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대선 앞둔 美 하원, 비시민권자 투표 금지법 통과

공화당 “불법체류자 투표 막아야”…민주당은 반대
정치 공세용 비판도…상원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
미국 연방 하원이 투표할 때 시민권자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법안을 찬성 221, 반대 198로 지난 10일(현지시각) 통과시켰다.
이날 표결에서는 공화당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민주당 의원 5명이 찬성 대열에 합류했다. 반대표 198표는 전부 민주당에서 나왔다.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법(SAVE)’으로 이름 붙여진 이 법안은 대통령 선거를 포함해 연방 선거에 투표하려는 유권자들에게 미국 시민권자임을 증명하는, 얼굴 사진이 포함된 서류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비시민권자도 발급받을 수 있는 운전면허증은 인정되지 않으며, 미국 여권이나 미국서 태어났다는 출생증명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귀화증명서(시민권 증명서) 등이 인정된다.
또한 이 법안은 비시민권자를 유권자 등록 명단(선거인 명부)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명령도 포함됐다. 기존 명단을 검토해 위법하게 유권자로 등록된 이들을 털어내겠다는 것이다.
공화당 측은 현행 선거법상의 허점으로 인해 비시민권자들이 유권자 등록을 해 악의적으로 선거에 개입할 수 있다며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법’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밀입국자들이 하루에만 수만 명씩에 달하면서 투표 전 신원 확인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시민들의 권리 박탈하는, 잘못된 법안”
이번 표결에서 5명의 이탈표가 나왔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에게 공화당이 주도하는 해당 법안에 반대하도록 압력을 가해왔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인 캐서린 클라크 의원은 지난 6일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신규 유권자 등록 과정에 과도한 부담을 줄 것”이라며 반대표를 던지라고 촉구했다.
클라크 의원은 “(이 법안에 따르면) 출생기록 등 추가 서류를 함께 제출하지 않으면 운전면허증, 원주민 신분증, 군인증만으로는 투표할 수 없다”며 “적잖은 미국인들에게 서류 발급을 위한 시간과 비용 부담을 안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이번 법안 추진 배경에는 ‘2020년 대선 부정선거’ 주장이 깔려 있다고 본다.
클라크 의원은 “공화당 의원들은 (2020년 대선 이후) 우리 선거의 신뢰성에 대해 무책임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그러한 부정행위에 대한) 증거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공화당 “민주당은 왜 시민권 확인을 반대하나”
이번 법안을 주도한 공화당 측은 선거의 무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투표 전 신분 확인 강화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원의장인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의원실은 이번 표결을 앞두고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법’을 지지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22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2008년과 2010년 선거 결과를 분석해 “비(非)시민이 법을 어기고 유권자로 등록해 미국의 선거에서 부당하게 투표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일부 선거는 이러한 불법적인 투표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으며, 비시민 투표는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불법 이민자들의 미국 유입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 것은 잠재적인 지지층을 확대해 향후 선거에서 영원히 승리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한다.

존슨 의장 역시 최근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법’을 당론으로 반대하는 것을 두고 “(민주당은) 불법체류자들이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0일 표결 전 연설에서도 “바이든이 투표를 위해 데려온 불법체류자 중 극히 일부만이라도 투표를 한다면 그것은 단 한 번의 투표 결과만을 바꾸려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아마도 모든 투표 결과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AP통신은 이번 공화당의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패배 불복 전략과 이어져 있다며, 미국에서 비시민 투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물고 대개는 실수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전했다. 또한 법안의 상원 통과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실제로 법 제정보다는 ‘부정선거’ 주장을 위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공화당은 2020년 선거 이후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부재자 사전투표(우편투표)가 과도하게 확대됐다며 유권자 신원 확인 강화를 시도해왔다.
애리조나주에서는 지난 2022년 시민권 증명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이 공화당 주도에 의해 미국 최초로 제정됐다. 올해 3월 연방법원에서는 이 법이 투표권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며 소송을 제기한 시민단체에 사실상 패소 판결이 내려지며 법령이 대부분 그대로 유지됐다.
* 이 기사는 조셉 로드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