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 포인트]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는 어땠을까…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황효정
2024년 06월 26일 오전 9:46 업데이트: 2024년 06월 26일 오후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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館. ‘집 관’ 자입니다. 우리들 개개인에게 보금자리가 소중하듯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집들이 있습니다. 도서관, 미술관, 체육관, 과학관, 기념관, 박물관…

우리 주변 곳곳에 구석구석 숨은 보석 같은 집(館)들을 소개하는 ‘관전 포인트’입니다.

1939년 1월 24일, 중국 류저우

아이가 훗날 이국을 떠돌면서 생활했던 이유를 묻는다면, ‘너의 미래를 위해서였다’는 짧은 한마디로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것으로 우리 가족의 이 시간을 담아내고도 남을까?

― 양우조·최선화, ‘제시의 일기’ 中

양우조·최선화 부부와 딸 제시·제니의 가족사진|한기민/에포크타임스

당연한 말인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독립운동가들도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얘기할 때 독립운동가의 영웅적 면모를 집중해서 조명하곤 한다. 그들이라고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들이라고 부모가, 사랑하는 배우자가, 자식이 없었을까.

독립운동가들의 이 같은 ‘삶’을 조명한 자리가 있다는 소식에 지난 21일 에포크타임스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찾았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옆에 위치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지난 2022년 3월 1일 개관한 새내기 기념관이다.

현재 이곳 기념관은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의 삶을 주제로 한 특별 전시를 진행 중이다. 임시정부 사람들 50여 명이 남긴 회고록을 한자리에 모아 연 첫 전시회 ‘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꿈같은 옛날 뼈아픈 이야기)’다.

전시는 두려움과 분노, 즐거움, 고달픔과 슬픔, 희망이라는 네 가지 감정으로 구성됐다. 관람객이 독립운동가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이들의 삶을 살펴보고 공감,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김문택이 일본 규슈에서 일본군을 탈출해 중국에 있는 한국광복군을 찾아가는 과정을 정리한 ‘탈출기’ 친필 원고|한기민/에포크타임스

갈등 상황에 놓인 인간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과 분노다. 1부 ‘두려움과 분노’는 일본군으로 징집된 청년 김문택이 일본군을 탈출해 한국광복군을 찾아가는 ‘탈출기’ 친필 원고, 마찬가지로 일본군에 끌려간 청년 장준하가 일본군 회식 때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탈출해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내용을 기록한 책 ‘돌베개’ 등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나라를 빼앗기고 분노한 선열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운명은 위태로웠고,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은 대개 가족을 떠나 혈혈단신으로 임시정부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100여 명에 이르는 ‘임시정부 대가족’을 이루었다.

독립이라는 신념으로 뭉친 임시정부 가족들은 27년간 동고동락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 조국의 광복을 그리다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는 가족들도 있었지만,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날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독립운동가로 자라나 임시정부의 대업을 이어나갔다.

2부 ‘즐거움’은 임시정부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독립운동가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삶의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임시정부 내에서 ‘동지 혼인’으로서 많은 축복을 받고 백범 김구가 주례를 선 박영준·신순호 부부의 결혼사진 등이 소개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양우조·최선화 부부가 중국에서 1938년부터 환국 시까지 8년간 기록했던 육아일기 ‘제시의 일기’ 친필 원고|한기민/에포크타임스

특히 부부 독립운동가인 양우조·최선화 부부가 어려운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8년간 기록해 남긴 친필 육아일기 ‘제시의 일기’가 이번에 최초로 공개돼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제시의 일기’는 아이의 첫니(齒)를 발견한 날, 아이를 끌어안은 채로 힘겹게 일본군 폭격을 피한 날 등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3부 ‘고달픔과 슬픔’에서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한다. 독립운동가의 어머니이자 아내로 임시정부의 살림을 꾸려가며 동시에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로 직접 활동한 이은숙, 정정화, 한도신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심경을 담은 회고록에서 굴곡진 시대의 고달픔과 슬픔을 엿볼 수 있다.

두려움과 분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는 힘이 됐다. 때로는 고달픔과 슬픔도 겪었지만 그 속엔 살아가는 즐거움도 함께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국을 되찾으리란 희망이 존재했다.

독립운동가 김예진·한도신 부부의 가족사진. 이번 전시회는 한도신 선생의 동명 수기 제목에서 따왔다.|한기민/에포크타임스

마지막 감정은 희망이다. 4부 ‘희망’은 안창호의 ‘도산 안창호 일기’, 김구의 ‘백범일지’ 등 고난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희망을 갖고 있었던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회고록을 통해 희망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생각해 보는 자리다.

저마다 ‘나의 기억’을 기록한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남기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특별전 ‘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는 오는 8월 18일까지 전시된다. 기념관에서는 해당 특별전 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과정을 상세히 담은 상설 전시도 관람할 수 있다.

관람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입장은 오후 5시에 마감된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관람료는 무료다.

안창호가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 등으로 역임하던 시기의 활동을 기록한 ‘도산 안창호 일기’|한기민/에포크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