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로 빚은 새하얀 도자기 위에 전통 가치와 이야기를 얹어 황홀하게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도예 작가 권혜인의 작품전이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홍익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한 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권 작가는 2023년 월간도예가 주목하는 도예가 11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산하 기관 신당창작아케이드 소속인 권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녀가 생각하는 예술과 전통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영원한 꽃’ 작품전에는 작가만의 특별한 생각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권혜인 | 도예 작가]
“(전시)주제가 영원한 꽃인데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생각했을 때 언제나 꽃을 식물에 많이 비유하잖아요. 싹이 트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이런 거를 우리의 인생과 많이 비유되는데 그런 것들을 소재로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거를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나 언제 성공할까’라고 했을 때 ‘너의 계절은 있을 거야, 분명히 너의 꽃은 필 거야’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담아서 이런 넓은 발 형태의 만다라 형상처럼 꽃을 뭔가 표현을 했는데요. 그런 것들이 삶이 혼자서 살아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연을 맺고 사람들의 유대 관계라든지 그런 관계성 안에서 사람들이 성장하고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꽃의 생장 과정에 비유했어요.
전통 공예 중에 매듭도 있잖아요. 그런 매듭을 지어가는… 그리고 하나의 선처럼 이어져서 결국에는 하나의 꽃이 이루어지는 그런 매듭적인 형상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런 미래를 응원해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담겨 있는 작업이에요.”
도자기에 담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권 작가는 흙의 물성에 매료돼 작업을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권혜인 | 도예 작가]
“흙이라는 게 이제 다양한 물성 표현이 되거든요. 금속처럼 표현하고 싶으면 금속처럼 표현할 수 있고, 유리처럼 투명하고 맑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유리질이라는 그런 유약 마감 처리(를 하고), 그리고 돌 질감이라든지 목재의 질감을 표현하고 싶으면 그렇게까지 표현이 다 돼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제 손에서 뭔가 만들어지는 그런 형태감이라든지 그 물성 표현을 되게 재미있어서 하게 됐거든요.
저는 종교는 없지만 저 자신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흙이라는 물성을 가지고 뭔가 내 안에 있는, 자아에 대한 걸 꺼내는 것 같아요.
(제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공통적인 것은 ‘다 넌 잘될 거야’ 기복(祈福)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종교가 만들어진 것도 좀 삶에 풍전등화가 많으니까 어떤 대상자를 하나 심고 비는 것 같거든요. 자연의 물체를 가지고 빌기도 했었잖아요. 토속 신앙을 보면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처럼 뭔가 확장된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요, 흙이라는 자연적인 물질로 내 안에 있는 신, 내가 바라고자 하는 이상향, 내가 그리고자 하는 미래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도자기는 불에 구워진 후 흙의 성분에 따라 백자, 청자, 분청사기 등으로 분류됩니다. 권혜인 작가는 주로 백자를 빚어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권혜인 | 도예 작가]
“백자 자체가 되게 다루기가 어려워요. 일반 청자나 이런 좀 붉은색 계열을 다루는 그런 흙들에 비해서 백자는 되게 예민하고 갈라짐도 많고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하면서 좀 완성도를 높여가려고 하다 보니까 또 고집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리고 작품 전반에 흰색을 띠는 이유도 기복적인 주제를 다루다 보니까 희망, 꿈 하면 저는 새하얀 도화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 색을 만들어갈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개념에서 하얀색을 택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죽기 전에 (삶이) 주마등처럼 스친다고 했을 때도 하얀색으로 표현이 되고 그래서 제가 작품에서 표현하는 게 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의 삶과 이런 기복적인 것을 담다 보니까 작품의 색도 기본적으로 하얀색이라든지 그리고 하얀색에서 파장되는 그런 빛의 표현이 주가 돼서 백자를 사용하는 것 같아요.”
도예를 전공한 학생이었던 권혜인 작가가 전통적이며 화려한 아름다움을 도자 위에 표현하게 된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고 합니다.
[권혜인 | 도예 작가]
“거기(박물관)에 가면 화려하게 장식된 것들에 매료됐었어요. 왜 이게 유물이 됐는지 그리고 이게 왜 이렇게 장식이 됐는지 그런 거에 대해서 관심을 두게 되면서 의미라든지 상징물에 대한 기호 이런 것들의 뜻을 찾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과거 선조들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라든지 그 안에서 스토리텔링이라든지 우리에게 동화 같은 이야기들을 뭔가 저는 그런 것들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저도 오늘날을 살아가면서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조금 깨닫게 되는 그런 가치관이라든지 그런 신념들이 하나둘씩 생기게 되면서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창구가 된 것 같아요.”
1997년생인 권혜인 작가는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팝아트 등이 팽배한 현재 미술 사조와는 다르게 전통 가치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권혜인 | 도예 작가]
“저는 전통이 있어야 현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나라에 여행을 가더라도 그 나라의 법도가 있고 그 나라에서 지켜야 하는 예절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뭔가 배우다 보면 이러한 문화의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이러한 생활 환경을 가지고 있는 거고, 이런 사고방식을 하게 되는 거고, 그런 것들을 이해하고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게 되게 즐거웠거든요.
그래서 전통적인 소재에 더 관심을 가졌던 거고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그런 전통에서 뭔가 해답을 찾았던 것 같아요.
요즘 현대미술에는 좀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잖아요. 예를 들면 나의 우울감이라든지 나의 행복감이라든지 다양한 그런 것들을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뭔가 공통으로 삶에 있어서 어려웠던 점이라든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나는 이런 게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이러면서 공감할 수 있고 그런 게 공통적인, 기복적인 게 얘기가 되고 동양이나 서양에서도 공통된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서양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영감을 받고 전통에 대해서도 소스를 얻어가서 제가 해석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융합해서 계속 이야기가 나오는 거라서 다양한 문화 속에서 뭔가 공통적인 지점을 찾는 과정인 것 같아요.”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권혜인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명예(名譽)’에는 작가가 화두로 삼은 내용이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권혜인 | 도예 작가]
“(작품) 밑은 제기 형태고 위에 항아리가 올라간 형태예요. 근데 이게 흔하지 않은 형태긴 한데 신께 제사를 올리고 그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면서 제사 문화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제기 형태의 위에 항아리가 올라와 있는데 이거는 제가 태항아리를 차용해서 한 거예요. 태항아리는 왕실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넣어놓고 그 아이의 운명을 점지하는 재밌는 유물인데 항아리에 뚜껑이 덮여 있는 형태예요.
뭔가 담아놓는다는 의미로서 얘기를 시작한 건데요. 사람이 살면서 어떠한 것을 빌고 살까를 생각했을 때 저는 5가지로 상정을 한 거예요. 명예・부・사랑・미 그리고 건강 ,이 5가지는 살면서 꼭 빈다고 생각해서 5가지 주제 중에 이 작품은 명예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작가는 그리스 신화 속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권혜인 | 도예 작가]
“그 이야기가 제가 맨 처음에 접했을 때 우리 전통 사회의 인(忍)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전통문화에서 인이라는 사상과 되게 유사하다 느꼈는데요. (이야기에) 효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가 거기에 담겨 있는 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작품의 가장 위에는 왕관 형태의 장식이 놓여 있습니다. 권 작가는 과거 왕관이 장송(葬送)용 유물이기도 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권혜인 | 도예 작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얘기하는 게 명예는 그 사람이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평판이라든지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그랬을 때 내가 명예로운지 알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되게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항아리 전반에는 각자의 사람들이 생각하고자 하는 그 명예의 전당으로 가는 능선 같은 뭔가 삶의 곡선 이런 식으로 해서 조각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히어로물 (영화를) 보면 명예로운 행동을 할 때 일반 평상복이 아니라 어떤 코스튬(복장)을 입잖아요. 그래서 이 작품도 난 명예로운 행동을 하고 뭔가 명예로운 이런 제스처를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옷을 입는 것처럼 그렇게 항아리에다가도 재밌게 왕관이 씌워지고 귀걸이가 달리고 허리띠도 같이 장식되고 했던 것 같아요.”
이미 많은 곳에서 전시를 진행하며 문화계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권혜인 작가는 앞으로도 전통의 가치와 메시지를 알리고 싶다고 전합니다.
[권혜인 | 도예 작가]
“제가 살면서 느끼는 그런 메시지들, 그리고 그런 기복(祈福)을 담아서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면서 조금 더 큰 자리에서 개인전도 많이 하고 서울 공예박물관을 시작으로 다양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자리에서 전통적인 메시지라든지 전통 유물에 대한 한국적인 이미지를 많이 널리 알리는…”
지금까지 에포크타임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