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탄생 120주년…中 공산당 ‘종신집권 제한’ 업적은 함구

시진핑 6천자 분량 연설 발표…10년 전 두 배 분량
개혁개방 칭송하며 최고 지도자의 ‘주도적 역할’ 강조
중국 공산당이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 가운데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덩샤오핑의 양대 유산 중 ‘개혁개방’만 강조하고 집단지도체제 구축을 슬그머니 빼놓은 것을 두고 덩샤오핑 기념이라는 원 취지보다는 시진핑 1인 독재 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목적이 큰 것으로 풀이됐다.
10년 전 110주년 때와의 차이점을 비교 분석해, 현재 중국 공산당 내부 투쟁이 실제로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22일 신화통신 등 공산당 관영매체에 따르면 이날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그의 업적과 유산을 되돌아보는 장문의 연설문을 발표했다.
시진핑은 연설에서 “덩샤오핑 동지는 전당, 전군, 전국 모든 민족과 인민의 인정을 받는 뛰어난 지도자이자 위대한 마르크스 주의자,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자 정치가 겸 전략가, 외교가, 확고한 공산주의자”라고 운을 뗐다.
이어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당 중앙 지도부의 2세대 핵심 지도자로 복귀해 ‘사상해방, ‘실사구시’의 노선을 확립했으며 사회주의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의 현대화를 이끌었다고 덩샤오핑의 삶을 추켜세웠다.
시진핑, ‘집단지도체제 확립’ 쏙 빼놓고 덩샤오핑 업적 칭송
시진핑은 장쩌민(3세대), 후진타오(4세대)에 이어 중국의 5세대 지도자로 분류된다. 당초 10년 임기(1회 연임)를 마친 지난 2022년 물러나야 했지만 2018년 개헌으로 국가주석직 임기 제한을 폐지했고 현재 3연임 중이다.
권력자의 종신 집권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 덩샤오핑의 또 다른 업적 중 하나다. 절대 권력의 폐해를 몸소 겪었던 덩샤오핑은 자신이 최고 지도자로 군림햇던 1982년 개헌을 통해 국가주석을 1기와 2기 각 5년씩 10년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번에 발표한 장문의 연설 중 덩샤오핑의 삶을 조망하면서도 국가주석 임기 제한과 집단지도체제 확립은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만의 시사평론가 다이리원(戴立文)은 대만국제방송(RFI) 기고문에서 시진핑이 덩샤오핑의 삶을 평가하면서도 최대 업적인 종신 집권 폐지 등은 회피하며 공산당의 잔인한 내부 권력 암투 역사를 미화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평론가 중위안(鍾原)은 에포크타임스 중문판 기고문에서 올해 시진핑의 연설이 10년 전과 비교해 분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에 주목했다.
중위안은 “10년 전인 덩샤오핑 110주년 때는 연설문이 3천 자가 조금 넘었는데 이번에는 6천 자로 두 배 분량”이라며 “그만큼 할 말이 많아질 정도로 요즘 상황이 복잡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진핑은 올해 덩샤오핑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최대 업적인 집단지도체제를 완전히 배제했다”며 “10년 전 연설에서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가능한 것은 집단으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신화통신에 전문 공개된 시진핑의 연설을 살펴보면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의 선구자적 면모와 지도력이 강조되며, 지도부와의 협력과 논의 등은 나타나지 않는다. 즉 거대한 업적의 핵심은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이라는 뉘앙스다.
덩샤오핑이 자신을 2세대 집단지도체제의 핵심으로 여긴 것은 사실이다. 그는 최고 지도자로 재직하던 당시 공산당 총서기나 국가주석도 아니었다. 직능 단체들의 회의 기구인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을 역임했다.
그 대신 덩샤오핑은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앙 자문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며 주요한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중위안은 “현재 중국에서 최고 권력자에 관한 루머는 늘 있었지만 최근에는 경제 침체와 맞물려 시진핑의 건강 이상설 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며 “그만큼 권위가 흔들린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시진핑이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한 상황에서 덩샤오핑 시절의 집단지도체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다. 시진핑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권위가 약화되는데 이는 공산당 전체로 보면 오히려 정권의 장악력이 약해지는 모순적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