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보기관 “시진핑 리더십 약화…중국에 ‘큰 위기’ 오고 있다”

강우찬
2024년 09월 6일 오후 3:01 업데이트: 2024년 09월 6일 오후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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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모습 감춘 3주 동안 신병이상설 등 무성한 루머에도 中 당국은 소극적 검열로 사실상 방관
  • 최근 5대 전구 사령관 중 3명 교체, 국방부 장관은 당 군사위에서 배제…군에 대한 習의 ‘불안 심리’ 노출
  • 대만 국가안전국 소식통 “당장은 리스크 관리 이뤄지고 있지만, 시진핑 권위 예전만 못하다는 신호”

시진핑이 집권 이후 10년에 걸쳐 구축한 1인 독재 체제에 최근 균열이 발생했고 권력 판도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대만 정보기관을 통해 제기됐다.

RFA는 4일 대만 국가안전국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고 시진핑의 지도력이 손상을 입었다”며 “중국에 중대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전했다.

시진핑은 지난 7월(15~18일) 중국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20기 3중전회) 이후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지난달 19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또럼의 베이징 방문 때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사이 중국에서는 고위층 집단 휴가 겸 비공개 모임인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렸지만, 약 일주일의 회의 기간을 고려하더라도 시진핑의 행적은 각종 의혹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중국 소셜미디어 위챗에서는 건강 이상설, 지도부 내분설 등이 빠르게 확산됐다. 시진핑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당 원로들의 질책을 받았으며 사실상 권력을 내려놓고 겉으로만 국가주석, 공산당 총서기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쿠데타설’까지 나돌았다.

중화권 언론이 관심을 가진 것은 루머에 대한 당국의 방관적 태도였다. RFA는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통제하에 놓인 위챗에서 다양한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당국이 소극적 검열로 루머 확산을 일부분 방치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세간에 나도는 자신에 관한 루머에 예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최고 지도자에 대한 부정적 루머를 소셜미디어에 유포하려면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거리낌 없이 루머 유포에 동참하는 일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中 당국, 시진핑 관련 루머 방관…진원은 외부 아닌 중국 내부

신병이상설 등 시진핑에 관한 루머가 터져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등장했던 루머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중국 평론가 왕하오(汪浩)는 말했다.

RFA에 따르면 그는 “과거에 나왔던 루머는 대부분 출처가 해외였다”며 “그런데 이번 루머는 중국에서 흘러나왔다. 이는 10년 만에 처음 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모두 루머에 그쳤다는 게 최종적으로 확인됐지만, 유포 과정에는 중국인들의 여론이 반영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루머는 시진핑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대만 국가안전국 고위 소식통은 중국 당국의 미온적 대처 외에도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포착된 이례적 현상들도 같이 지적했다.

하나는 신임 국방부장(장관) 둥쥔의 불안정한 지위다. 두 달여 실종 끝에 해임된 리상푸 전 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둥쥔 전 인민해방군 해군 사령원(해군 참모총장격)은 공산당 중앙군사위 위원에는 지명되지 않았다. 이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인민해방군은 공산당 휘하 당의 군대로 엄밀히 따지면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공산당 산하 무장 조직이다. 실제로 군 최고 지도부 역시 대통령-국방부가 아니라 국가주석-공산당 중앙군사위다. 국방부 장관도 군사위 위원 4명 중 한 명에 그친다.

공산당 중앙군사위는 1명의 주석(국가주석이 겸직)과 2명의 부주석, 4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중국 국방부 장관은 연합참모부장(합참의장 격), 정치공작부 주임, 기율위원회 서기와 함께 4명의 위원 중 한 명으로 임명될 뿐이다. 중공 군의 정치 조직 성격을 보여준다.

그런데 현재 공식 발표된 중앙 군사위 위원은 3명이다. 국방부 장관인 둥쥔만 빠졌다. 일부 국내 온라인 매체에는 둥쥔까지 포함된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오류다. 중국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도 둥쥔이 빠진 3명만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명시돼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조직도. 하단 위원 명단에 둥쥔(董军)이 빠진 3명만 보인다. | 화면 캡처

반부패로 군 고위층 물갈이한 시진핑, 또 대규모 군 인사

또 하나의 이상한 점은 최근 중공군 5대 전구(중부, 북부, 동부, 남부, 서부) 사령원(사령관) 중 3명이 별다른 설명 없이 교체됐다는 점이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지난 7~8월 남부전구 사령관 왕슈지(王秀吉)와 북부전구 사령관 왕창(王强)이 보직 해임됐다.

공석이 된 남부와 북부전구 사령관에는 각각 우야난(吳念南) 연합참모부 부참모장과 황밍(黃智) 전 중부전구 사령관이 임명됐다. 홍콩 싱타오 일보는 공석이 된 중부전구 사령관에 북부전구에서 물러난 왕창이 임명됐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공식 확인되진 않았다.

이번 군 인사는 1973년 8개 전구 사령관 교체 이후 최대 규모다. 1973년 당시 대대적인 사령관 교체는 군벌 고착화로 인한 중앙의 권력 약화를 우려한 마오쩌둥의 정치적 술책이었다. 이번 대규모 군 인사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로켓군 사령관과 정치위원 등 지도부 15명을 숙청하는 대규모 군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로켓군은 2016년 시진핑이 직접 창설한 부대다. 약 8년에 걸친 ‘군 현대화 개혁’의 핵심이다. 그러한 로켓군에 대한 사령부 숙청은 시진핑 스스로 군 개혁의 실패를 시인하는 굴욕적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단행한 것은 그만큼 군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는 의미다.

군에 대한 시진핑의 불안 심리를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중국 공산당의 중앙급(국가급) 언론으로 분류되는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의 지난 7월 9일 자 평론이다. 지면 4면 상단에 실린 이 평론에서는 “집단지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이 덩샤오핑의 집단지도 체제를 허물고 마오쩌둥 시절의 1인 독재를 강화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집단지도’를 강조한 인민해방군 기관지 논평은 시진핑에 대한 항명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해방군보 고위 관계자 누구도 이번 논평으로 처벌받지 않았고 논평은 삭제 없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걸려 있다.

대만 국가안보 고위 소식통은 이러한 세 가지 특이점을 언급하면서, 군의 동요와 충성심 약화를 감지한 시진핑의 불안감이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이 집권 이후 반부패 명목으로 고위 장성을 지속적으로 숙청해왔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을 때는 반발을 억누를 수 있었지만, 침체된 경제를 되살릴 능력이 없다는 게 드러난 현재로서는 공산당 고위층 내분과 군의 동요가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대만 국가안보 분야 고위 소식통은 ‘큰 위기’가 구체적으로는 지방 재정의 악화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방정부 재정난은) 교통, 의료 등 국민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기본 서비스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중국의 군비 지출에도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누적된 군부의 불만에 급여마저 제때 지급되지 않거나 삭감되면 불이 붙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앙정부 공무원과 군인 급여 중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은 약 40%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정부가 이미 이 금액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위기가 급작스러운 사태를 촉발할 것인가에 관해서 대만 국가안보 분야 소식통은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아직까지는 시진핑 정권의 리스크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소식통은 “불안 요소가 늘어나고 있지만 (정권이) 붕괴될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관영매체와 일반 매체 사이의 의견 대립, 최근 시범 도입된 주택연금(房屋养老) 제도를 둘러싼 비난 여론의 확산, 공무원을 주된 대상으로 삼은 당국의 카드놀이 ‘계란 깨기(摜蛋·관단)’ 단속 등 시진핑의 권위가 예전만 못한 점은 분명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