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정책 뒤엎나? 中 국무원 ‘소비 촉진 20개안’ 발표…“게임·엔터 장려”

강우찬
2024년 08월 12일 오후 6:44 업데이트: 2024년 08월 12일 오후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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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행정부인 국무원(중앙인민정부)이 침체된 서비스 업종의 소비 촉진을 위한 20개 조치를 지난 3일 발표했다.

경제성장률이 5분기 만에 최악 수준으로 둔화되자,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지목되는 ‘취약한 내수’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20개 조치 중 상당수가 그동안 시진핑이 추진한 정책들과 배치되고, 일부는 숨진 리커창 전 총리의 경제 정책과 닮아 있어 중화권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진핑의 실효성 없는 정책을 보다 못한 국무원 관료들이 일종의 반기를 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관영언론에서 시진핑 보도가 크게 줄어든 것도 이러한 시각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사교육·게임·스트리밍 등 시진핑 ‘혐오’ 산업 포함

국무원이 발표한 20개 조치의 정확한 명칭은 ‘서비스 소비의 고품질 발전 촉진에 관한 의견(關於促進服務消費高質量發展的意見)’이다.

총론을 다룬 도입부를 제외하면 6개 분야 총 20개 항목에 걸쳐 지방정부의 소비 잠재력을 강화시킬 방안을 담고 있다. 지난 3일 국무원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작성 일자는 지난달 29일이다.

이 문건은 표면적으로는 시진핑의 지시를 따르는 형태다. 제목에는 시진핑이 내세우는 ‘고품질 발전’이 들어갔고, 도입부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에 따라”, “3중전회의 정신을 전면적으로 관철” 등의 표현이 사용됐다.

그러나 구체적 항목에서는 지난 수년간 시진핑이 억압해 온 산업 분야를 되살리기 위한 제안이 다수 포착된다. 사교육,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 등 시진핑이 ‘죽이기’했던 분야다.

우선 음식·숙박 등 기초적인 소비 분야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맛집 마을, 맛집 명소 등을 조성하고 유명 음식·식당· 쉐프를 육성하도록 했다. 외국 유명 음식점 프렌차이즈의 중국 1호 매장이나 프래그십 스토어 오픈 제안도 담겼다. 노인 돌봄 등 실버 경제 발전 방안도 있다.

또한 엔터테인먼트·관광·스포츠·교육·주거 서비스 등 5대 분야에서 소비 활력을 자극하기 위해 문화 콘텐츠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고화질 TV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게임, 웹소설, 영화 등 콘텐츠 산업의 품질 향상을 강조했다.

새로운 소비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e스포츠, 라이브 스트리밍 전자상거래 규제를 풀고, 대중의 다양한 학습 요구에 맞춰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녹색과 건강 산업 분야 장려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방안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 조세 제도 정비, 인재풀 제공, 데이터 수집·공개 등 정책적 보장도 명시했다.

중국 국무원이 홈페이지에 발표한 ‘서비스 소비의 고품질 발전 촉진에 관한 의견’ 통지문 | 화면 캡처

‘시진핑 측근’ 리창 총리, 왜 반(反)시진핑 조치 내렸나

중화권 평론가 리쥔은 NTD 시사 프로그램 ‘전문가 포럼’에 출연해 “20개 조치에는 과거 시진핑이 혐오했던 것들이 포함됐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리쥔은 “시진핑의 정책 때문에 교육·훈련(사교육) 시장은 강사들이 체포되고 산업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며 “그런데 이번 20개 조치는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품질의 훈련 기관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국무원의 변화 배후에 ‘고위층 권력 판도 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국무원 총리인 리창(李強)은 시진핑의 측근으로, 취임 이후 시진핑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모습을 보여왔다. 따라서 리창의 독단만으로는 시진핑을 거스르는 듯한 이런 조치를 제시할 리가 없다는 게 평론가 리쥔의 견해다.

리쥔은 “20개 조치 중 가장 최상단의 요식업 육성은 과거 리커창 전 총리의 노점경제를 발전시킨 듯한 인상”이라며 “이제 와서 이를 리창이 복원한 것은 공산당 고위층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에포크타임스 중문판 편집장 궈쥔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3차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탈산업화 단계인 미국의 경우, 서비스업이 GDP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50%를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서비스 분야 성장 잠재력이 가장 크다. 실제로 중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가 서비스 산업으로 올해 1, 2분기 성장률은 모두 10%를 넘겼다”며 서비스 산업 육성을 강조한 국무원 20개 조치가 타당하다고 봤다.

즉, 이번 20개 조치 발표는 시진핑이 벌인 잘못을 국무원이 수습하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궈쥔은 “중국 온라인에서는 ‘반(反)시진핑 20개 조치’라는 반응까지 나온다”며 “중국 공산당은 잘못을 절대로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바로잡지 않는데도, 국무원은 사실상 시진핑의 착오를 시인하는 정책을 내놨다. 시진핑의 권위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리창은 물론 모든 관리들이 이 점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시진핑의 경제 정책에 ‘결함’이 있음을 드러냈다. 단지 사교육 업계, 게임 업체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정관계와 공산당 내부에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 CCTV 화면 캡처

“공산당 지도부 패닉…리창, 경제 구원투수로”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 민주화 활동가 왕쥔타오 박사는 다소 다른 견해를 내놨다.

그는 시진핑의 권력 자체는 큰 이상이 없지만, 3중 전회 후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충격에 빠졌으며 경제 위기를 넘기기 위해 일시적으로 리창의 방식을 따랐다고 주장했다.

중국 베이징대 출신으로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투옥됐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후 미국으로 망명,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을 거쳐 뉴욕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왕쥔타오 박사는 현재 중국 민주화 인사 겸 정치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시진핑이 3중 전회에서 경기 부양책 대신 ‘신품질 생산력’이라는 이름하에 기술 개발 비전을 제시했으나, 재정난에 빠진 지방정부 관리들은 난색을 표하며 중앙정부에서 알아서 해결해달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적 결정권자인 시진핑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고, 그 모습을 본 공산당 최고 지도부는 거대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로 집단 패닉에 빠졌다는 것이다.

결국, 위기 상황에서 리창 총리의 방식이 채택됐지만, 경제 정책(대약진운동) 실패로 물러난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으로 다시 권력을 쥔 것처럼 시진핑 역시 위기를 넘기면 리창 총리를 토사구팽할 것이라고 왕쥔타오 박사는 전망했다.

왕쥔타오 박사는 “다시 경제가 좋아지면 시진핑은 리창과 그를 따르던 경제 관료들을 대거 숙청함으로써 그들에게 잘못을 떠넘기고, 자신은 과오가 없는 훌륭한 지도자라는 것을 ‘입증’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