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떠난 베테랑 英 언론인, “중국은 거만하고 편집증 빠져” 비판

2024년 09월 05일 오후 5:37

중국의 개정 ‘반(反)간첩법’은 중국의 대외 교류, 중국 체류 외국인의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파는 중국 소식을 외부로 전하는 창(窓)인 언론인에게도 파급됐다. 반간첩법 시행으로 중국 내 정보 수집과 외부 전파가 엄격해지면서 중국 주재 외신 기자들이 하나둘 탈(脫)중국을 하고 있다. 이 속에서 지중파(知中派) 저널리스트로 알려진 유명 잡지사 베이징지국장의 ‘고별 칼럼’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월 말, 베이징을 떠나 귀임한 영국 ‘이코노미스트’ 베이징지국장 데이비드 레니(David Rennie)는 ‘거만하고 편집증에 빠진 중국 신시대(China’s new age of swagger and paranoia)’ 제하 칼럼에서 6년 반 중국 근무를 소회했다. 칼럼 관련 삽화에서는 마오쩌둥 동상을 뒤로한, 배낭을 멘 한 남자가 우울한 표정으로 서 있다.

데이비드 레니는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6년의 세월, 220개 차관(茶館) 칼럼을 뒤로하고 이제는 베이징을 떠날 때가 됐다.” “모험이자 특권이었다.”며 고별 인사를 전했다.

자신을 3인칭화한 칼럼에서 데이비드 레이니는 “지난 6년 반 동안 중국의 허세가 세계를 갈라 놓는 것을 보았다.” “시진핑은 행동, 말로서 21세기 중반까지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저지하거나 저항하지 못할 만큼 강력해지려는 야망을 드러냈다.”고 했다. 그는 “시진핑은 이러한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국제 규범·규칙에 도전하고 이를 재정의하거나 불신을 드러내어 세계 질서를 내부에서 재편하고자 했다.”고도 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과 시진핑의 대응도 언급했다. “미국 지도자들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기술·경제·지정학 부문에서 중국의 발전을 늦추거나 막으려 하는 것을 시진핑은 용납할 수 없었다.” 데이비드 레이니는 칼럼에서 “한 중국 학자는 미국은 무해한 소비재를 생산하는 ‘뚱뚱한 고양이’가 되라고 중국에 요구하지만 호랑이처럼 강해지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미국과 중국은 양립할 수 없는 야심을 가진 양대 강국이라는 것이 데이비드 레이니의 분석이다.

그는 “중국 내 취재 보도는 ‘충격적일 만큼 외로운 일(a shockingly lonely business)’이었다.”고 했다. “특히 미국 언론 기자들은 괴롭힘 끝에 추방되거나 취재 현장에서 밀려났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지난 트럼프 행정부가 다수 중국 기자들을 추방해 빌미를 제공했지만 그럼에도 ‘뉴욕타임스(NYT)’ 주재 기자가 10명에서 2명,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명에서 3명, ‘워싱턴포스트(WP)’는 2명에서 0명으로 줄어든 것은 큰 변화이다.”라고 짚었다.

중국 공산당 체제에 대해서는 “중국 공산당은 이른바 중국식 현대화를 이룬 ‘성과의 정통성’을 주장하지만 경제가 둔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 모델에 의문을 제기하면 반역자로 간주하고 모든 외국의 감시는 일종의 공격으로 간주한다.”고도 비판했다.

데이비드 레니는 자신의 이름과 유사한 발음의 ‘런다웨이(任大偉)’라는 중국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 대한 애정의 방증(傍證)이다. 1971년 영국 태생으로 아버지 존 레니(Sir John Rennie) 경은 ‘MI6’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영국 비밀정보국 국장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졸업 후 ‘이브닝 스탠다드(Evening Standard)’에서 기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로 이직하고 호주 시드니를 거쳐 1998~2002년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2007년 ‘이코노미스트’에 합류하여 벨기에 브뤼셀, 영국 런던, 미국 워싱턴D.C에서 근무했고, 2018년 베이징 지국장으로 부임했다. 처음 베이징 근무 시절 장쩌민 체제하 중국 사회를 분석하여 명성을 얻었다.

‘이코노미스트’ 베이징 지국장 부임 후에는 ‘차관(茶館) 칼럼’을 연재하며 중국의 음영을 조망했다. 중국 취재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아시아 관련 보도 최고의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오스본 엘리엇상을 수상했다.

데이비드 레니가 고별 칼럼에서 지적한 대로 중국에서 서방권 언론인 이탈이 가속되고 있다. 한국 언론사 사정도 다르지 않다. 베이징 특파원 수는 2년 새 40여 명에서 30여 명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급변한 취재 환경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4월 중국외신기자클럽이 기자 1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응답자 71%가 “자신의 휴대전화가 중국 당국의 해킹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81%는 “취재 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간섭과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2023년 미국 AP통신은 “중국은 세계 최대의 언론인들의 감옥”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경없는기자회(RSF)의 ‘2024 세계 언론 자유 지수(World Press Freedom Index)’ 보고에서 중국은 조사대상국 180개 국 중 172위를 기록했다.

1843년 창간한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최고 주간지로 꼽힌다. 취재, 분석, 해설, 예측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 빌 게이츠가 “매주 한 쪽도 빠짐없이(from cover to cover every week) 읽는다.”고 밝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세계 각국 정상, 유력 인사가 애독하는 잡지로 알려졌다. 영미권 식자층에서는 ‘이코노미스트’를 읽고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를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의 척도로 삼을 정도이다. 이러한 잡지의 베테랑 중국 취재 기자가 중국을 떠나며 남긴 칼럼은 시진핑 체제하 중국의 밝지 않을 미래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IMF체제 1년 전인 1996년 “한국 재벌 기업에 문제가 있다”고 경고하며 한국의 경제 대란을 예측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