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 관영매체 “시진핑은 덩샤오핑급 개혁가” 칭송 논평 게재 이틀 만에 삭제
- 삭제 이유 두고 추측 분분…“혁명원로 2세들 거센 반발 끝에 기사 내려져”
- 공산당 원로 세력과 시진핑 간 갈등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
지난 7월 중화권에서는 ‘시진핑은 개혁가’라고 칭송한 중국 관영언론 기사가 갑자기 삭제된 일이 화제가 됐었다. 최근 그 이유에 관한 내용이 흘러나오며 중국 공산당 내부의 심각한 갈등을 드러냈다.
이 논평은 관영 신화통신이 3중전회 개막일 7월 15일에 맞춰 게재했다. 정확한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대만 매체들에 따르면 늦어도 17일에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 그대로 옮겨 실었던 중국 매체들의 기사도 지금은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신화통신은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사실상 공산당 기관지다. 중요 기사들은 모두 선전부 검토를 거친다.
특히 이 논평 ‘개혁가 시진핑’은 1만 자가 넘는 장문의 분량을 통해 시진핑을 1978년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위인으로 추켜세웠다. 시진핑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계승해 중국이 경제적 기적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관영매체가 시진핑을 덩샤오핑과 나란히 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개혁가’라는 칭호를 붙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산당 내부 규정상 이처럼 정치적 의미가 큰 기사는 글자 하나하나 선전부 확인을 받고 실린다. 그런데 3중전회 개막 당일 시진핑의 개혁가 이미지를 띄우기 위해 철저한 준비 끝에 나간 기사가 채 이틀도 안 돼 내려진 것이다. 중화권에서 갖가지 추측이 무성했던 이유다.
대만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로 중국 공산당 분석에 정통한 밍쥐정(明居正) 교수는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라며 “신화통신이 뭔가를 내놨는데, 중앙인터넷안전정보화위원회 판공실에서 그것을 제거했다.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대만 국책연구원 좌담회에서 말했다.
“혁명원로 2세들 ‘개혁가 시진핑’에 강력 반발” 日 닛케이
닛케이 아시아는 지난달 29일 중국 특파원 출신의 선임기자 카츠지 나카자와 전 중국 지국장이 쓴 분석 기사를 통해 ‘개혁가 시진핑’ 삭제 사건과 관련 “혁명 원로 2세들이 ‘당 역사 다시 쓰기’를 한 신화통신 논평을 삭제하도록 압박했다”며 이를 ‘여름 반란(summer rebellion)’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중국 공산당 당내 기성세력이 시진핑이 아니라 덩샤오핑에 충성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중국 공산당 내부가 외부에서 여기는 것처럼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했다. 시진핑은 3중전회를 통해 권위를 강화하려 했지만 기득권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 논평(개혁가 시진핑)은 시진핑 진영에 속하지 않은 정치 세력의 즉각적인 반발을 일으켰다. 당 곳곳에서 ‘이 논평이 이상하고 사실과 다르다’, ‘공식적인 당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출판을 승인한 게 누구냐는 질문이 나온다”고 기사는 전했다.
시진핑을 띄우려던 신화통신 논평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의도적으로 폄하했고 ‘개혁·개방’과 ‘개혁’을 동일시함으로써 혼란을 줬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진핑은 개혁을 외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개방을 후퇴하는 폐쇄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즉 시진핑을 덩샤오핑 반열에 올리면서도 덩샤오핑의 일부 업적은 일부러 외면함으로써, 시진핑의 정치적 실패를 감추려 했다는 것이다.
아예 중국의 개혁을 이끈 것이 덩샤오핑이 아니라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을 비롯한 시진핑 가문 사람들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어 특히 공산당 혁명 원로 2세들의 강력한 반감을 샀다고도 했다.
결국 격렬한 반발로 인해 시진핑이 관련 부서에 해당 기사를 내리도록 지시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공산당 선전 부서, 고위층 갈등 속 갈팡질팡” 평론가
중국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해외 독립 평론가 차이선쿤은 중국 공산당 선전기관과 산하 매체들이 상부의 오락가락하는 지침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차이선쿤은 지난 3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에서 시진핑의 비서실장인 차이치(蔡奇) 중국 중앙서기처 제1서기(서기장)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
이 글에서는 “베이징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념(선전)을 담당하는 차이치가 시진핑에 관해 어떻게 선전할 것인지 매일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야 한다”며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와 인민일보, CCTV는 어느 것을 보도할 수 있고 없는지 모른다”고 밝혔다.
또한 “(인민일보 등은) 차이치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야만 보도할 수 있기 때문에 뉴스가 늦어지거나 잘못 전달된다”며 “언론계 고위 인사들은 선전 업무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선전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며 차이치에 대한 불만을 사적인 자리에서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문제 전문가인 왕허는 “당과 정부의 선전 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선전부의 리슈레이 부장(장관)과 시진핑의 측근으로서 중앙선전부를 감독하는 차이치 서기장 사이에 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개혁가 시진핑’ 삭제 사건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7월 대만의 매체 ‘스톰’은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해 “‘개혁가 시진핑’ 논평은 리슈레이 중앙선전부 부장의 요청으로 삭제됐다”며 이 논평은 시진핑을 너무 추켜세워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