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주한 중국대사는? 북한 유학파 ‘한국통’ 주로 거론

2024년 07월 12일 오후 7:28

설화(舌禍)가 잦았던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가 이임했다. 2020년 1월 부임했던 싱하이밍은 7월 이임하여 4년 6개월의 임기를 마쳤다. 중국 외교부는 후임 대사를 임명하지 않았고, 팡쿤(方坤) 공사의 ‘대사대리’ 체제로 운영된다.

통상 4년인 대사 임기를 채웠고, 외교관 정년도 임박한 싱하이밍은 당초 올해 말, 내년 초까지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됐으나 중국 외교부는 전격 교체를 결정했다. 그는 7월 초 한국 주요 인사들과 각종 모임 약속을 계획했으나 급거 취소하고 귀임하여 ‘급작스러운 교체’라는 세간의 분석을 뒷받침했다.

싱하이밍의 후임자에 이목이 쏠린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북중 관계 균열 속에서 중국 정부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고 한국 정부의 반발을 샀던 싱하이밍을 전격 교체함으로써 한국과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후임자의 ‘격(格)’도 문제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은 장·차관급 직업 외교관·정치인·예비역 장성을 주중 대사로 파견했으나 중국은 외교부 국장·부국장급 직업 외교관을 임명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임한 싱하이밍도 외교부 부국장을 지낸 후 주몽골 대사를 거쳐 한국에 부임했다.

중국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수립 이후 정권 초기부터 디테일을 중시하는 외교 전략을 확립했다. 그해 11월, 국무원 외교부 출범 시 초대 외교부장을 겸했던 저우언라이(周恩来) 국무원 총리로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대상 국가, 대상자에 따라 의전, 접대에 세밀히 신경을 썼다. 외교 사절을 파견할 때도 대상국의 특성을 고려했다. 저우언라이는 국공내전 시절 비밀 지하조직을 지휘했다. 그 시절 그는 ‘세심한 부분이 생사존망을 가른다’는 철칙아래 시시콜콜한 세밀한 문제에까지 정보요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외교부장이 된 후에도 이를 중시했다.

신중국 첫 외교 사령탑이 된 저우언라이는 동서 냉전 체제하에서 진영 외교를 펼쳤다. 공산주의 우방(友邦) 소련, 북한 등에 중량급 인사를 대사로 파견한 것이다. 초대 소련 대사에는 장원톈(張聞天)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임명됐다. 중국 공산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당정(黨政) 국가 중국에서 당 서열 12위의 고위직이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두 달째인 8월에는 니즈량(倪志亮) 인민해방군 중장(中將)을 주북한 대사로 파견했다. 니즈량은 중일전쟁 시 팔로군(인민해방군) 참모장을 지낸 베테랑 장성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재외 공관장을 부부장급·국장급·부국장급 등 3가지로 서열화했다. 부부장급 대사를 파견한 국가는 중국을 제외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4개 상임 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소련), 혈맹(血盟)으로 치부되던 북한 등 5개국에 그쳤다. 그중 같은 공산권 국가인 소련과 북한에는 외교부 부부장보다 격이 높은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급을 파견했다. 그러다 1993년 일본, 1997년 독일 대사도 부부장급으로 격상됐다.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본격적으로 굴기하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서는 신흥국을 중시했다. 2009년 인도·브라질,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재 대사가 부부장급으로 승격했다. 그러다 아랍연맹을 대표하는 이집트 대사까지 ‘동급’이 되면서 중국의 대사급 재외공관장 중 부부장급은 11명이 됐다. 유엔(UN)·유럽연합(EU)·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 상주대표부 대사 4인, 홍콩·마카오 특파원 2인을 더하여 총 17인이 부부장급 대사이다. 주요 7개국(G7)인 캐나다·이탈리아 주재 재사는 외교부 국장급이다. 한국도 초기 부국장급 대사를 보내다 근래 국장급을 파견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차기 대사의 격을 어떻게 설정할지, 그 자체에 추후 한중 관계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의지가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싱하이밍 후임 대사로는 중국 외교부 내 ‘한국통’들이 주로 거론된다. 이들 중 다수는 북한에 유학,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수학한 동문 외교관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진옌광(金燕光) 외교부 변계(邊界)해양사무국 공사참사관이 물망에 오른다. 김일성종합대 조선어과 졸업 후 한국과 외교부 본부를 오가며 근무했다. 주한국대사관 부대사(공사참사관)를 거쳐 2023년 현재 외교부 변계·해양사무사 공사참사관으로 근무 중이다.

천하이(陳海)도 유력 후보군이다. 김일성종합대 출신으로 지난 2019년에도 차기 주한 대사 물망에 올랐었다. 다만 한국의 비호감도가 높은 것이 걸림돌이다. 주한중국대사관 부대사(공사참사관) 재임 시절 고압적인 언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결정적으로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 시절 방한하여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를 두고서 한국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야 되겠느냐”고 따졌다. “사드 배치 땐 단교(斷交)에 버금가는 조처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라고 겁박하기도 했다. 한중 관계에 부담 요인이다. 미얀마 대사로 부임했던 천하이는 7월 귀임했다.

장청강(張承剛) 외교부 영사국 2급순시원도 거론된다. 한국통 외교관으로서 1998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간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완벽한 통역으로 호평받았다. 2024년 2월까지 주광주 총영사로 근무했다.

천사오춘(陳少春)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도 후보군이다. 베이징어언대학 출신으로, 국비 장학생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한대사관 정무참사관, 공사참사관을 역임했다.

펑춘타이(馮春臺) 주북한중국대사관 부대사(공사)도 고려된다. 한국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주한국대사관 서기관, 참사관, 공사참사관을 역임했다. 랴오닝(遼寧)성 외사판공실 부주임을 거쳐 2016년 주제주중국총영사로 부임했었다.

중국 정부가 ‘여성 외교관’ 카드를 꺼내들 경우 허잉(何穎) 주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영사도 가능성이 있다. 김일성종합대 조선어과 출신으로 1989년 국무원 외교부에 입부했다. 2006년 한국 주광주영사사무소 주임(참사관급)을 맡아 총영사관 개설 업무를 맡았고 주한국대사관 참사관, 총영사를 맡았다. 2022년 3월부터 크라이스트처치 총영사로 첫 재외공관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차기 대사 후보군에 오른 진옌광의 한 살 연상 아내이다.

천하이(陳海·53) 주미얀마 대사는 4명 중 유일하게 해외 공관에서 근무하는 주한 대사 후보라고 할 수 있다. 외교부 내에서 한반도 업무를 다루면서 승승장구, 경쟁자 3명보다는 상대적으로 빠른 승진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9년에도 차기 주한 대사로 거론된 바 있다.

그 외 고위 외교관 중에는 슝보(熊波) 주베트남 대사가 물망에 올랐다. ‘일본통’으로 주일본대사관에 장기간 근무했고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을 거쳐 주캄보디아 대사로 임명됐다 베트남 대사로 전임됐다 올해 7월 임기를 마치고 중국으로 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