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국경일 아닌 대만 ‘광복절’…일각선 “국민당 점령일”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은 ‘건국’을 둘러싼 논란 끝에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광복회 측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정부 공식 기념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광복회는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따로 행사를 치렀다.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裕仁)가 항복을 선언하여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역(戰域) 종전을 알린 이날을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광복절(光復節)’로 기념한다. 대표적인 국가는 한국, 대만(중화민국)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8월 15일을 국경일로 지정해서 기념하고 정부 차원의 공식 기념식도 치러진다. 대만의 사정은 다르다. 국경일도 아닐뿐더러 법정 공휴일에서도 빠져 있다. 대만 정부 차원 공식 행사도 2000년 3월,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민주진보당 정부 출범 후 축소됐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성공으로 아시아 최초로 제국주의 열강 대열에 합류한 일본제국은 1895년 청일전쟁 승리로 대만을 식민지화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하여 이듬해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조선)을 보호국화했다. 이어 1910년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여 식민지화했다. 1931년 9·18사변(만주사변)을 일으켜 둥베이(東北·만주) 지방을 침략하여 만주국(滿洲國)을 성립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 침략을 본격화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으로 태평양전쟁은 종결됐다. 미국·영국·프랑스·소련과 더불어 5대 전승국의 일원이 된 중화민국은 이날을 ‘광복절’로 기념했다. 그중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의 결과 할양된 대만섬과 부속 도서의 공식 반환은 2개월여 늦어졌다.
1945년 10월 25일 오전 10시, 타이베이(臺北) 공회당(현 중산당)에서 마지막 대만총독 겸 대만 주둔군 사령관 안도 리키치(安藤利吉) 대장이 항복 문서에 공식 서명했다. 중화민국 국민정부 대표 천이(陳儀)는 이를 넘겨받았고, 이로써 대만은 50년 식민 통치를 끝내고 중화민국으로 주권 반환됐다. 이후 매년 10월 25일은 대만 광복절로 기념했다.
국민당 통치 기간 동안 대만 광복절은 공식 기념일로 지정됐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자, 1949년 국부천대(國府遷臺·국민정부 대만 파천) 후 대만을 통치한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중국’의 일부로서의 대만의 가치를 강조했다. 공식 교육 과정에서도 ‘대만사’가 아닌 ‘중국사’를 교육했으며, 대만인이 아닌 중국인 정체성을 주입했다.
1986년 당외(黨外·국민당 밖 재야) 인사들이 창당한 민주진보당은 2000년 총통 선거에서 첫 집권에 승리했다. 스스로 ‘대만의 아들(臺灣之子)’로 칭한 천수이볜 총통은 중국이 아닌 대만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고, 각종 기념의식, 교육과정에도 이를 반영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사의 일부로서가 아닌 독립된 대만사를 교육했다. 이 속에서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대만섬의 주권을 반환받은 대만 광복절(10월 25일)의 의미는 퇴색했다. ‘대만인’의 입장에서 중화민국 정부도 또 다른 ‘외세’일 뿐이며, 청(淸) 제국 변방의 한 섬에 불과했으며 청일전쟁 결과 일본제국에 영구 할양한 대만섬을 돌려받은 것을 대만인 입장에서 광복이라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지난 5월 총통 선거에서 집권에 성공한 라이칭더(賴清德) 현 총통도 선명한 대만 독립주의자로 알려졌다. 총통 취임 후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여 ‘독립’을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이 아닌 대만으로서의 정체성은 강조한다. 7월 21일 집권 민주진보당 연차총회에서도 그는 중국어가 아닌 대만어(민남어)로 연설하면서 “대만인은 대만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죽은 중화민국(대만)이나 적국인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아닌 대만인이 쓴 역사이다.”라고 강조했다.
라이칭더 총통은 8월 9일 총통 취임 이후 처음 열린 군 장성 진급식에서도 “대만과 중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으며, 주권을 침해하거나 합병될 수 없다. 대만의 미래는 2350만 대만인만이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현직 총통의 발언은 대만 교과서에서부터 ‘대만 광복절’ 용어를 삭제해야 한다는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 대만의 역사적 연계를 부정하는 집권당과 대만 정계 일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만광복절이란 용어 자체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대만 광복절이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은 2000년이다. 대만은 중국과 별개의 역사가 진행돼왔다고 주장하는 민진당이 집권한 이후 광복절은 물론 중화민국 수립일로 중국에서도 기념하는 날인 10월 10일 쌍십절 기념행사도 대폭 축소되고 있다.
일부 대만 언론들은 “‘대만 광복절’ 용어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매체 풍전매(風傳媒)가 대표적이다. 풍전매는 “대만은 중국인이 세운 국가가 아니라 그 전에 대만에 살던 600만 명의 원주민들과 중국에서 폭정을 이기지 못해 넘어온 이주민 100만 명의 역사로 세워진 별개의 나라이다. 국민당 정권이 국공내전에서 패망한 뒤, 대만을 무력 점령했지만 이들은 대만을 대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0월 25일은 대만 광복절이 아니라 국민당에 의해 무력 점령된 날이라는 의미이다.
중국국민당과 민주진보당의 역사관 차이는 일본 점령기(1895~1945)를 둘러싼 용어 논쟁에서도 알 수 있다. 국민당 측에서는 대만섬과 부속도서가 일본제국주의에 강제 점령당했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일점시기(日佔時期)’ 혹은 ‘일거시대(日據時代)’라 부를 것을 주장하지만 대만 정체성을 강조하는 민주진보당에서는 보다 중립적인 어휘인 ‘일치시기(日治時期)’라 불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만인 입장에서 일본도 하나의 통치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