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재일교포 북송사건’ 진실 규명…“北·조총련 1차 책임”

2024년 08월 08일 오후 4:00

“25년 동안 9만여 명 북송”
“일본도 책임…북송 의도적 지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이하 진실화해위)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거짓 선전에 속아 북한으로 간 재일교포들이 북한 정권으로부터 각종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6일 제84차 위원회를 열고 북송된 재일교포와 그 후손 17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 9일, ‘재일교포 북송사업 진상규명위원회’는 재일교포 북송사업에 대한 진실 규명을 위한 조사를 신청한 바 있다. 신청자는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이주했다가 탈북한 재일교포 본인 혹은 그 후손 27명이다. 이들은 북한 정권으로부터 재산과 노동력 등을 착취당하고, 차별과 사생활 감시, 강제 실종 등 인권유린을 당했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북한 정권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는 북송사업을 통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25년 동안 재일교포 총 9만 3340명을 북송시켰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이 북한 정권과 조총련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거짓 선전’ ▲개인의 귀국 의사 확인 기회 차단 ▲개인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승선 ▲북송을 거부하는 사람 납치 등을 근거로 들었다.

아울러 일본 정부와 일본 적십자사,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도 북송사업의 실체를 확인하고도 이를 방관하거나 지원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일본 정부와 일본 적십자사 또한 북송 사업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의도적으로 북송 사업을 지원하고 지속시켜 인권 침해를 용인했다”고 밝혔다. 또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역시 귀환 협정에 따른 북송 과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준수 여부 관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고, 북송사업의 중개자와 조언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방관했다”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북송에 반대하고 마지막 북송이 이뤄진 1984년까지 북송을 저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실패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지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서 북송사업 문제가 다뤄진 이후, 한국 정부에서 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건 처음이다. 또한 북한의 책임을 최초로 명시한 공식 책임 규명 요청이기도 하다.

진실화해위는 북한 정권에 공식 사과와 함께 북송자의 생사 확인 및 이동의 자유 보장을 촉구했다. 유엔에도 북송사업과 피해자들의 행방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고, 이를 역사 기록에 반영할 것을 권고했다.

“인도주의 사업 아닌 강제 이주”

재일교포 북송사업’으로 1959~1984년까지 25년 동안 총 187회에 걸쳐 재일 교포 9만3340명이 북한으로 이주했다. | 가와사키 에이코 제공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25년 동안 총 187회에 걸쳐 재일 교포와 그 가족 등 9만3339명이 일본 니가타항에서 북한의 청진항으로 가는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이주한 사건이다. 이들 중에는 1830명의 일본인 아내와 6730명의 일본 국적자도 포함됐고 북한으로 간 재일 한인의 98%는 고향이 남한이었다.

북한 정부와 조총련의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선전하에 북한으로 이주한 재일교포들은 일본이나 남한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들은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인권 불모지 북한에서 최하 신분으로 전락했으며 적대 계층으로 분류돼 감시와 차별을 받았다. 특히 혜산시 등 지방에 거주하며 이동의 자유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협동농장, 탄광, 광산 등의 노동자로 배치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탈북을 시도하거나 일본으로 돌아가겠다고 요구하는 북송자들은 보위부에 의해 고문당하고,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는 등 극심한 인권침해를 당했다. 심지어 정신병자 시설에 수감된 사례도 확인됐다.

이러한 실상은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 공문서, 외교 전문, 관련 서적과 논문 등을 통해 드러났다.

그간 북송사업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후 일본에 남아 있던 재일 교포들이 자유 의지로 북한으로 이주한 ‘귀국 운동’으로 알려져 이를 지원한 인도주의 사업으로 흔히 설명돼 왔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지난 2022년 발간한 ‘지상낙원으로 간 그들은 어디에? : 기만적 북송사업과 강제실종’은 그 실체를 규명한 보고서에서 “당시 재일교포들은 일본 내 지속적 허위 정보 유포와 기만, 협박 및 사회적 압력을 통해 북한으로의 ‘귀국’을 강요당했고, 북한 이주와 관련된 의사 결정을 위해 필요한 사실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북송자들이 북한 이주 후 처할 상황에 대한 합의나 진정한 의미의 동의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따라서 북송사업은 인도적 귀국사업이 아니라 사실상 강제 이주나 노예무역 혹은 현대적 개념의 인신매매로 봐야 한다”고 보고서는 결론지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이번 결정을 환영하며 “향후 법적 책임 규명을 통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실종된 북송자들의 생사와 행방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송 피해자 가족이자 활동가로서 이번 진실 규명 신청에 동참한 일본 NGO Free2Move의 박향수 공동대표는 “북송 사업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들이 서로 교류하고 만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지윤 팀장은 “앞으로도 북송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정의 회복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송사업의 피해자로 2003년 탈북해 일본에서 NGO ‘모두 모이자’ 대표로 활동 중인 가와사키 에이코(川崎栄子·82) 씨는 “북한 인권을 위해 힘써온 그간의 활동이 헛되지 않았다”며 “이번 결정은 한국 정부의 정의에 대한 확고한 이념을 드러낸 것으로, 북한을 비롯해 국제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