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저출생이 문제니까 애 낳으라고요?” 네 청년들의 이야기

황효정
2024년 06월 7일 오후 9:11 업데이트: 2024년 06월 10일 오후 8:16

초저출생 시대를 살아가는 ‘결혼 적령기’ 청년들
연애, 결혼, 출산 그리고 양육을 이야기하다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출산율을 듣고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EBS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획초저출생’ 화면 캡처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지난해 7월, 저출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해외 석학은 한국의 출산율 문제를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석학은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말 그대로 “엄청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해당 인터뷰를 진행하던 시점의 대한민국 출산율은 0.78명이었다. 이는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 합계출산율이 0.7명대를 찍은 사례였다.

그리고 지금, 2024년 1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6명으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0.6명대로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야말로 ‘국가비상사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저출생 문제는 국가비상사태”라며 “(국가적 과제인) 저출생 극복을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전국 곳곳의 지방자치단체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앞다투어 저출생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국책연구기관 등도 마찬가지다.

과연 당사자인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결혼과 출산, 양육, 그보다 앞서 연애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에포크타임스는 흔히 말하는 결혼적령기의 나이로 초저출생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네 명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말이었던 지난 2일, 수도권의 한 카페에서 규찬 씨를 만났다.|황효정/에포크타임스

저출생이 문제니까 애를 낳으라? ‘XX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캥거루족’이었던 김규찬(33세·가명) 씨는 최근 이직을 계기로 서울에 집을 구해 자취를 시작했다. 3년 넘게 만나고 있는 연인이 있지만, 결혼은 생각하지 않았다.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당장 결혼을 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규찬 씨와 나이가 비슷한 주변 지인들은 절반 이상이 결혼을 했거나 결혼 준비 중이란다. 결혼한 친구가 늘면서 서로 공감대도 달라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많은 친구와 멀어졌다는 규찬 씨는 “결혼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언젠가는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스로를 주변 영향을 안 받는 사람이라고 여겨 왔지만 솔직히 말해서 압박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결혼을 한다면 30대 후반이나 마흔 즈음에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규찬 씨는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경제적인 부분 때문은 아니다. “구축 빌라에서 전세로 살아도 괜찮은 사람이 있고, 무조건 신축 브랜드 아파트에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경제적인 부분은 관점 차이이고, 나와 관점이 맞는 사람과 결혼하면 된다”는 게 규찬 씨 생각이다.

“자신이 없는” 지점은 다름 아닌 ‘책임’이다. 연애와 달리 결혼은 책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 스스로도 100% 책임지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인데, 누군가를 한평생 사랑하고 책임질 자신이 없어요. 저는 반려동물도 안 키워요. 책임질 자신이 없으니까요.”

자녀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규찬 씨는 원래 자녀를 낳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 자신을 책임지는 것도 부담스럽고 힘든데, 나 좋다고 낳았다가 책임질 수 있을까?’ 규찬 씨는 답이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복했다.

“사회 경험을 하면 할수록 ‘딩크’를 지향하게 돼요. 나는 지금도 힘든데, 여기서 아이까지 낳으면… 그러면 과연 아이도 행복할까요?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죠. 또 제가 나이가 더 들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의 제 생각은 이래요.”

기자는 마지막으로 저출생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국가 소멸의 위기에서 출산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은 혹시 들지 않느냐고 묻자 규찬 씨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이요? 우리나라가 아이를 낳고 양육하기에 환경적으로, 제도적으로 잘돼 있는 사회인가요? 출산휴가, 육아돌봄… 물론 법적으로는 다 있죠. 하지만 그런 것들을 실제로 용납하는 사회인가요? ‘저 출산휴가 쓰겠습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당당히 낼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이 마련돼 있나요? 재택근무가 보편화된 사회인가요? 주말근무는 하지 않는 게 당연한 분위기인가요? 저출생으로 국가적 위기고 문제라는 사실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그게 내가, 청년들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인가요? 저는 우리나라의 저출생 위기는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봐요. 애를 낳고 양육하기 쉬운 환경을 사회가 갖추고 있는가. 휴가 하나 쓰는 것도 윗사람 눈치 보는 사회에서 말이죠.”

지난 3일, 나경 씨는 자신의 집으로 기자를 초대했다. 나경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지 몇 년이 지났다.|황효정/에포크타임스

저출생 위기, 책임감 느껴요…하지만 결혼해서 ‘희생’할 자신은 없어요

최나경(32세·가명) 씨는 요새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직장과 운동, 독서, 취미모임 등을 병행하자니 눈코 뜰 새, 아니 연애할 새도 없이 무척이나 바쁘다.

학교 동창 등 기존 친구들은 대부분이 결혼했다. 나경 씨는 직장인 모임 등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미혼이다. 나경 씨는 기혼인 친구들과 미혼인 친구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기혼 친구들은 우선순위가 ‘가정’이라면, 미혼 친구들은 자기계발과 투자, 공부 등 이른바 자신의 ‘갓생’이 우선순위라는 설명이다.

현재 솔로인 나경 씨에게 “연애가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경 씨는 “반반”이라고 대답했다.

“결혼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 결혼을 하려면 연애를 하는 게 먼저니까 연애를 하고는 싶어요.” 나경 씨는 결혼에 대해 ‘포기’라는 표현을 썼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표준’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결혼시장에서 흔히 말하는 적령기를 놓친다는, 도태된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고, 그래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어요. 하지만 제 자신이 결혼에 적합한 사람인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네요.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지만, 거기에는 희생이 필요하죠. ‘희생을 하는 삶이 나한테 맞나?’ 하는 의문이 들고, 결혼에 있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희생이라는 걸 할 자신이 없어요. 결혼은 내가 잘못하면 상대방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이고, 그래서 더욱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네요.”

나경 씨는 일단 연애에 앞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치기 어렸던 20대 때처럼 한두 번만 만나보고 상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연애를 하기에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섣부르게 누구 한 명한테 올인하고 싶지도 않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결정하고 싶다고 했다.

이상형을 물어봤다. 나경 씨는 두 가지로 나누어 답변했다. 연애 대상을 찾을 때는 성격을 위주로 보지만, 결혼을 염두에 둘 때는 경제력을 보게 되는 것 같단다. 사랑만으로는 결혼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게 나경 씨의 생각이다.

대단한 재력이라든가 소위 전문직을 바라는 게 아니다. 성실하고 자기 밥벌이를 하는 사람을 바랄 뿐이다. 단, 이 조건이 선행되지 않으면 결혼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본인 또한 판교에서 성실히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경 씨는 “지금 이미 혼자 밥벌이를 하면서 혼자서도 잘 살고 있다. 모든 걸 충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뭐 하나 불충족한 게 없는 삶이다. 나는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잘 맞는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면 (비혼이)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고 생각한다”면서 “결혼을 함으로 인해서 지금보다 (경제적) 상황이 나빠질 리스크를 굳이 감수할 필요가 있냐”고 되레 반문했다.

이처럼 경제력이 필수로 선행돼야 하겠지만, 안정적인 경제력이 갖춰진다는 전제하에 자녀 계획이 있다.

“저출생 위기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요. 중요한 문제이고, 우리 사회가 이 문제로 인해 기로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적인 상황이 허락한다면 마흔 즈음에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어요.”

지난 4일, 재한 씨와 재이 씨 부부를 만났다. 장소는 재한 씨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황효정/에포크타임스

아이 낳고 싶죠…경제적인 것도, 제도적인 부분도, 사회적 분위기도 마음에 걸립니다

결혼한 지 이제 막 3년을 넘긴 박재한(36세·가명), 우재이(32세·가명) 씨 부부는 결혼해서 “나쁜 점이 하나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일 적 자취를 오래 했다는 아내 재이 씨는 “반대로 결혼해서 좋은 점은 가계를 꾸려나가는 데 있어 1인 가구보다 부담이 훨씬 덜하다는 것”이라며 “2인이다 보니 가계의 고정비용 자체가 어쩔 수 없이 늘어나긴 하지만, 외식비라든가 확실히 줄어드는 부분도 많이 생긴다. 대출도 둘이 갚으니 좋다”고 설명했다.

재한 씨와 재이 씨는 주변에서 소문난 ‘사랑꾼’ 커플이다. 10년 열애 끝에 지난 2021년에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이 사람이 아니면 굳이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렇기에 비혼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결혼을 너무 추천하고 싶어요. 하지만 평생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게 도박이지 않나요. 사람의 본성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러니까 비혼주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앞서 미혼 청년들이 언급한 ‘책임’과 ‘희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결혼하면서 생기는 책임과 희생에 관해 묻자 남편 재한 씨는 “오히려 어려울 때 같이 헤쳐나가니까 좋다”고 밝혔다. 아내 재이 씨는 “책임이라는 게 배우자에 대한 책임보다는 아이에 대한 책임이 큰 것 같다”고 답했다.

부부는 아이가 없다. 두 사람 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재한 씨와 재이 씨는 언제 아이를 낳을지를, 아니 낳을지 말지를 아직 고민 중에 있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있음에도 고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재한 씨는 “경제적인 것, 제도적인 것들”을 걸림돌로 꼽았다. 재이 씨는 좀 더 구체적으로 “육아휴직 기간도 짧고, 급여도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면서 “물론 휴직 기간에 기존 임금의 100%를 다 줄 수는 당연히 없겠지만, 보통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고 하면 한 명의 월급은 생활비로, 다른 한 명의 월급은 주택 대출로 나간다. 육아휴직을 했을 때 대출을 갚기에 무리가 없고 아이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의 기초 생활이 가능한 정도로는 경제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육아휴직은 애초에 육아휴직 신청자의 배우자가 멀쩡히 일하는 것을 상정하고 급여를 책정한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가정은 어떻게 하냐”고 꼬집었다.

현재 재한 씨는 자영업을, 재이 씨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재이 씨는 특히 더 고민이 깊은 모습이었다.

“아이를 낳고 난 뒤에 복직해서 계속 일하고 싶지만, 육아휴직 다녀와서 직장에 제 자리가 남아있느냐도 문제예요. 자리가 남아있다고 해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종일반이 있는데 초등학교는 그게 안 되고, 긴 방학도 있기 때문에 주변에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결국 직장을 포기하게 된다고요.”

세상이 변했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사람도, 아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느는 추세다. 현대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사적 자유이자 선택이다. 부부는 “안 낳겠다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할 게 아니라, 낳겠다는 사람들한테 지원을 제대로, 더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놓는 저출생 대책 중 많은 부분이 탁상공론이라는 게 이들 부부의 의견이다. 재이 씨는 실제 지난해 서울시가 산우조리 바우처를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하자 산후조리원 업체들이 그만큼 가격을 올렸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해당 정책은 출산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와는 달리 요금 인상만 초래했다며 빈축을 샀다.

부부가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이유는 더 있다.

“아이를 똑바로 길러낼 수 있을 것인가, 가정에서 잘 길러낸다고 해도 학폭 문제라거나… 우리 사회가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사회인지 근본적으로 의문이 들어요. 다들 살기 팍팍하다 보니 사람들 개개인도 너무 다 예민하고, 뭐든 혐오로 이어지는 사회 분위기도 걱정이고요. 어쨌든 저희 부부도 올해 안에는 결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