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대한 겸허한 수용…‘하느님의 어린양’과 희생적 자세

성경 속 세례자 요한은 예수를 보고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라”(요한복음 1:29)라고 선언했다. 기독교 예술에서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희생되는 운명을 지닌 예수를 묘사할 때 어린양(희생양)에 비유했다. 라틴어로 ‘하느님의 어린양’을 뜻하는 ‘아뉴스 데이(Agnus Dei)’는 기독교 미술에서 중요한 상징 중 하나로 꼽히며 많은 작품에 등장했다.
‘신의 어린양’

이탈리아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산비탈레성당의 돔의 그림을 예로 들 수 있다. 천장화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은 하느님의 어린양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나뭇잎, 꽃, 숫양, 사슴, 과일 등이 어린양과 천사들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네 명의 천사는 어린양을 둘러싸고 있는 무화과 면류관을 받치고 있다. 이 작품은 헬레니즘・로마 양식으로 제작돼 역동적이며 화려한 색채로 고대 후기 보석 장식 양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양’

순교자, 수녀의 초상화와 종교화를 주로 그린 17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1598~1664)은 1635년에 그린 ‘하느님의 어린양’에 두 가지 예술 기법을 혼합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자와 빛의 뚜렷한 대조가 특징인 명암법을 멋지게 활용해 ‘스페인의 카라바조’라는 별명을 얻은 수르바란은 극명한 대비를 인상적으로 작품에 구현했다.

생후 8~12개월 된 어린양은 두 발이 밧줄로 묶인 채 순순히 누워 저항 없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양은 눈을 자연스럽게 내리깐 채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수르바란은 양의 폭신한 털과 하얀 속눈썹, 촉촉한 분홍빛 코까지 질감을 살려 섬세하게 묘사했다. 자기 운명에 순응한 어린양은 조용히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은 후 부활한 예수를 연상케 한다.
성 세실리아의 희생

17세기 초 이탈리아 로마 최고의 조각가 중 한 명인 스테파노 마데르노(1576~1636)는 수많은 대리석 조각 작품을 남겼다. ‘성 세실리아의 희생’은 그의 역작 중 하나로 꼽힌다. 순교한 성인의 희생적 자세와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양’의 자세에는 뚜렷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성 세실리아는 기독교를 위해 순교한 로마의 동정녀이자 음악의 수호성인이다. 그녀는 동료 로마인들에게 세례를 해줬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그녀는 희생과 음악의 신성한 힘, 박해에 맞서 증오를 이겨내는 상징으로 남아있다.

마데르노는 처형당한 세실리아의 모습을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비극적이며 감동을 전하는 대리석 조각상으로 묘사했다. 마데르노는 1599년 성 세실리아의 무덤이 개봉된 당시 몇 세기 동안 지하 묘지에 묻혀 있었으나 부패하지 않고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에 영감을 받았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누워있는 세실리아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 상황에서도 오른손 손가락 세 개와 왼손 검지를 뻗어 삼위일체를 표시하고 있다. 얼굴을 땅에 파묻고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사형 집행인이 그녀의 목 뒤편에 남긴 깊은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처형 당시 그녀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3일을 더 살아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 숭고한 조각상은 이탈리아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성 세실리아 성당에 비치돼 있다. 조각상 앞에는 이 작품의 제작을 의뢰한 스프론드라토 추기경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무덤에 온전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세실리아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위해, 세실리아의 시신이 누워있던 상태를 그대로 대리석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희생양

스페인 태생으로 포르투갈에서 활동한 주세파 데 오비두스(1630~1684)는 17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활동한 유일한 여성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양’에서 영감을 받아 1670년부터 1684년까지 ‘희생양’이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오비두스는 수르바란에 비해 덜 섬세한 채색 기법을 사용했다. 그녀는 빛과 어둠의 대비를 더욱 극명하게 해 구성에 입체감을 더하기보다는 구도를 평면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어린양에 대한 암시는 분명하다. 그녀의 작품 속 어린양은 수르바란의 작품과 동일한 회색 석판과 검은 배경 위에 놓여있다. 양 머리에 뿔이 없고 머리 위 옅은 황금빛 후광이 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연약함을 연상케 하는 세 송이 꽃을 작품에 추가해 그림 전체에서 섬세하고 희생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희생과 운명에 대한 수용
어리고 온순한 양은 수 세기 동안 희생과 순수함, 운명에 대한 겸허한 수용을 상징해 왔다. 겸손과 온유함은 이상적 가치로 승화되며 영혼에 영생을 가져다주는 귀중한 신앙의 덕목 중 하나로 찬양된다.
마리 오스투는 미술사와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랜드 센트럴 아틀리에의 핵심 프로그램에서 고전 드로잉과 유화를 배웠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