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의 모습…경외 그 자체인 ‘파이윰 초상화’

로레인 페리에(Lorraine Ferrier)
2024년 05월 30일 오후 3:16 업데이트: 2024년 05월 30일 오후 4:54

인류가 공유하는 인간성에 가장 짙은 호소력을 발휘하는 미술 분야를 꼽자면 초상화가 아닐까. 초상화 속 피사체의 얼굴은 그림을 보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낯선 사람의 얼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

여기, 오늘날까지 보존돼 전해 내려오는 고대 초상화 몇 점이 있다. 사실적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 이들 초상화를 멀리서 보면 마치 시판 유화 물감으로 그린 최근 그림인 것만 같다.

그림들은 최소 약 1900여 년 전 작품이다. 고대 이집트의 예술가들은 밀랍과 안료를 섞어 만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림으로써 수 세기 후에도 부드럽게 빛이 나는 작품들을 완성했다.

파이윰 초상화

나일강 왼쪽 기슭에 위치한 곳의 지명인 파이윰에서는 미라와 함께 있는 초상화가 많이 발견된다. 나무판에 그려진 초상화는 미라의 생전 얼굴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이름을 딴 ‘파이윰 (미라) 초상화’는 주로 1~3세기 작품들로, 일반적인 이집트 화풍과는 달리 정면주의, 형태의 입체화, 눈의 강조가 특징이다. 얼굴의 빛과 그림자를 잘 담아 표현함으로써 인물들을 살아 있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초상화 크기는 대개 43 x 23cm 정도다.

‘소년 에우티케스의 초상화’ 속 어린 소년 에우티케스의 눈동자는 마치 초콜릿 빛깔 같다. 소년은 살짝 미소 지으며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과 올리브색 피부가 반짝인다. 소년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그려진 초상화임에도 불구하고 초상화 속 에우티케스는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한쪽 눈을 수술한 청년의 초상’. 서기 190~210년, 이집트, 작가미상, 나무판에 밀랍화|퍼블릭 도메인

또 다른 초상화를 살펴보자. 주인공인 청년의 턱과 인중에 솜털 같은 수염이 돋아난 것이 보인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막 자라나기 시작한 콧수염을 남성이 중요한 사회 집단에 진입하고 성적 매력과 활력이 절정에 달했다는 일종의 신호로 여겼다.

한편 청년의 오른쪽 눈에는 상처가, 뺨에는 살짝 함몰된 자국이 보이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당시 안면 기형에 대한 교정 수술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의 초상’. 서기 90~120년, 이집트, 작가미상, 나무판에 금박을 입힌 밀랍화|퍼블릭 도메인

붉은 튜닉을 입은 젊은 여성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초상화 밖을 응시하고 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높게 틀어 올려 묶고, 그 위에는 금으로 된 화관을 쓴 차림이다. 귀에도 금귀걸이가 걸려 있다. 원래는 배경도 금빛으로 장식됐으나 지금은 퇴색돼 화관과 귀걸이에만 황금빛이 남아 있다.

파이윰 초상화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속눈썹이 꼽힌다. 이는 당시 속눈썹이 순결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실제 상류 계급에 속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눈을 강조하기 위해 눈가에 ‘콜’이라고 부르는 검은 가루를 칠하기도 했다.

‘미라를 싼 천 안 청년 초상화’. 서기 80~100년, 이집트, 작가미상, 리넨과 미라화 재료로 감싼 인체 유해와 초상화, 나무판에 밀랍화|퍼블릭 도메인

장례를 위한 초상화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초상화가 인물의 사망 후에 그려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장례 행렬에는 시신을 미라로 만들기 위해 방부 처리하는 곳까지 운반하는 과정도 포함됐다. 바로 이 장례 행렬에 동참하는 조문객들이 초상화를 들고 걸어간다.

행렬의 끝에서 초상화를 건네받은 방부처리사는 천으로 시신을 쌀 때 사자의 얼굴 위치에 초상화를 놓는다. 어떤 경우에는 미라를 싼 천에 직접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후 미라는 묘지 예배당에서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보관된 뒤 최종적으로 땅에 묻힌다. 멀리 사는 친척 등 유족들은 미라가 묻히기 전까지 예배당을 찾아와 초상화를 바라보며 제사를 지냈다.

파이윰 미라 초상화는 미술사적으로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벽화가 아닌 나무판처럼 이동이 가능한 물체 표면에 그린 고대 그림이 남아있는 사례 자체가 극히 드문 데다가, 파이윰 초상화를 통해 고대 초상화 양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상화는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이해할 수 있는 시각적 언어를 사용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이러한 시각 예술의 대화를 나눠왔으며, 앞으로 수천 년 동안에도 그러할 것이다.

로레인 페리에는 영국에 거주 중인 작가로, 에포크타임스에 미술과 장인 정신에 대한 글을 기고한다.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며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 예술 유산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하고 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