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헨델과 동갑내기…‘건반의 거장’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앤드루 벤슨 브라운 (Andrew Benson Brown)
2024년 07월 17일 오전 11:01 업데이트: 2024년 07월 17일 오전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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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음악계에 있어 1685년은 상서로운 해였다. 그해 탄생한 세 명의 음악가는 천부적 재능과 혁신으로 서양 음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와 음악의 어머니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은 같은 해에 태어난 천재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인물, 도메니코 스카를라티(1685~1757)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음악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초상’(1738), 도밍고 안토니오 벨라스코 | 퍼블릭 도메인

 1685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음악가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난 스카를라티는 유년기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에 젖어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였고, 친척 중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및 성악가가 많았다. 특히 그의 아버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는 스페인 총독의 음악 감독으로 발탁될 만큼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좋은 환경에서 일찍부터 음악 교육을 받은 그는 위대한 음악가로 성장했고, 근대 피아노 주법의 아버지라 불린다.

스카를라티와 헨델

귀족과 문화계 인맥이 풍부한 그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1705년 그는 음악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헨델을 만나 독일 작곡가와 우호적인 경쟁 관계를 형성했다. 같은 해에 탄생한 두 사람은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였기에 아직 왕실 소속 음악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미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1612년 제작된 2단 건반 하프시코드 | 퍼블릭 도메인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스카를라티와 헨델은 가면무도회에서 서로를 처음 만났다. 헨델은 가면을 쓰고 하프시코드(14세기경 이탈리아에서 고안된 건반악기,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전 사용됨)를 연주했다. 헨델의 연주를 들은 스카를라티는 독일 작센에서 온 유명 인사나 악마가 연주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만큼 헨델의 연주는 뛰어났고, 스카를라티는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두 사람은 로마에서 열린 한 연주회에서 다시 만났다. 연주회 주최 측은 두 사람에게 건반 대결을 제안했다. 스카를라티는 하프시코드 분야에서 우아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섬세한 연주로 승리했고, 헨델은 오르간으로 승리를 거뒀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극찬했으며 스카를라티는 헨델을 언급할 때마다 성호를 그으며 존경을 표했다고 전해진다.

스페인의 스카를라티

스카를라티는 유럽 전역에서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폴란드 여왕과 포르투갈 국왕 존 5세 등 여러 왕실에서 후원을 받았다. 그는 존 5세의 딸 마리아 바르바라가 1729년 스페인의 페르난도 6세와 결혼했을 때 함께 스페인으로 이주했고, 이후 30년 동안 그녀를 위해 스페인에 머물렀다.

스카를라티의 13번째 소나타 악보집. 소나타 514~541이 포함된 책 | Patachonf / CC BY-SA 4.0

그는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마리아를 위해 550여 개의 피아노 소나타(16세기 중기에 발달한 독주 형태의 악곡)를 작곡했다. 이 소나타들은 플라멩코(스페인 남부에서 유래한 노래와 춤이 융합된 예술적 표현)와 스페인 민속 음악을 연상케 하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 또한 당시 서민들이 부르는 곡의 멜로디에서 착안한 부분을 다수 포함해 당시 그가 이주한 환경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 궁정에는 당시 그의 좋은 음악 동료인 오페라 가수 파리넬리도 함께 있었다. 당시 파리넬리의 영향력이 더 컸는데, 그의 노래가 왕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음악으로 왕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당시 일부 사람들은 ‘나라가 음악가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스카를라티와 마리아 바르바라

‘마리아 바바라의 초상’(1729), 장 랑크 | 퍼블릭 도메인

마리아 왕비는 건반 연주에 엄청난 재능과 열정을 보였다. 그녀는 당시 다섯 대의 피아노포르테(현대 피아노의 전신)를 소유할 정도로 음악에 헌신적이었다. 또한 그녀는 뛰어난 실력을 더 연마하고자 스카를라티에게 어려운 곡을 작곡하길 주문했다. 이에 스카를라티는 고난도의 작곡 기법을 실험하며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스카를라티의 곡 중 가장 유명하고 혁신적인 주법이 돋보이는 곡으로 소나타 D장조를 꼽을 수 있다. 이 곡은 그의 다른 곡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 이분법적 구조로 구성됐다. 이 곡의 경쾌한 음색은 반복되는 음표의 추진력과 결합해 마치 춤추는 듯한 생동감을 선사한다. 빠른 음계와 계속 번갈아 나오는 장조와 단조의 변주는 높은 숙련도와 실력을 요구한다. 마리아는 왕실에서 손님을 맞아 연주 실력을 뽐낼 때 이 곡을 자주 선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크 음악의 종결

1722년 제작된 피아노포르테. 현재 3대의 악기만 남아있다 | LPLT / CC BY-SA 3.0

17, 18세기 유럽 음악을 일컫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일반적으로 바흐가 사망한 해인 1750년을 종결 시점으로 여긴다. 하지만 당시 위대한 음악가인 헨델과 스카를라티는 바흐보다 더 오래 살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스카를라티는 1757년 스페인에서 숨을 거뒀고, 헨델은 1759년 사망했다. 이들은 모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태어난 세 거장의 삶이 마침내 막을 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바로크 시대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남긴 위대한 음악적 유산은 오늘날에도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앤드루 벤슨 브라운은 미국 미주리주에 거주하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는 음유시인 부엉이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미국 혁명에 관한 서사시인 ‘자유의 전설’의 저자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