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주영 총재 “사회 전 분야서 도덕 타락…도덕재무장 절실”

이주영 세계도덕재무장(MRA/IC) 한국본부 총재

이윤정
2024년 07월 7일 오후 2:38 업데이트: 2024년 07월 7일 오후 3:49
P

“사회 각계 지도자들부터 도덕 무장 해야”
“물질만능주의·배금주의가 도덕적 타락 부추겨”
고교시절부터 MRA 운동 참여…“나부터 변화해야 한다”
“청소년들, 도덕 훈련 통해 ‘무엇이 옳은지’ 판별 능력 길러줘야”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은 지난 2월 19일 세계도덕재무장(MRA/IC) 한국본부 총재로 취임했다.

57년 전, 고교 1학년 시절 선배의 권유로 도덕재무장운동을 시작해 변화·도전·자신감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며 판사-5선 국회의원-장관-국회 부의장 등을 지낸 뒤 MRA/IC 한국본부 총수가 된 것이다.

이 총재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같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정치학석사를 취득하고 15년간 판사로 재직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성한 뒤 20대 총선까지 내리 당선돼 5선 의원을 지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및 대선기획단장, 여의도연구원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해양수산부 장관과 제20대 국회부의장 등 공직을 두루 거친 뒤 현재는 법무법인 명재 고문변호사로 있으면서 국민의힘 국책자문위원장, 사단법인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총재, 한국정보기술연구원(KITRI)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을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각계의 모든 지도자도 도덕 재무장 훈련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야 한다”며 “이것이 위대한 대한민국을 창조하는 길이다”라고 역설했다.

“MRA 운동이 제 필생의 사업이 됐다”는 이 총재를 지난 7월 4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명재’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단법인 ‘세계도덕재무장(MRA/IC)’을 소개해 주세요.

“MRA는 ‘Moral Re-Armament’의 약자이고 도덕 재무장이란 뜻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젊은이들에게 좀 더 어필하기 위해 Initiatives of Change(IC·변화를 주도하는 모임)를 병행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1938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시작됐고, 주창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목실장으로 있던 프랭크 북맨(Frank Buchman) 박사입니다. 당초 기독교 정신에 근본을 둔 윤리적 평화운동으로 출발했죠.”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을 시작하면서 군비 증강을 통해 재무장에 한창 드라이브를 걸던 시기였다. 이 총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고조되는 와중에 프랭크 박사는 ‘지금 우리는 무기로 재무장할 게 아니라 도덕적·양심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면서 도덕 재무장 운동을 주창했고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MRA는 1938년 6월 4일 “개인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가정, 학교, 사회, 국가, 세계를 이룩해 평화를 확립하고 인류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목적 아래 발족했다. 이후 인종, 민족, 종교, 계급, 정파를 초월해 새로운 질서 확립과 인간의 사고·생활방식을 개선하려는 광범위한 정신적, 도덕적 개변운동으로 전개됐다. 현재 세계 60여 개국에서 ‘새 세계 창조’라는 공동 주제 아래 청소년 운동을 펼치고 있다.

2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세계도덕재무장(MRA/IC) 한국본부 총재 이·취임식 | 세계도덕재무장 한국본부 제공

-MRA/IC 한국본부는 그간 어떤 활동을 했나요?

“영국 런던 공회당에서 MRA/IC가 창립되고 한국에선 광복 후 1948년부터 스위스 MRA 센터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한국 지도자들이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활동이 활성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매년 스위스, 미국, 일본 등에서 개최된 MRA/IC 국제대회에 한국 대표를 파견했고 1965년엔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죠. 1960년대 한국의 MRA운동은 초대 이사장인 정준 선생이 이끌었어요. 제헌 국회의원부터 시작으로 4선(제3대~5대) 의원을 지낸 분으로, 아주 청빈하게 생활했는데 정계 은퇴 후 도덕 재무장 운동을 맡으셨죠. 당시 중·고등학교와 대학 중심으로 MRA 운동이 크게 붐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1982년 세계도덕재무장(MRA/IC) 한국본부 사단법인 설립 후 강석규 총재(호서대 설립 총장), 김상원 총재(전 대법관), 차광선 총재(전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회장)가 맡아서 활동을 이어왔다. 현재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대전, 인천, 청주, 전주에 지역 본부가 설치돼 있다. 지난 6월 4일, 서울 강서구 국제청소년센터 국제회의장에서 MRA/IC 임원, 각계 지도자, 학생, 학부모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덕재무장 창립 86주년 기념식이 개최됐다.

“그런데 갈수록 청소년 활동으로서의 MRA 운동이 점차 위축되고 재정도 좀 어려워졌어요. 최근 도덕적 위기의식이 팽배하면서 사회 각계각층 지도자들부터 도덕 무장이 된 사람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어서 후원해 주시겠다는 분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도덕 재무장 운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경기고 1학년 시절, 한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2학년 선배가 MRA 운동을 하고 있다며 같이 해보자고 권했습니다. 당시 서울역 앞 구 세브란스 병원 자리에 있던 MRA 한국 본부에서 매주 한 번씩 고등학생 집회가 있었어요. 지도자이셨던 정준 의원님이 어떻게 사는 게 위대한 삶인지에 대해 강연하셨는데, 그때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등 도덕적으로 위대한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런 어른들처럼 인생을 의미 있게 잘 살아서 우리 사회, 국가, 세계를 위해서 뭔가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위대한 인간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MRA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 이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67년의 일이다. 이듬해인 1968년, 그는 봄방학 때 3박 4일로 열린 MRA 훈련에 참여한 뒤 경기고에 ‘MRA 특별활동반’을 만들었다.

“사회 선생님께 지도교사를 맡아달라고 부탁드렸고, 반마다 돌며 함께할 동지들을 규합했습니다. 그 결과 80여 명으로 구성된 MRA 특별활동반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심했던 제 성격에 선생님께 뭘 해달라 하고 교장선생님께 승인을 부탁하는 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는데 그걸 해냈거든요. 이 과정을 통해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고 실제로 변화를 겪으면서 자신감을 가질 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부터 자신을 이끄는 삶의 지표로 ▲Change(나 자신부터의 변화) ▲Challenge(끊임없는 도전) ▲Confidence(굳건한 자신감) 등 3C 정신을 갖게 됐다는 이 총재는 오래전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며 인터뷰 내내 미소 띤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MRA 반 결성 이후에는 한국본부에 있던 SING-OUT KOREA를 도입해 60여 명으로 구성한 ‘SING-OUT 경기’ 합창반도 만들었습니다.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공연을 하고 양로원 등에 위문공연을 다니며 봉사도 했고요. 1968년 7월 장충체육관에서 1만여 명의 MRA 학생들을 모아놓고 ‘MRA 서울지구 고등학생 대회’를 개최했는데 제가 대회장을 맡아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보낸 회답이 언론에 보도됐고 극장에서 대한뉴스로 상영되기도 했죠.”

이주영 세계도덕재무장(MRA/IC) 한국본부 총재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MRA/IC의 4대 도덕표준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말 그대로 ‘절대정직·절대순결·절대무사(無私)·절대사랑’입니다. 목사였던 프랭크 박사가 기독교 정신을 압축해서 표현한 것 같아요. 이렇게 살아야 건전하게, 바르게, 그리고 남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도덕률인 셈이죠.”

이 총재에 따르면 MRA 도덕 훈련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포함된다. △조용히 눈을 감고 정숙한 자세로 양심의 소리, 자기 내면의 소리, 절대자의 음성을 듣는 ‘정청(Quiet Time)’ △ 도덕 가치 규범에 비추어 잘못된 일은 없는지 탐색하는 ‘진단’ △진단 후 마음을 다잡는 ‘결심’ △정청을 통해 얻은 진단과 결심을 여러 회원 앞에서 발표해 함께 나누고 인정받는 ‘분담(sharing)’

“평소 자기를 되돌아보면 이 절대 도덕 표준에 비추어 볼 때 굉장히 미흡한 점들이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렇게 살지 않으면 양심이 허락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도 있어서 이러한 표준에 가까워지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사회 전반적으로 건전한 사회를 이루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도덕은 생각과 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행동·실천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뒤에서 엉뚱한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오늘날 한국 사회의 도덕 수준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도덕적 타락이 너무 심합니다. 거짓과 비리, 부조리, 부패, 이기심, 편가르기, 증오 등이 만연해 있습니다. 도덕 재무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전통 가치와 도덕이 무너지고,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조차 모호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고결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보다는 물질만능, 배금주의에 몰두해 모든 걸 걸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거기서 파생되는 비윤리·부도덕 같은 것들에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돈 많이 버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매몰되다 보니 도덕이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이죠. 주위에서 보는 범죄들이 다 그런 경우입니다. 요즘 자격 미달 정치인에게도 표를 막 주는 이상한 풍조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정치 주제로 이어졌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총선을 거치면서 도덕의 추락이 정말 심각하다고 느꼈다”면서 “각 정당의 공천이나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너무나 비도덕적인 양태들이 넘쳐났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범죄자가 지도자로 공천이 되고, 또 그런 사람에게 지지자들이 엄청나게 몰려드는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정치인들 수준이 추락했을 뿐 아니라 그런 이들에게 표를 주는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도 많이 저하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도태될 사람이 오히려 큰소리치고 다니고 정당도 만들고 하니 뜻있는 분들은 개탄을 금치 못했죠. ‘어떻게 이렇게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추락할 수 있는가?’라면서 도덕 재무장 운동이 아주 절실하다고 했습니다. 저의 취임식 때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이 넘칠 정도로 호응해 주신 것도 그런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MRA/IC 홍보 팜플렛 | 세계도덕재무장 한국본부 제공

-도덕 재무장이 가장 시급한 대상이 정치인이라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이런 사람들부터 도덕적으로 무장이 돼 있는 사람들을 뽑아놓고 존경하면서 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사회 각계 지도자들부터 도덕 무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심판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은 도태된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이 총재는 도덕 수준이 낮은 사람도 공천받고 당선되는 세태를 두고 “국민들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돼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우리와 이념적으로 같은 편이니까 무슨 말을 했든, 그 내용이 옳든 그르든 잘 싸워줄 사람을 무조건 지지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MRA 운동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옳으냐’를 중요하게 봅니다. 이쪽, 저쪽으로 갈려서 무조건 따라갈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 일이 과연 우리 사회, 세계를 위해서 바람직한가 이런 걸 판단해서 지지해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를 잘 판별하고 자기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MRA 운동의 효과, 파급력을 높이기 위한 특별한 방안이 있는지요?

“학교, 교도소, 소년원 등을 순회하면서 전국적으로 강연을 활성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가 변해 강연으로 마음속을 파고들기엔 효과가 좀 덜할 수도 있겠지만, 청소년이나 재소자들에게 교과목 외 인성 도야를 위한 강의도 필요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쇼츠 영상 같은 걸 활용할 수도 있겠죠. 감수성 예민한 젊은 시절에 감명받은 이야기나 시(詩) 구절 하나가 삶의 지표가 될 수 있고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총재는 향후 구체적인 사업 추진 방향으로 6가지를 꼽았다. ▲전 국민 도덕성 회복을 위한 가정교육 ▲학교에서 도덕성 함양을 위한 인성교육 ▲교도소, 소년원 재소자 교육 ▲문화, 예술의 감동을 적극 활용한 흡인효과 향상 ▲한국에 세계 최고의 MRA/IC 훈련센터 건립 ▲재정 확보 등이다.

그는 이런 사업과 활동을 하려면 무엇보다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MRA 한국본부는 정부 지원 없이 후원금으로만 운영합니다. 지난 20년간 한·중·일 청소년 포럼을 진행하면서 여성가족부에서 3000만 원씩 보조금을 받았는데, 올해 긴축재정을 이유로 청소년 활동 예산을 전부 없애버렸어요. 여기저기 편지를 보내 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주영 세계도덕재무장(MRA/IC) 한국본부 총재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이 밖에 한국사회 도덕성 회복을 위해 제언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미래 세대에게도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도덕 재무장, 양심 같은 가치를 접하게 해 주고 일깨워주면 자칫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는 인생 항로가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MRA 운동을 접해서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 것이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MRA 운동을 하면서 평생 제 가슴 속에는 ‘도덕 재무장’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제 인생의 나아갈 바를 잘 이끌어 왔다고 봅니다.”

이 총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취임한 지 41일 만에 사고가 발생해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을 맡아 136일 동안 진도군청 내 상황실에 머무르며 사고 수습에 힘썼다. 수염도 깎지 않고 세월호 현장에서 끝까지 유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팽목항 지킴이’ ‘울보 장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품격 높은 대한민국이 세계의 리더가 돼서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 실현의 구심점이 되려면 도덕 재무장이 필요합니다. 제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모든 정열을 쏟아서 도덕 재무장 운동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는 게 제 필생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