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문한답] 원전 신(新)르네상스 시대, 적응 위한 대비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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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2024년 07월 26일 오후 4:38 업데이트: 2024년 07월 26일 오후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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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열리는 원전 시장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선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답변_정용훈 카이스트(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원자력발전소 설계 및 안전 해석, 원자력수소, 해수담수화 등이다.

-최근 한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체코 신규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 4기의 건설을 한전 중심의 팀코리아가 수주한 지 15년 만의 낭보입니다. 이번에 한수원 중심의 팀코리아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체고에 향후 테믈린 부지에 추가로 건설될 2기의 원전 수주 경쟁에서도 우리가 일단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체코가 테믈린 2기에 대한 입찰에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택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럴 이유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입찰에 체코 측 206명의 평가자가 20만 쪽에 이르는 입찰서를 평가했으며 2700여 개의 질의를 했다고 합니다. 체코 정부의 말을 빌리면 체코 현대사 최대 사업이라고 하니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치밀하게 입찰을 평가했는지 알 수 있죠. 기술성, 사업 적격성, 공사비, 공사 계획 등에서 모두 한국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니 다음 평가에서도 우위가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평가입니다.”

-원전 강국인 프랑스를 제치고 K-원전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1988년과 1989년 프랑스가 우리나라 한울 1, 2호 기를 건설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국내 원전을 프랑스 기술로 건설하는 나라였는데요. 35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체코 원전을 수주했습니다. 15년 전 UAE에서도 우리가 프랑스를 제치고 수주에 성공했으니 이번 수주는 우리나라 기술력과 산업경쟁력이 프랑스를 능가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겁니다. 즉 중동뿐만 아니라 유럽 시장에서도 우리 원전 기술의 우수성을 재확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는 어쩌다 한 번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2009년 우리가 UAE 원전을 수주한 직후인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한동안 신규 건설 프로젝트가 주춤했었죠. 그래서 UAE 프로젝트 이후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전환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전망이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200개 넘는 국가들이 2050년 전후로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원자력을 이용하는 22개국 정상은 UAE 두바이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3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 서비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막대한 전력이 필요합니다. 최신 인공지능 서버 1대가 소비하는 전력량은 전기차 18대가 소비하는 전력량과 같으니, 앞으로 인공지능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24시간 내내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공급하기 위해서 원자력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24시간 실시간으로 제공되지만, 태양광과 풍력 같은 간헐성 재생에너지는 24시간 지속 공급되지 않기에 24시간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원자력 전력 공급자와 별도의 전력공급 계약을 했고, 아마존은 아예 원자력발전소 옆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전력을 공급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는 원자력과 패키지로 같이 건설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번 체코 진출로 유럽 원자력 시장도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영국은 지속적으로 우리나라가 원전건설에 참여해 주길 요청하고 있고, 네덜란드는 2035년까지 2기, 스웨덴은 2045년까지 10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물론 프랑스가 유럽연합 국가로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체코 입찰에서도 프랑스가 같은 유럽연합 국가로서의 끈을 아주 중요하게 강조하기도 했죠. 그런데도 모든 면에서 한국이 나았기 때문에 이번 수주에 성공한 것이고,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은 현재의 3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2050년까지 원자력을 현재의 3배로 늘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형 원전 800기의 시장이 열리는 것입니다. 1980년대 최대 연간 30여 기의 대형원전 건설사업이 시장에 나오던 시기에 못지않은 ‘원전 신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원전 신(新)르네상스 시대, 어떤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까요?

“이제 원자력발전 신규 건설은 어쩌다 한 번 대형 사업이 생기는 시기를 지나 대규모 신규 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이 기회를 꼭 잡아야 합니다. 우선,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인 계획한 공사 기간과 예산 준수를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핵심은 공급망입니다. 우리는 거의 매년 1기의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해 오면서 튼튼한 공급망을 갖추었습니다. 수주로 기자재 공급 물량이 늘어나고, 원전 수주로 인해 강화된 공급망이 또 다른 원전 수주를 가능하게 하는 선순환이 이제 시작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On Time Within Budget(예산 범위 내 정시 납품)’이라는 우리의 최대 장점을 지속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참고로 이번 수주에서 입찰 관련 서류의 제출 기한 연기를 신청한 적이 없는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였고요. 시작이 반인데 시작부터 서류 제출을 연기하면서 공사는 제시간에 완료할 것이라 약속하면 믿을 수 없었겠죠.”

-시장에 판매할 원전을 미리 준비해야겠군요.

“이번 수주에 성공한 비결 중 하나가 2016년부터 체코와 같은 시장에 필요한 1000MW의 원전을 준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원전은 1000MW의 OPR1000 이후 1400MW인 APR1400이 주종 노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1000MW의 최신 원전을 준비했습니다. 중소 국가나 내륙에 적합하도록 용량은 줄이고, 안전설비는 최신의 설계를 적용해 APR1000(사실상 APR+1000)을 개발한 것이죠. 구매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설계도 좋지만, 검증된 것이 좋은 측면도 있으니 우리는 새로운 APR1000의 유럽인증을 추진해 2023년 완료했습니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국내에서는 별도로 표준설계 인가를 추진하고 있으니 수출하는 국가에서 새로운 설계에 대한 꼼꼼한 인증을 추진하고 있고, 유럽의 요건을 만족한다는 인증을 받은 우리나라 설계에 대해 신뢰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 APR1000을 이을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설계해서 적기에 납품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보다는 이미 완성된 설계 중에 고르면 적기에 납품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더 믿을 만한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개발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전의 개발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산학연관이 모두 협력해야 합니다. 소형모듈원전은 지금까지 인허가를 해본 경험이 없는 새로운 물건이기에 더욱 세심하면서 강력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원자력 연료 공급망 문제는 없나요?

“블록화된 세계 질서를 고려해 원자력 연료 공급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동안 전 세계 우라늄 농축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지만, 현재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우라늄 공급망을 사용하는 것에 안보 차원의 문제가 생겼죠. 이런 국제 질서를 고려해 우리나라 원자력 연료 공급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평화적 이용을 위한 우라늄 농축도 추진할 필요가 있고요. 우리나라와 같은 모범적인 원자력 평화적 이용 국가가 농축을 할 수 없다면 말이 안 됩니다. 최소 60년, 100년까지도 운영될 원전의 연료 공급은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사업입니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원전 연료가 우리가 수출하는 원자로에 장기간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새롭게 열리는 원전 시장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 어떤 대비를 해야 할까요?

“인허가 체계가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미국은 원자력 신르네상스에 대비해 다용도, 선진 원자력 도입 가속화 법인 ‘원자력 발전 촉진법(ADVANCE 법·Accelerating Deployment of Versatile, Advanced Nuclear for Clean Energy Act)’을 제정했습니다. ADVANCE 법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원자력 리더십을 되찾고, 기존 원자력 발전을 지속 이용하면서 새로운 원자력 기술 개발을 가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핵심 중 하나가 새로운 원자력 도입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 효율성 향상입니다.”

“ADVANCE 법에서는 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가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18개월을 포함해 25개월 안에 새로운 원자로 승인 절차를 진행하고, 필요 인력을 충원하는 등의 활동에 있어서 자율적인 결정권을 가지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즉, 인허가에 필요한 자원과 재원을 확보하고, 제도를 손보는 권한을 대폭 규제기관에 일임한 것이죠. 우리도 새로운 원전 개발과 건설을 하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시간 지연이 없도록 규제기관이 효율적인 규제를 할 수 있게 규제기관에 명시적인 책임을 부여하는 한편, 재원과 재량을 늘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 다른 대비책을 조언하신다면요.

“우수한 인력이 유입되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지원책은 물론 원전 건설과 수출이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산업이 활기를 찾고, 보람과 대가가 있는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인력이 유입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이를 위해 대학과 대학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겠지만, 현재 공기업 중심의 원자력 산업에 민간의 참여가 활성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원자력 분야를 지원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공기업 중심의 원자력은 안정 혹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분야라면, 민간 중심의 원자력은 보람뿐만 아니라 경제적 대가도 찾을 수 있는 분야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미국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면 지금과 같은 우수 인력이 그 분야에 유입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 한수원, 한전기술, 한전 원전연료와 같은 공기업의 인력 채용 및 대우에 있어서 대폭 자율성을 부여하고, 민간 기업의 원자력 발전사업 진출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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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선진화재단 한선브리프 통권 3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