불어서요.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곤욕을 치렀습니다. FBI 방첩 요원으로 25년간 근무 중 22년을 ‘두더지’로 활약했던 로버트 핸슨(Robert Hanssen)이 대표 사례입니다. 그는 소련 KGB를 위해 일했죠. 미국 정보기관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불린 사건입니다. 영화 ‘브리치(Breach)’의 소재로 유명세를 탔고요. CIA 소련 책임자 올드리치 에임스(Aldrich Ames)의 반역 행위로 인하여 소련 내 비밀요원 10여 명이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독일 정보기관 연방정보원(BND) 방첩국 간부, 이스라엘 모사드 해외지국장도 훗날 두더지로 밝혀졌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주상하이(上海) 일본총영사관 직원이 중국 정보기관의 미인계에 걸려 견디다 못해 자살한 사건도 있었고요. 세상에 알려진 두더지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장석광 박사는 실제 경험한 ‘두더지’를 이야기했다. “두더지는 공작 지역에서 안정된 직업을 갖고 수년에서 수십 년간 평범하게 살다 임무가 주어지면 활동합니다. 두더지는 우리 주변에도 있었죠. A 씨는 중학교 2학년 시절 남파된 친척에게 포섭됐습니다. 친척과 함께 밀입북한 A 씨는 ‘철도청에 들어가서 유사시 철도를 마비시키라’는 지령을 받았죠. 남한 귀환 후 그는 OO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철도청을 거쳐 서울지하철공사(현 서울교통공사) 시설 분야 간부로 근무했죠. 그러다 북한에서 내려온 검열 간첩이 체포되면서 A도 검거됐습니다. 그는 39년 동안 잠복한, 필자가 만난 가장 오랜 두더지였습니다.”

장석광 박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스파이 세계’에서 두더지가 적발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닙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저는 ‘60여 년 국가정보원 역사에서 왜 한 명의 두더지도 적발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 후 이스라엘 보복작전 ‘신의 분노’를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뮌헨’의 한 장면. 오른쪽 여성은 당시 총리 골다 메이어이다. 작중 골다 메이어는 테러범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모사드에 지시했다. | 자료사진.

국내 정보기관의 이중스파이가 발각되지 않은 원인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북한이 주적(主敵)이 되기도 하고 협력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특정 정권에서는 간첩 수사를 하다가 국가정보원장이 경질됐는데, 다른 정권에서는 간첩 혐의를 받던 사람이 조직의 수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공수사권 폐지에 앞장섰던 간부는 영전하고 간첩수사를 했던 수사관은 적폐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양지가 내일의 음지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음지가 내일의 양지가 될 수 있는 곳이 국가정보원이라 하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국가정보원 내부에서는 ‘피아(彼我) 식별이 어렵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누가 북한 정보기관의 두더지이고 누가 종북세력의 딥 커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단언컨대 60여 년 역사의 국가정보원에 두더지가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그는 국가정보원 내부 간첩 색출 방법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인 거짓말 탐지기 조사, 휴대전화 포렌식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영화 ‘뮌헨’에서 활약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한 이스라엘 ‘모사드’는 미국 CIA, 영국 MI6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정보기관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도 정보기관 개혁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해외 정보 기관 모범 사례로 이스라엘 모사드를 꼽습니다.

“한국에서 ‘정보기관 개혁’을 주제로 이야기하면 반드시 거론되는 것이 이스라엘 모사드입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망라하고서죠. 좀 거친 표현으로 입 달린 사람치고 모사드를 거론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장석광 박사는 “한국 사회의 모사드 추앙에는 여야 구분도, 전문가 비전문가 차이도 없습니다.”라면서 한국 사회가 알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킴 필비. 이른바 케임브리지 5인조로 불리는 영국 정보기관 내 이중스파이 중 한 사람. MI6 간부로서 한때 국장 후보에 올랐다. 스파이 활동 발각 후 소련으로 망명했다. | 연합뉴스.

한국 사회가 간과한 사실은 무엇인가요?

“‘신 베트(Shin bet)’의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은 해외 정보를 담당하는 모사드와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신 베트가 정보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사드가 세계 최고의 해외정보기관으로 알려져 있듯이 신베트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내보안정보기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찰에서는 불법으로 금지된 것들이 신 베트에서는 관행적으로 합법화된 것들이 많죠. 모사드 배후에는 강력한 신 베트가 있고, 신 베트의 배후에는 세계 최고의 모사드가 있는 것이죠.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내보안정보기관이 없습니다. 존재하던 국내보안정보기관도 없애버린 것이죠.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민, 정치인은 모사드를 추앙합니다.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장석광 박사는 저서 ‘스파이 내전’에서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모사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모사드와 합동회의를 할 때였다. 한 몸처럼 의견을 전개하는 한국 팀에 비해 모사드는 시끄러웠다. 오합지졸이 따로 없어 보였다. 50대 팀장과 30대 팀원들의 의견이 달랐고 선임과 후임이 충돌했다. 과감하다고 봐야 할지 무모하다고 봐야 할지, 자유롭다고 봐야 할지 무례하다고 봐야 할지였다. ‘저러다 괘씸죄라도 걸리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팀은 모두 좌불안석이었지만 모사드는 누구 한 사람, 불편하거나 기분 나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목표의 강점과 약점이 모두 제시됐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도 함께 제기됐다. 예측할 수 있는 모사드의 모든 대응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유교 사회 수직 문화에 익숙해 있던 한국 요원들에게 모사드 팀장의 마무리 멘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홉 명이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아홉 명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열 번째 사람의 의무입니다. 누구의 생각이 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인지, 누구의 계획이 한 명의 유대인이라도 더 살려낼 것인지 그것이 제일 우선입니다.’ 

모사드는 팀원의 역할 분담도 철저했다. 계급이 높다고 선임이라고 형식적으로 이름만 올려놓는 경우는 없었다. 감시 활동을 할 때는 보고서 작성 외에도 운전과 역감시는 언제나 나이 많은 팀장의 몫이었다. 한국의 젊은 정보 요원이 밤늦도록 간식을 만들고 있는 모사드 팀장에게 물었다. ‘이런 일은 젊은 부하들에게 맡겨야지 왜 팀장이 직접 하십니까?’ 팀장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저 젊은 친구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더 중요한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빨리 재워야 합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 밤에 잠이 없습니다. 조금 늦게까지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모사드의 부서장은 반드시 현장 경력이 있어야 했고 인사·예산·조직·감사·감찰·비서 직렬은 승진이 제한되어 있었다. 누가 더 오지에서 근무했느냐? 누가 더 험지에서 근무했느냐? 누가 더 이스라엘의 국익을 확보했느냐? 누가 더 유대인을 많이 살렸느냐? 모사드의 승진 원칙은 현장과 실적에 있었다. 고향이 어디이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는 인사 파일의 제일 마지막에 있었다. 모사드 요원들은 오지와 험지를 자청(自請)했고, 적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사드는 목숨 걸고 활동하는 현장 요원들이 존경받고 승진하는 기관이었다.

‘스파이 내전’에는 다음 구절도 있다. 장석광 박사의 동료가 경험한 모사드 이야기이다.

국가정보원 요원 A가 모사드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됐다. 양고기, 소고기는 물론이고 신선한 채소와 각종 과일에 다양한 와인이 즐비했다. 호텔급으로 성대하게 잘 차려진 식사에 미안한 마음이 든 A가 “나 때문에 이렇게 차렸느냐?”고 물었다. 옆자리 모사드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우린 늘 이렇게 먹는다.”고 답했다. “그럼 밥값이 얼마냐?” “달러로 계산하면 30달러쯤이야!” ‘이 정도 식사에 30달러면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고… 하루 세끼를 여기서 다 먹는다던데, 그러면 밥값만 하루 90달러, 한 달이면 2,700불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A가 다시 모사드 직원에게 물었다. “한 달 월급이 얼마냐?” “월급은 얘기해 줄 수 없다.” “밥값을 이렇게 많이 내려면 월급도 많이 받아야 되겠네!” “그게 무슨 말이냐?” “밥값이 30달러라면서?” “하하하! 일 년에 30달러!” 깜짝 놀란 A는 궁금한 게 하나 더 생겼다. ‘국가정보원이나 국방부가 이러면 한국에선 난리도 아닐 텐데…’

A가 모사드 직원에게 또 물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모사드가 직원들에게 이런 대우를 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나?” “당연히 알고 있다. 이스라엘에도 모사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사드가 국가를 위한다곤 하지만 깡패 같은 짓을 많이 하는 놈’으로 비난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스라엘 국민들은 ‘모사드가 있어 이스라엘이 존재한다.’ ‘나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대접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정보기관 직원 A는 2주간 길지 않은 모사드 출장에서 이렇게 두 번 놀랐다.

장석광 박사는 모사드의 특장점을 들며 “한국 국가정보원이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될 수는 없을 듯하다.”고 했다.

“모사드의 특징은 ▲존재하지 않는 조직, 이스라엘의 ‘딥 스테이트’(Deep State) ▲서방 세계 정보기관 중 두 번째 규모의 조직과 예산 ▲다양한 인종과 수많은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 무한한 잠재적 정보 자산  ▲전 세계 약 3만 5000명의 사야님(Sayanim), 헌신적이고 자발적인 협조망  ▲130여 개국 800여만 명의 유대인, 신뢰할 수 있는 잠재적 협조자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 설명했다. “모사드의 설치 목적, 대상 목표, 역할, 임무, 권한, 예산을 규정한 법률이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인 셈입니다. 이스라엘 총리의 승인만 있으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못 갈 곳도 없고 못할 일도 없죠. 국가의 존립, 생존을 위해서라면 가릴 게 없습니다. 임무 수행 시 합법과 불법, 수단과 방법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책임은 오직 단 한 사람, 총리에게만 집니다. 이를 바탕으로 모사드는 해외 비밀정보 수집, 적대 국가 비재래식 무기 개발‧입수 저지, 해외 거주 이스라엘인 겨냥한 테러 행위 저지, 유대인 귀환 작전, 해외 특수작전(암살) 등을 수행합니다.  이스라엘은 인구, 경제 규모 면에서는 한국의  1/4 혹은 1/5 규모입니다. 모사드에는 한국보다 최소 3배 이상의 역량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미국 CIA에 이어 서방 세계 두 번째 규모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모사드의 역할과 위상을 짐작할 수 있죠.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로 건설됐습니다. 1948년 건국 이후 페르시아계 유태인,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중국계 유대인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속속 들어왔고, 지금도 계속 들어오고 있는 중입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네이티브 스피커들은 모사드의 잠재적 정보 자산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야님, 즉 이스라엘 이외 국가에서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모사드의 유대인 협조망, 법조인, 의사, 교수, 경찰관, 군인,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 연예인, 운동선수, 사업가 등 현지에서 영향력 있는 유대인들로 구성됩니다. ‘점조직’으로 운용되며 모사드 요원들이 요청할 경우 가장 신분, 위조문서, 안전가옥, 숙박, 통신, 차량, 의료, 자금, 물류 등 정보활동에 필요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죠. 경우에 따라 간단한 자료 수집, 미행 감시와 같은 초보적인 정보활동에도 참여하고요. 세계 도처에서 현지 국적을 가진 3만 5000여 명의 사야님이 모사드의 정보 공작활동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 혈통, 전 세계의 광범위한 유대인 사회가 가장 큰 힘이라고 했다. “‘유대인이면 누구든지 유대인 사회에 도움을 청하고 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유대인은 그의 형제들을 지키는 보호자이고 유대인은 모두 한 형제다’ 기원전부터 전해오는 유대인 공동체의 수칙(守則)입니다. 유대인은 가계(家系)에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다면 인종, 국적을 불문하고 유대인으로 간주하여 생면부지 외국인이라도 조건 없이 도와줍니다. 형제애(兄弟愛)로 똘똘 뭉친 유대인이 전 세계 130여 개국에 800여 만 명이 포진해 있습니다. 모사드 요원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당당하고 담대할 수 있는 근본 이유입니다.”

미국 국가 정보기관 휘장들. 가운데 국가정보장실(DNI) 휘장을 중심으로 각종 기구 휘장이 자리한다. | 자료사진.

해외 주요 국가들은 첩보기관과 특수수사기관이 분리되거나, 정보기관과 방첩기관이 분리되어 상호 견제가 가능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 CIA와 FBI, 영국 MI5와 MI6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2018년도 국회 정보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 ‘정보기관 수사권에 대한 연구: 주요국 사례를 통해서 본 국가정보원 안보수사권 필요성을 중심으로’를 먼저 들었다. “해당 보고서에 의하면 확인 가능한 국가 중 국내외 통합 정보기관을 두고 있는 국가는 몽골(GIA), 미얀마(OCMSA), 베트남(MPS), 중국(MMS), 필리핀(NICA) 등 46개국입니다.”

분리형 국가 사례도 들었다. “국내 보안정보기관을 별도로 두고 있는 국가도 있습니다. 노르웨이(PST), 대만(MJIB), 덴마크(PET), 러시아(FSB), 레바논(GS), 말레이시아(SB), 미국(FBI), 벨기에(VSSE), 이스라엘(GSS), 호주(ASIO), 독일(BvF), 루마니아(RIS), 영국(MI5), 인도(IB), 일본(PSIA) 등 35개국입니다.”

그는 해외 동향을 이어 설명했다. “미국은 2004년 12월, 분화된 16개 정보기구들을 통합하는 포괄적 정보공동체 ‘국가정보장실(DNI)’을 창설했습니다. 프랑스는 2008년 7월, 기존 경찰총국의 통합정보부( RG)와 내무부 소속 대테러·정보조직 국토감시국(DST)을 통합한 정보·수사 융합조직으로 국내중앙정보국(DCRI)을 창설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전 세계 정보기관들은 해외 정보와 국내 보안 기능을 통합하려는 추세입니다. 한국의 경우, 현시점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과 국내정보수집 기능을 다시 복원하거나, 경찰이 안보수사 기능과 정보수집 기능을 강화시킬 현실적 여건은 못 된다 봅니다. 국가정보원은 해외정보기관으로 두고 별도 국내보안정보기관을 만드는 것이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석광 박사는 국민들이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안보기관에 대한 애정과 관심, 질책이 필요하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국가 안보는 공기와 같은데 국민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공기가 나빠지거나 없어져야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