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단, 트럼프 34개 중범죄 혐의 모두 유죄 평결

윤건우
2024년 05월 31일 오전 10:00 업데이트: 2024년 05월 31일 오전 10:24

트럼프, 미 역사상 전직 대통령 첫 유죄 불명예
배심원단, 이틀 만에 유죄 판단…트럼프 “정치적 박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업무 기록 위조 등 34건의 중범죄 혐의로 30일(현지시각) 유죄 평결을 받았다.

뉴욕 맨해튼 주민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이틀간의 심의 끝에 이날 만장일치로 평결을 내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된 첫 전직 대통령이 됐다.

평결이 낭독되는 동안 트럼프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정면을 응시했으며, 평결 후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재판이 끝나고 법원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이는 처음부터 조작된 평결이었다”며 “우리는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변호인 측은 유죄 평결이 나오면 항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평결은 6주간 증인 22명의 증언을 청취한 끝에 이뤄졌다. 지난 28일 최후 변론 후 배심원단은 다음 날 정오 직전에 심의를 시작해 이틀 만에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트럼프가 전직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의 스캔들 폭로를 막기 위해 13만 달러(약 1억 7천만원)의 돈을 지급한 후 이를 법률 자문료로 위장하려 회사 기록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했다.

장부 조작 자체는 경범죄이지만, 검찰은 트럼프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며 선거 방해 혐의의 중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번 사건을 정치적 박해이자 민주당 당원들의 2024년 선거 개입 행위라고 거듭 주장해 왔다.

현재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기밀문서를 잘못 처리한 혐의 등으로 워싱턴, 조지아, 플로리다에서 각각 1건씩 기소됐다.

조 바이든 대선 캠프 측은 유죄 평결 소식을 접하고 “아무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환영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바이든 캠프의 대변인 마이클 타일러는 성명을 내고 “도널드 트럼프는 항상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법을 어겨도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잘못 믿어왔다”고 말했다.

타일러 대변인은 “그러나 오늘의 평결만으로 미국 국민들이 직면한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며 “도널드 트럼프를 (백악관) 집무실에서 쫓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표뿐”이라고 바이든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트럼프가 유죄 평결을 받았더라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대통령 재선에 도전하는 데에는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의 이언 샘스 대변인은 “우리는 법치를 존중한다”는 짤막한 엑스(X·구 트위터) 게시물로 논평을 대신했다.

공화당 중진 의원들은 개탄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오늘은 미국 역사상 부끄러운 날”이라며 “민주당원들은 유죄 평결을 받은 중범죄자(마이클 코언 전 트럼프 변호사)의 증언을 근거로 상대 당 지도자에게 터무니없는 혐의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한 후 환호성을 질렀다. 이는 법치가 아니라 정치 행위”라고 X에서 논평했다.

공화당 소속 랜드 폴 상원의원 역시 “(오늘은) 미국의 슬픈 날”이라고 평가했고, 짐 조던 하원의원은 이번 평결을 “사법부의 비극”이라고 불렀다.

민주당 의원들은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되풀이하며 이번 평결을 반겼다.

‘불법적 방법으로 특정인의 공직 당선·낙선 도모”

이번 배심원 평결의 핵심은 장부 기록 위조가 뉴욕주 선거법에서 규정한 ‘불법적인 수단으로 특정인의 공직 당선이나 낙선을 도모해’ 2차 범죄로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검찰은 ‘불법적 수단’으로 연방 선거 운동법 위반, 기타 사업 기록 위조, 세법 위반 등을 주장했으나, 재판을 담당한 후안 머찬 판사는 “배심원단은 ‘불법적 수단’이 무엇인지 만장일치로 합의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검찰은 이번 재판에서 2차 범죄가 트럼프에 의해 실제로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요구받지도 않았다. 배심원단은 ‘종범(타인의 범죄를 방조하는 범행)’ 책임만으로 형사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설명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측 변호인단은 마지막 변론에서 트럼프가 장부 기록 위조를 지시할 세밀한 지식이 없었고 관여하지도 않았으며, 이러한 행위는 전적으로 코헨 전 변호사의 단독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한 변호인단은 코헨 전 변호사가 자신의 이전 고용주였던 트럼프의 처벌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의회와 검찰, 가족과 사업 동료들에게도 거짓말을 일삼아 ‘거짓말쟁이 MVP’로 불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죄 평결이 나옴에 따라, 이번 재판은 담당 판사의 형량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선고 기일은 오는 7월 11일 오전 10시로 정해졌다.

한편, 이번 유죄 평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로 공식 지명될 예정인 공화당 전당대회를 나흘 앞둔 시점에 나왔다.

다만, 미국 선거 제도에 따르면 중범죄로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대선 출마 자격은 유지된다.

* 이 기사는 캐서린 양, 마이클 워시번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