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검찰, 한국계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 스파이 혐의 기소 파장

미국 연방정부의 재미(在美) 한국계 북한 전문가 기소 파장이 일파만파이다. 7월 16일, 미국 연방검찰은 수미 테리(Sue Mi Terry·한국명 ‘김수미’)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체포·기소됐다. 수미 테리는 보석금 50만 달러(약 7억원)을 지불하고 석방됐다.
미국 뉴욕남부연방검찰청의 공소장에 의하면 수미 테리는 미국 행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총 31쪽짜리 공소장에서 미국 연방검찰은 “수미 테리가 한국 정부를 위해서 혹은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광범위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에 따른 외국 에이전트로 등록하지 않았다.”면서 “외국대리인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FARA) 위반 혐의로 기소 했다.”고 적시했다. 외국인대리인등록법은 외국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에게 공개 의무를 부과하는 미국 법률이다. 외국 정부, 조직 또는 사람(“외국 주체”)을 위해 국내 로비 또는 옹호 활동에 참여하는 개인 또는 단체로 정의되는 외국 대리인이 미국 법무부(DOJ)에 등록하고 이들의 관계, 활동 및 관련 금전적 보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연방검찰의 공소장에는 “수미 테리가 중앙정보국(CIA)을 떠난 지 5년 뒤인 2013년 즈음 뉴욕시 주유엔한국대표부 외교관 신분의 한국 국가정보원 인사와 접촉했고, 이후 10년간 업무에 대한 대가로 수천 달러 상당의 루이뷔통·보테가베네타 브랜드 가방,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선물로 받고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근거 자료로 수미 테리가 가방, 의류 등을 구매할 때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추정되는 인사와 동행했고, 해당 요원이 대신 결제하는 장면 등이 담긴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 등도 첨부됐다.
현물·향응 제공 외 현금성 대가 지불 사실도 적시됐다. 공소장에는 “수미 테리가 근무했던 싱크탱크를 통해 비밀 자금 최소 3만7000달러(약 5100만원) 등을 받은 후 한국 정부가 요청한 주제에 대해 우호적인 칼럼을 작성하기도 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구체적인 정보 유출 사례도 명시했다. 2022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의 비공개회의 후 생산된 미국 행정부의 대북한 정책 관련 비공개 메모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고, 지난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 행정부 관료, 미국 의회 직원들에게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소개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공소장에는 수미 테리가 2021년 4월 16일 워싱턴D.C에서 국가정보원 요원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지난날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정보위원회(NIC) 고위급을 역임했으며 한국 업무도 담당하는 국무부 고위 당국자와 수미 테리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 논의했다.”고도 적시돼 있다. 공소장에는 ‘고위급’ 인사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정 박 국무부 부차관보로 추정된다. 북한 정책을 총괄해 온 그는 최근 돌연 사임했다.
수미 테리에 대한 수사는 10년 정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매체들은 “2014년 즈음 법무부 연방수사국(FBI)에서 관련 의혹이 제기돼 조사가 시작됐으며 지난해 6월 연방수사국 조사에서 중앙정보국을 떠나게 된 계기가 해고되기보다 사임을 선택한 것이었다고 털어놨다.”고 언급했다.
실제 수미 테리는 중앙정보국 근무 시에도 한국 국가정보원과 접촉이 문제가 되어 내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미 테리의 변호인은 “검찰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며 “공소장이 주장하는 기간, 그는 한국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자였다.”고 반박했다.
수미 테리 사건을 통해 한국 국가정보원의 미국 내 첩보·정보 공작 실체가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검찰은 실명은 적시하지 않았지만 뉴욕의 주유엔 한국대표부 공사 1인, 워싱턴D.C의 주미국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 2인 등 ‘화이트(White)’로 활동하는 한국 국가정보원의 고위급 공작요원의 신분을 적시했다. 아울러 이들이 ‘외교관 특권’을 이용하여 공작을 벌였으며 구체적으로 “외교관 번호판이 붙은 차량에 수미 테리를 태웠다.” “명품 가방·코트 등 구입 시 외교관 면세 혜택을 이용했다.”면서 관련 CCTV 화면을 증거 자료로 첨부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7월 17일 논평에서 “아직 진행 중인 법 집행 사안에 대해 논평하지 않겠다.”면서도 “외국인대리등록법(FARA)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만나려 온 사람들을 접촉할 때 그들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자신들을 대표하는지, 외국을 대표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이게 법이 제정된 이유이고 법무부가 법을 집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논란의 당사자 수미 테리는 1972년 서울 출생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사망한 후, 12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후 하와이, 버지니아 등에서 성장했다. 1993년 뉴욕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터프츠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중앙정보국, 국가안보회의, 국가정보위원회 등 정부 기관에서 분석관으로 활동했고 공직을 떠난 후 컬럼비아대 웨더헤드 동아시아연구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 등으로 일했다. 현재는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다. 최근 제작을 맡은 탈북자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로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