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그림 속 이탈리아 문학의 역사…‘6인의 토스카나 시인’

워커 라슨(Walker Larson)
2024년 07월 13일 오후 8:54 업데이트: 2024년 07월 13일 오후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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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세기의 위대한 시인과 철학자, 예술가들이 서로 만날 수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바흐는 모차르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칸트에게 무슨 질문을 던질까? 이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호기심을 유발하는 만남은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조르조 바사리(1511~1574)의 작품 속에서 성사됐다.

‘여섯 명의 토스카나 시인’(1544), 조르조 바사리 | 퍼블릭 도메인

16세기 이탈리아의 예술가 바사리의 작품 ‘여섯 명의 토스카나 시인’(1544)에는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시인 여섯 명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작품에는 왼쪽부터 크리스토포로 란디노, 마르실리오 피치노, 페트라르카, 조반니 보카치오, 알리기에리 단테, 귀도 카발칸티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출신이다. 이 그림은 각기 다른 시기를 살았던 위대한 여섯 예술가 사이의 이야기와 서로에게 미친 영향, 회화와 문학의 공생 관계 등 위대한 예술의 상호 연결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알리기에리 단테

‘여섯 명의 토스카나 시인’ 속 단테 | 퍼블릭 도메인

이 작품은 ‘신곡(神曲)’의 저자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리기에리 단테(1265~1321)의 장엄하며 엄숙한 모습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왕좌에 앉은 듯한 단테를 중심으로 다른 시인들이 배치돼 있고, 그의 붉은 옷은 시선이 한곳에 모이도록 한다.

단테의 손에는 위대한 고대 로마의 시성(詩聖) 베르길리우스(버질)의 책이 들려있다. 그리고 머리에는 시적 성취의 전통적 상징인 월계관이 씌워져 있다.

단테의 대표 서사시 ‘신곡’에는 작품 속 주인공인 단테 자신이 지옥을 방문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작품에서 그는 고대의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호머),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루카노스, 호레이스와 대화를 나눈다. 이 그림은 신곡 중 이 부분을 헌정한 것으로, 신곡 속의 거장들을 14~15세기 이탈리아의 다섯 예술가로 대체해 당시로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여섯 명의 토스카나 시인’의 세부 | 퍼블릭 도메인

단테 앞에는 에메랄드빛 식탁보가 덮인 탁자가 있다. 그 위에는 지구본과 잉크병, 여러 서적이 놓여있다. 이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능통했던 천문학, 기하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상징한다.

버지니아 대학 교수 데보라 파커는 이 작품 속 인물과 사물의 배치, 특히 단테의 위치에 대해 “단테가 탁자에 가장 가까이 앉아 사물들에 손을 얹어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다른 작가들의 어느 작품보다 단테의 신곡이 하늘과 세상, 모든 예술을 포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라고 설명했다.

1472년 출판된 ‘신곡’의 일부 | 퍼블릭 도메인

단테가 1308년경 시작해 사망한 1321년까지 집필한 서사시인 신곡은 신학, 영성, 시, 신화, 지리, 천문학, 자연과학, 정치 등의 주제를 통합해 현실에 대한 완전한 비전을 제시하려 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탈리아 문학의 꽃이자 과학적, 사회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찬사받았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초상화’(1370년 경), 알티키에로
| 퍼블릭 도메인

그림 속에서 두 번째로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주역이자 초기 인본주의자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왼쪽에서 세 번째)다. 그는 단테와 화면 가장 오른쪽의 카발칸티가 베르길리우스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들으려 몸을 기울이고 있다.

‘여섯 명의 토스카나 시인’의 세부 | 퍼블릭 도메인

페트라르카는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저서 ‘흩어진 시구(詩句)’로, 자신의 뮤즈였던 로라라는 여성을 위해 쓴 시를 담았다. 이 시의 대부분은 그가 처음 대중화한 시 형식인 ‘소네트(엄격한 형태와 특정 구조를 갖춘 14줄의 시)’로 쓰였다.

이 그림은 구성을 통해 토스카나 문학을 빛낸 시인들 간의 연결점과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것을 강조해 보여 준다. 페트라르카는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을 손에 들고 단테와 카발칸티를 유심히 바라본다. 이는 그가 몸담았던 청신체(淸身體) 파에 대한 존경을 의미한다. 청신체 파는 단테와 카발칸티 등에 의해 유래한 시파로, 그들은 사랑을 가장 숭고한 것이며 진(眞)과 선(善), 그리고 신에게로 향하게끔 하는 것이라 여겼다.

소통과 수용에서 탄생한 결정체

모든 위대한 예술은 예술가 간의 소통과 수용, 이해와 제공을 통해 탄생한다. 그들은 기존의 전통 유산에서 유기적으로 자신만의 형식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을 혼합하며, 과거의 원칙이나 교훈을 파괴하지 않고 혁신을 이뤄낸다.

이 그림을 탄생시킨 바사리는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를 단테와 페트라르카 사이에 배치해 그가 두 사람 모두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그가 두 사람의 뒤편에 배치된 것은 그의 영향력이 두 사람에 비해서는 낮았음을 상징한다.

‘여섯 명의 토스카나 시인’ 속 란디노(왼쪽)와 피치노(오른쪽) | 퍼블릭 도메인

그림 속 마지막 두 인물인 란디노와 피치노(왼쪽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모두 이탈리아의 중요한 인문주의자다. 하지만 앞선 인물들과는 다른 세기를 살았기에 시대를 반영하는 형태의 모자를 쓰고 있다. 그들은 14세기 시인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며 상호 소통하는지를 살핀다.

예술의 위대함을 드높이다

조르조 바사리의 자화상(1571) | 퍼블릭 도메인

바사리는 유럽 최초의 미술사학자였다. 그는 예술과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특히 단테라는 시성에 대한 존경을 담아 헌정의 의미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문학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위대한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워커 라슨은 위스콘신에 있는 사립 아카데미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아내와 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영문학 및 언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헤밍웨이 리뷰, 인텔리전트 테이크아웃, 뉴스레터 ‘헤이즐넛’에 글을 기고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