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북한을 가장 잘 이해하는 나라는 한국이다. 이를 양안(兩岸) 관계에 대입하면 중국을 가장 잘 아는 나라는 평균 폭 180km의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인 대만이다.
지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과 ‘전략경쟁’이라는 미명하에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미국은 대만 출신 인사를 중국 인민해방군에 맞서는 핵심 요직에 기용했다. 미국 국방부에서 ‘신속 국방 실험 예비군(Rapid Defense Experimentation Reserve·RDER)’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하이디 슈[Heidi Shyu, 본명 쉬뤄빙(徐若冰)]가 그 주인공이다. 신속 국방 실험 예비군 프로젝트는 전투 지휘관에게 유망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속도를 내고 합동 작전 능력의 격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9월 4일,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만 출신 과학자 하이디 슈 국방부 연구·기술 담당 차관(Under Secretary of Defense for Research and Engineering)을 집중 조명했다. 신문은 “신속 국방 실험 예비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그는 미군 혁신을 이끄는 ‘기술 두뇌'(tech brain)’이다.”라고 평가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하이디 슈 차관은 기술 우위 선점 경쟁 분야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가장 강력한 적수 중 한 명이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군 기술 혁신의 리더였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신속 국방 예비군 실험은 미중 기술 경쟁에서 중요할 수 있는 개발 기술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미군의 가장 비밀스럽고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라며 “국방부 차관 취임 후 은인자중하던 하이디 슈 차관이 한 달 전 공개적으로 신속 국방 예비군 실험을 소개하는 인터뷰를 한 후 매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엔지니어 출신 고위 국방 관료로서 그는 미국 행정부 정책을 적극 대변하기도 한다. 미국 상원 세입세출위원회가 “신속 국방 예비군 실험은 관료주의적이고 중복적인 발상이다.”라고 지적하자 하이디 슈 차관은 미국 국방 전문 매체 ‘브레이킹 디펜스(Breaking Defense)’ 회견에서 “신속 국방 예비군 실험은 미개척 신기술 분야에서 미중 양국 간 격차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고 항변했다.
하이디 슈 차관은 외부에 적극적으로 신속 국방 예비군 실험 프로젝트를 홍보하기도 했다. 지난달 개최된 신흥기술 관련 컨퍼런스에서 그는 국방 예비군 실험 프로젝트 프로그램이 지원했던 일부 프로젝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고도 정찰·통신 풍선 ▲해군용 태양열 구동 초고도·초장기 무인기(드론) ▲하나의 운용 시스템에 여러 센서를 통합하는 해병대 프로젝트 등을 망라한다. 지난해 방위산업 컨퍼런스에서는 “중국을 억제하고 인민해방군에 대항하기 위한 중요 기술에 초집중하는 것이 자신의 업무이다.”라고 스스로 역할을 소개했다. “미국이 기술에서 압도적인 우위로 중국의 대량 생산, ‘규모의 산업 역량’을 상쇄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하이디 슈 차관의 원향(原鄕)은 중국 저장(浙江)성이다. 할아버지 쉬캉량(徐康良)은 국민혁명군 공군 장교로서 중일전쟁(1937~1945) 시기 전투기 조종사로 맹활약했다. 종전 후 중화민국 공군 부사령관(공군 중장, 참모차장에 해당)을 지냈다. 저장성 항저우가 고향인 하이디 슈의 아버지 쉬나이리(徐乃力)는 저명 역사학자이다. 일가족은 1949년 국부천대(國府遷臺) 시 대만으로 이주했다.
국부천대 4년 후인 1953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하이디 슈는 11세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다시 캐나다로 거처를 옮겨 캐나다 뉴브런즈윅대(University of New Brunswick)에서 수학 전공으로 이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토론토대(University of Toronto)에서 이학 석사(수학 전공)를, 다시 미국 UCLA에서 전자공학 전공으로 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캐나다 뉴브런즈윅대 중국 근·현대사 담당 교수였던 하이디 슈의 아버지 쉬나이리 박사는 중국 본토에서 연구하고 학문적 교류를 진행한 자신의 이력이 딸이 미국 행정부 고위직에 오르는 데 걸림돌이 될까 염려하여 1980년대부터 2012년까지 연락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하이디 슈는 방위산업체 휴즈항공(Hughes Aircraft Company)에서 직장 경력을 시작했다. 그루먼(Grumman)사, 리턴 인더스트리 (Litton Industries)로 이직하여 엔지니어로 일했다. 이후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Raytheon Technologies)에서 핵심 경력을 쌓았다. 미국 해군·공군·해병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차세대 ‘합동 공격 전투기(JSF)’ 사업을 관장한 것이다. 레이시온 테크놀로지 통합 레이더·전자전 센서 부문 이사, JSF 담당 선임 이사 등을 거쳐 레이시온 테크놀로지 우주·항공 시스템 부문 기술·전략 담당 부사장을 역임했다. JSF 사업은 오늘날 미국 해군·공군·해병대 핵심 전투기 F-35로 결실을 맺었다.
엔지니어로서 미국 차세대 전투기 개발의 핵심 역할을 한 하이디 슈는 2000~2010년 미국 공군 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2003~2005년 부위원장, 2005~2008년 위원장을 맡았다.
‘민간’ 전문가 하이디 슈가 본격적인 공직에 입문한 것은 지난 버락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국방부 육군 조달·물류·기술 담당 차관보에 지명했다. 상원 인준 절차를 거쳐 공식 임명 후 2016년까지 봉직했다. 그러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인 2021년 하이디 슈는 국방부 연구·기술 담당 차관으로 임명되어 현재에 이른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봉직한 미셸 플러노이(Michèle Flournoy) 정책 담당 차관에 이은 역대 두 번째 여성 국방부 차관이다.
현재 미국 국방부 내에서 장관, 부(副)장관에 이은 3번째 고위직인 하이디 슈는 국방부 ‘최고기술책임자(CTO)’로서 고등연구계획국, 미사일방어국, 우주개발국, 방위과학혁신위원회 등 핵심 부서를 관장한다. 연방정부 단위 별도 과학기술 담당 부처가 없는 미국에서 하이디 슈 차관은 민관 과학기술 혁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23년 방한하여 한국 국방부 차관, 방위사업청 청장,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 등을 면담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