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전회 앞둔 시진핑, 軍 숙청 왜 했나…“반대 세력에 경고”

강우찬
2024년 07월 10일 오전 11:01 업데이트: 2024년 07월 10일 오전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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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당 기관지, 군부에 시진핑에 대한 충성 강조
해외 평론가 “한때 군부서 리커창 지지 여론 확산”

중국 공산당(중공) 총서기 시진핑이 7월 중 개최하기로 한 중대회의를 앞두고 인민해방군 고위 간부 숙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번 숙청은 기대에 대한 실망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동안 최고 권력자로서 군부의 충성을 요구해왔지만, 집권 초반 반부패 운동으로 권력을 안정화한 시진핑과 중공의 대표적 기득권의 하나였던 군 고위층은 같이 가기에는 너무 먼 사이였다.

오히려 시진핑이 억지 충성을 강요하면서 오히려 군부 반발이 더 심해졌다고 중화권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기에 군 경험이 없는 시진핑이 인민해방군 장성들의 ‘자존감’을 건드린 설화(舌禍)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직 국방장관 2명, 같은 날 나란히 당적 박탈

중공은 지난달 27일 리상푸(李尙福), 웨이펑허(魏鳳和) 등 2명의 전직 국방부장(장관)의 당적을 박탈했다.

정치가 모든 것인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당적 박탈은 정치적 사망선고다. 이런 엄중한 조치를 같은 날 2명의 군 고위 인사를 상대로 단행한 것은 이례적인 수준을 뛰어넘어 전례 없는 일로 평가된다.

28일 중공 관영 신화통신은 전날 중공 정치국회의에서 두 사람의 처리 문제를 논의하고 당적 박탈 및 20대 중공 전국대표 자격 정지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죄목으로는 ▲심각한 정치기율 위반 ▲당의 엄격한 통치를 수행할 정치적 책임 미이행 ▲조직의 조사에 대한 저항 ▲부당한 인사 개입 ▲거액 자금 수취 ▲뇌물 수수 등이 거론됐다.

웨이펑허는 2018~2023년 국방장관을 지냈고, 리상푸 그의 후임으로 지난해 3월 국방장관에 올랐으나 8월부터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춰 낙마설에 휩싸였다.

이번 당적 박탈은 두 사람에 대한 처벌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추후 두 사람은 군사법원에 불려나가 중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 이 시점에 당적 박탈 단행했나…시진핑의 ‘의중’

중화권 평론가들은 이번 두 전직 국방장관의 당적 박탈에 대해 중공의 중대회의이자 정권의 고비가 될 ‘3중전회’를 앞둔 시진핑이 당내 반대세력을 견제하려 취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또한 그간의 거듭된 장악 시도에도 군부가 여전히 시진핑에게 충분히 복종하지 않고 있으며, 그만큼 시진핑에 대한 군부의 반감이 깊다는 의미로도 풀이한다.

미국의 시사 평론가 겸 중국 전문가 고든 창은 최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중공 최고위층이 진짜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든 창은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 외에는 현재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해석할 다른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숙청된 전 국방장관 두 사람 모두 시진핑이 직접 발탁한 인물이라는 점을 근거로 시진핑의 지도력이나 인사 판단에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인민해방군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아닌 중공이라는 정당에 속한 군대다. 직접적으로는 중공 군사위 주석에게 충성한다. 중국에서는 주로 ‘해방군’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대만 국방부는 공군(共軍·공산당의 군대)이라고 칭한다.

한국에서는 ‘중공군’이라고 하면 주로 6·25 전쟁 당시 파병된 부대에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VOA 등 중공의 영향을 받지 않는 중국어 매체에서는 중공군으로 칭한다.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에서도 중공군이라고 부른다.

현재 중국 최고지도자는 공산당 총서기, 당 중앙군사위 주석, 국가주석을 겸직한다. 시진핑 역시 이러한 3가지 직위를 모두 맡고 있다. 이에 중공군 고위 장성들은 시진핑이 군사위 주석으로 취임한 후 “(군은) 시진핑 주석의 지휘 아래에 있다”며 공개적으로 충성을 맹세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시진핑에 대한 군부의 충성심은 거의 실종 상태라고 일부 전문가는 평가한다.

충성 요구하는 시진핑, 반부패에 불만 누적된 軍기득권

미국에 머물며 중국 군사평론가로 활동하는 야오청은 두 전직 국방장관의 죄목에 ‘심각한 정치기율 위반’과 ‘조직의 조사에 대한 저항’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대목이 중공군 내부의 반시진핑 기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중공군 해군 사령부 중령 출신으로 지금도 군 내부 인사들과 활발하게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야오청은 현재 중공군의 반시진핑 기류의 시작점을 반부패 운동으로 지목했다.

야오청은 “시진핑은 집권하자마자 군을 겨냥해 ‘선별적’인 반부패로 반대파를 제거했다”며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인원들을 포함하면 엄청난 인원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11월, 시진핑이 중앙군사위 주석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부군급(副軍級·부단장급) 이상 고위 장성 중 최소 91명이 군복을 벗었다.

로켓군 사령원(상장·대장급)을 지냈던 리위차오(李玉超)·저우야닝(周亞寧), 로켓군 부사령원(중장) 출신의 장전중(張振中)·리촨광(李傳廣), 로켓군 장비발전부 부부장(소장) 뤼훙(呂宏), 공군사령원(상장) 딩라이항(丁來杭), 당 중앙군사위 장비발전부 부부장 출신의 장위린(張育林)·라오원민(饒文敏), 남부전구 해군 사령원 쥐신춘(鞠新春)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야오청은 “수년간 200~300명의 장군이 체포되고 수많은 군인과 고위 장교가 기소됐다”며 “이러한 표적 수사와 군 개혁은 광범위한 기득권층을 건드렸고 거대한 불만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인원수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군의 권력 구조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 시진핑의 군 개혁이 가져온 여파라고 설명했다.

군 일각서 習 대안으로 리커창 떠오르기도

야오청은 “시진핑의 군 개혁은 군사위의 권력과 기관들을 삭제해버렸다”며 “그렇다면 이제 누가 군사위 말을 듣는가? 군은 위신이 있어야 하고 지휘관은 위신이 있어야 한다. 지휘관의 위신은 개인의 자랑을 위한 게 아니다. 군대는 다양한 상황에서 상관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군을 망신 준 일화도 소개했다. 2017년 10월 당대회에서의 일이다. 야오청은 “시진핑은 대만 통일을 위해 무력 행사를 시사하면서 ‘이길 수 없더라도 싸워야 한다’고 했는데, 군 고위층의 위신을 꺾은 발언이었다”고 했다.

시진핑의 발언은 결연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겠지만, 대만군에 비해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중공군 입장에서 지휘관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야오청은 단순한 반감을 뛰어넘어 시진핑의 지휘 능력에 관해서도 군 지도부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2017년 남부전구 해군에서는 “리커창 총리를 군사위에 편입시키자”는 여론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진핑은 못 미더우니 차라리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리커창 총리의 지휘를 받자는 주장이다.

시진핑에 대한 중공군 내부의 불만은 중공 대변인들의 발언에서도 포착된다.

중공 창당 103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일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는 사설에서 “군에 대한 당의 절대적 지도력을 견지해야 한다”며 “당과 군에 대한 전면적인 엄격한 통치를 계속 추진하고 … 부패가 번성할 토양과 조건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 훈련을 계속 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6월 중공군 기관지 해방군보 “모든 장교와 병사들은 시 주석의 명령을 철저히 따르고 책임을 지며 시 주석이 안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장교와 병사들이 시진핑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아 시진핑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재미 중국 평론가인 왕쥔타오 미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는 “시 주석이 3중전회 개막 전 리상푸와 웨이펑허를 처리한 것은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정치적 반대파의 복종을 받아내려는 고강도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왕쥔타오 박사는 “표면적으로는 반부패, 정치 기율을 말했지만 실은 3중전회에 참석할 당 간부나 중앙위원들에게 ‘나 시진핑이 원하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같은 꼴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