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지도부 비밀회동 베이다이허 회의 시작한 듯

중국 관영 매체들이 ‘베이다이허 회의’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매년 여름 개최되는 중국 공산당의 연례 주요 회의이다. 베이다이허(北戴河·북대하)는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시 동북쪽 외곽 280km에 자리한 허베이(河北)성 친황다오(秦皇島)의 시할구(市轄區)이다. 보하이(渤海·발해)만에 접한 해변 휴양지이다. 청(淸) 광서(光瑞) 24년인 1898년 청 정부는 정식으로 베이다이허 해변을 피서지로 개발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 수도권의 주요 휴양지이다.
1949년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1950년대부터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매년 8월이면 베이다이허를 찾아 회의·업무처리·피서 등을 겸하는 시간을 가졌다.현직 당 간부, 원로들이 비밀리에 베이다이허 휴양지에 모여 주요 현안과 정책 방향을 협의하는 것이다. 회의 공식 명칭은 ‘중공중앙하계판공제도(中共中央夏季辦公制度)’ 혹은 ‘베이다이허판공제도(北戴河辦公制度)’이다.
회의 기간은 2주일 전후이다. 중국 최고 지도자는 이 때 ‘정치 선배’들의 조언, 질책을 함께 듣는다. 회의는 모든 일정이 비밀에 부쳐진다. 인민일보,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에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 중앙위원) 관련 보도가 사라지면 회의가 시작됐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열흘쯤 지나 이들의 동정 기사가 다시 등장하면 회의가 마무리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관행이다.
8월 4일, 신화(新華)통신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 공산당 의전 서열 5위 차이치(蔡奇) 중공 중앙서기처 서기가 8월 3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위임을 받아 베이다이허에서 휴가 중인 전문가 57명을 찾아 인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전문가 좌담회로 회의 개시를 알리는 것이 관례이다. 근래 베이다이허에서는 관광객의 신원을 확인하고 소지품 검사를 실시하는 등 보안을 강화하는 모습도 포착됐다고 중국 매체들은 보도했다.
시진핑 총서기를 포함한 중국 공산당 수뇌부도 공개 활동을 속속 중단하여 언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진핑은 7월 30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 주재 후, 관영 매체에서 모습을 감췄고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도 8월 1일, 폭우 피해를 입은 후난(湖南)성 방문 후 공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국무원 외교부는 8월 5일부터 16일까지 2주간 정례 브리핑을 중단한다.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 주제는 ‘애국 분투’이다. 신화통신은 “자연과학·공학·철학·사회과학·문화예술 분야 전문가들이 좌담회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올해 회의는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 직후 진행된다. 시점상 3중전회에서 강조된 중국식 현대화 추진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이 논의될 거란 전망이 제기됐다.
신화통신은 “중공 중앙, 국무원 명의로 전문가, 인재 대표를 여름철 베이다이허에 초청해 휴가를 보내게 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과 국가 차원 인재 발굴 사업상 중요한 제도적 안배이다.”라고 해설했다.
지난 마오쩌둥 시대부터 시진핑 시대에 이르기까지 베이다이허회의 내용과 형식은 △향후 국가 발전 방향과 인사 결정 관련 회의 개최 △전·현직 지도부 간 회동 △각 분야 전문가 대표단 초대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참석자는 중국 5대 정치 권력 집단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 중앙) ▲국무원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중앙군사위원회의 부장(장관)급 이상 지도부, 국가 원로 등을 아우른다.
마오쩌둥·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베이다이허에서 중국 공산당의 중요한 회의와 국정 운영 관련 중대한 의사 결정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이후 베이다이허에서 공식적인 회의가 개최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수 관측자들은 아직도 이곳에서 치열한 인사 투쟁과 정치적 논쟁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중국 정치 체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베이다이허 회의의 역할도 바뀌어 오고 있다. 마오쩌둥 시기 베이다이허 회의는 국내외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공식 회의체로서 중요 역할을 했다.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덩샤오핑은 베이다이허에 중앙고문위원회(원로)·외빈·지식인도 초청하여 정치적 중요성과 외연을 넓혔다. 장쩌민(江澤民) 집권 이후 베이다이허 회의의 본질적 특성이 희미해졌다. 후진타오는 5대 정치 권렵 집단이 베이다이허에 함께 모여 업무를 보는 관례를 폐지하기로 한다. 이후 시진핑 집권기까지 대외적으로는 전문가 대표단 초청을 중심으로 베이다이허 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