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고급 음식점 줄폐업…미슐랭 3스타도 ‘거지 세트’ 개시

2024년 08월 20일 오전 11:33

중국 경제 침체로 소비 부진이 심각해지면서, 상하이의 고급 음식점들이 잇따라 문을 닫는 등 요식업계 타격이 가시화하고 있다.

최근 상하이 번화가인 난징루 와이탄에 위치한 프랑스 음식점인 라뜰리에(L’Atelier) 조엘 로부숑이 갑자기 영업을 중단해 업계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영업 중인 유명 음식점들도 매출 급감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 요식업계 트렌드인 ‘거지 세트(穷鬼套餐·치옹구이 타오찬)’를 내놓고 문턱을 낮추는 등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라뜰리에는 현재 백화점으로 사용되는 ‘와이탄 18호’ 건물에 입점하고 있다. 서양식 건물이 늘어선 와이탄 거리는 1호, 2호 등 호수로 건물을 구분한다. 18호는 라뜰리에와 함께 뉴욕·LA에도 분점을 낸 오마카세 스시점 ‘긴자 오노데라’, 미슐랭이 사랑하는 중식점으로 이름난 ‘하카산’ 등이 들어서 있어 상하이 고급 레스토랑 성지로 불린다.

중국에서 고급 레스토랑은 일반적으로 1인당 지출액이 최소 500위안(9만3천원)부터 시작해 수천 위안(수십만원)에 달하는 곳을 가리킨다. 서양식, 프랑스식, 일식 오마카세 등이 다수를 차지하며 그중에서도 라뜰리에는 1인당 지출액이 1580위안(약 30만원)에 달하는 상하이의 대표적 음식점으로 꼽혀왔다.

지난 19일 오전 중국 최대 음식배달업체 ‘메이퇀’ 모바일 앱에서 라뜰리에 18은 영업 종료 중이라고 표시된다. 현지 매체는 직원의 말을 인용해 “업주가 갑작스럽게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임금이 밀렸고 퇴직금도 지급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라뜰리에는 수개월 동안 직원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사회보장금도 납입하지 못했으며 협력업체에도 정산하지 못한 비용이 밀려 있다.

업체 측은 폐업이 아니라 영업 중단이라며 상황이 나아지면 영업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일정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상하이 고급 음식점, 내수 부진에 된서리

올해 상하이의 유명 고급 음식점 중 상당수가 운영난에 빠졌다. 서난징루의 KOR 상하이, 패션가인 쥐루루(巨鹿路)의 위즈란(玉芝蘭), 굴 해산물 음식점 오스테리아, 스촨요리 전문점인 밍루촨(明路川) 등이 폐업했다.

중국 요식업계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훙찬다수쥐(紅餐大數據)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상하이의 1인당 단가가 500위안 이상인 음식점은 전체 음식점 매장 수의 1.35%인 약 2700개를 차지했으나, 2023년 가을부터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올해 7월 기준 영업 중인 업체 수는 1400개로 약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메종 라멜루아즈(Maison Lameloise)는 정식 가격을 낮추고 200위안(3만7천원) 받던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올해 미슐랭 가이드 1스타를 받은 유럽풍 레스토랑으로 1인당 평균 가격이 4400위안(약 82만원)인 EHB는 요리 구성을 일부만 변경하면서 정식세트 가격을 약 1/3로 낮췄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으로 저장성 타이저우(台州) 음식 전문점인 신룽지(新榮記)는 최근 아예 398위안(약 7만4천원)짜리 ‘ 거지 세트’를 출시했다. 상대적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들까지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상하이 고급 음식점에 부는 찬바람은 상하이 소비를 지탱하던 금융 등 여러 분야에서 급여 삭감과 맞물린다.

고급 음식점에 자주 다녔다는 상하이의 금융업 종사자는 “지난 몇 년간 다들 지출을 줄이고 있다”며 “나도 고급 레스토랑에 다니는 횟수를 줄였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생존을 위해 가격을 낮추고 있다”며 “가격을 낮추는 것을 피하려 잠시 영업을 중단하는 게 지금 시장의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요식업계 한파는 상하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청두의 추모던쿠진(Chú MODERN CUISINE), 베이징의 티아고(TIAGO)와 오페라 봄바나(Opera BOMBANA) 등 주요 도시에서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던 유명 레스토랑들이 올해 줄줄이 영업을 일시 중단하거나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매체 증권시보에 따르면, 중국 기업 분석 플랫폼 톈옌차(天眼查)에서 올해 상반기 중국 요식업 분야 신규 등록 업체 수는 134만 7천 개, 등록 해지 수는 105만 6천 개로 나타났다. 매년 개점 업체 수의 약 78%에 달하는 업체가 폐업하고 있는 셈이다.

톈옌차는 중국 언론이 기업 관련 통계를 보도할 때 자주 인용하는 유료 정보 제공 사이트다. 빅데이터 기술 업체인 베이징진디과학기술유한공사 산하 자회사로 중국기업신용정보공개시스템, 국가지식재산국 등 2천 개 이상 사이트에 공개된 자료를 종합해서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