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SIS 보고서, “中 대만 ‘격리’ 통해 실질적 항복 받을 수 있어”

지난 5월 20일 라이칭더(賴清德) 정부 출범 후 중국의 대(對)대만 압박 강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建軍) 100주년이자,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 총서기 4연임을 결정할 중국 공산당대회가 개최되는 2027년을 구체적인 대만 침공 시점으로 상정하기도 한다. 이 속에서 다양한 무력·비(非)무력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제시되고 있다.
중국의 대대만 압박 속에서 대만해협에서 군사 충돌 위기는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무력 수단이 아닌 다른 수단을 사용하여 대만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6월 5일 공개된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대만을 격리하는 방법: 가능한 두 가지 시나리오’ 제하의 보고서는 “중국은 해안경비대, 세관 당국 등을 동원하여 대만 일부나 전체를 ‘격리(quarantine)’하는 방식으로 대만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격리’는 때때로 ‘봉쇄(blockade)’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보고서에서는 두 용어를 구분하여 설명했다. 봉쇄가 군사적 성격을 내포한다면 격리는 특정 지역의 해상·항공 교통을 통제하기 위한 법 집행을 통한 작전이라는 것이 CSIS 보고서의 설명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무력 충돌이라는 한계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압력을 행사하는 회색지대(grey zone) 작전의 일환으로 ‘격리’를 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중국이 대만으로 향하는 선박 등에 대한 세관 검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만을 격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만에 입항하는 화물선·유조선에 사전 세관 신고서를 요구한 후 중국 당국이 승선해 현장 검사를 하고, 규정 위반을 이유로 기업에 벌금 부과 등 강제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해상에 순찰선 다수를 배치하고, 해안 경비대 등을 작전에 동원할 수 있다. “대만 최대 국제무역항 가오슝(高雄)이 작전의 주요 표적물이 될 수 있다.”고도 보고서는 전망했다. 해당 작전은 격리라는 표현조차 사용하지 않는 ‘저강도 방식’으로 수행될 수도 있지만 대만섬 전체에 대한 격리를 선포하는 전면적 방식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서는 예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대대만 격리 작전은 기업들의 대만 투자 등을 위축시키는 이른바 ‘칠링 이팩트(chilling effect)’를 가져와 대만 경제를 압박할 수 있다. 중국의 조치로 인하여 기타 국가들도 대만과 무역량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CSIS 보고서는 “중국은 규정 위반을 이유로 선박을 억류할 수도 있다.”고 전제하며 “중국의 법 집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많은 해운회사가 선적을 연기해 대만의 상업 무역이 눈에 띄게 감소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격리 작전은 전쟁이나 무력 도발 행위로 간주되는 봉쇄와는 달라 대응하기가 까다롭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구체적으로 “격리는 봉쇄나 다른 대규모 군사 작전보다 범위가 제한적이고 중국 해안경비대가 주도하는 격리는 대만에 대한 전쟁 선포는 아니다. 대만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독특한 과제를 제시한다.”고 해결 문제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대만 격리를 통해 달성 가능한 목표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내놨다. “대만의 항복을 강요할 만큼 충분한 고통을 가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라면, 중국은 회색지대를 넘어 명백한 군사행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중국이 전면적인 침공 없이 대만을 강제 통일하려는 경우에는 군사적 봉쇄가 핵심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SIS 보고서는 5월 17일 미국 기업연구소(AEI)와 전쟁연구소(ISW)가 발표한 ‘강압에서 항복으로: 중국이 전쟁을 하지 않고 대만을 장악하는 방법’ 보고서와 일맥상통한다. 해당 보고서에서도 중국이 비무력 방법을 통해서도 대만의 실질적인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연구소·전쟁연구소 보고서는 총 4단계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1단계는 경제적 당근과 채찍, 정보 공작을 통해 미국-대만 군사 협력이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반면 군사 협력을 중단하면 평화와 번영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단계이고, ▲2단계는 대만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단계다. 경제 전쟁, 사이버 전쟁, 사보타주, 강력한 준합법적 선박 검열 및 영공·해상 봉쇄, 전자전, 대만 정부 무능을 강조하는 선전을 통해 대만 주민들의 삶의 질을 급격하게 떨어트려 대만 정부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목표다. ▲3단계는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인지적, 심리적 캠페인으로 겁박해 대만 대중의 저항 의지를 약화시키고 의심과 불안을 조성함으로써 평화를 위해 정치적 양보를 하라는 여론을 형성하는 단계이고, ▲4단계는 대대적 홍보 작전으로 미국 대중과 정치인들의 대만 지지 의지를 약화하는 단계다. 이후 2028년 새로 들어서는 대만 정부를 강압해 이른바 양안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대만을 강압해 침공하거나 전면 봉쇄하지 않고도 정치적으로 복속시키는 현실적 방법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이른바 ‘일련의 비전쟁 강압 행동(the short-of-war coercion course of action)’으로 정의했다. 보고서에서 제시한 일련의 강압 행동은 대만과 국제사회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일련의 조율된 행동들을 의미한다. 강압 행동은 대만 내 분리주의(독립) 요소를 제거하고 양안평화협정을 통해 중국인민해방군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정치 세력의 집권을 가능케 하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라이칭더 총통 임기 동안 대만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분리주의 봉쇄 작전과 함께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고 정보 공작을 폄으로써 미국, 일본 등의 개입을 막는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일련의 비전쟁 강압 행동 전략이 성공적으로 실행될 경우 중국이 양안평화위원회(가칭)를 만들어 대만 정부와 주민들에 대한 중국 인민군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개연성 있는 ‘최종 시나리오’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